1930년대 사리포구의 상태: 허허벌판에 가까운 어촌
1930년대 안산 사리포구(현재의 안산호수공원 자리)는 사실상 한적하고 황량한 갯벌 지대였습니다.
당시 이 일대는 몇몇 토박이 주민들이 소규모로 어업을 하거나 염전이 군데군데 있던 외딴 해안가로, '포구'로서의 본격적인 시장 기능이나 대규모 마을은 형성되지 않은 황무지에 가까웠습니다. 1937년 일제가 소금을 수탈하기 위해 수인선 협궤열차 노선을 개통하면서 주변 교통망이 깔리기 시작했으나, 이때도 번화함과는 거리가 멀었습니다.
<발전 과정 및 계기>
사리포구가 수도권의 대표적인 포구로 급성장한 것은 6·25 전쟁 이후입니다.
이주민과 실향민의 정착 (1950~60년대): 전쟁 이후 황해도 등지에서 내려온 이북 실향민들과 댐 건설 등으로 삶의 터전을 잃은 호남 지역 이주민들이 대거 유입되었습니다. 이들이 사리포구 주변에 둑을 막고 자생적인 어촌 공동체를 형성했습니다.
어촌계 정비와 경제적 호황 (1960~80년대): 1964년 '경기남부수협 사리어촌계'가 공식 조직되면서 포구가 체계적으로 정비되었습니다. 낭장망(그물을 펼쳐 밀물과 썰물로 고기를 잡는 방식) 어업이 대성공을 거두며 풍부한 수산물이 쏟아졌고, 1966년 수인선 사리역이 개업하면서 교통이 편리해졌습니다.
최전성기 (1980년대 중후반): 주변에 270여 개가 넘는 횟집과 포장마차가 들어섰습니다. 주말이면 하루 만 명이 넘는 서울·경기 지역 관광객들이 협궤열차를 타고 찾아와 "사리는 지나가는 개도 10만 원짜리 수산물을 물고 다닌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부를 축적했습니다.
이후의 변화: 번성하던 사리포구는 1987년 시작된 시화방조제 건설로 인해 뱃길이 완전히 막히면서 어업 기능을 상실했습니다. 결국 1990년대 중반에 포구가 매립되었으며, 현재는 그 자리에 안산호수공원이 조성되어 표지석으로만 흔적이 남아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