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한정현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1930년대 독립운동이 점차 거세지면서 조선총독부는 조선인들의 반중 감정을 건드리기 시작했다. 반중 감정을 확산시키면 반일 감정이 줄어들 것이라고 판단했다.더욱이 독립운동가들이 중국 국민당 등 중국 내 정당과 친분이 있다는 점에서 우리 땅에 있는 화교인들과 조선인들과의 갈등을 부추겨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활동을 방해하려는 의도도 있었다. 이에 유언비어 유포를 부채질 했고, 언론사들은 오보 사태를 터뜨렸다. 이에 화교배척폭동이 일어났는데 1927년, 1931년 등이 대표적이고 특히 1931년 평양화교 학살사건이 발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