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 내시들은 왜 거세를 했을까요?
조선시대 내시들은 남성 호로몬이 나오지 않기 때문에
수염이 없고 얇은 목소리를 가진 것으로 유명합니다.
도대체 일을 하는 것과 남성호로몬이 어떤 관계가
있길래 내시들은 거세를 하는걸까요????????
왕 주위에 있는, 그러니까 왕궁에 있는 여자들은 모두 '왕의 것' 입니다.
고로- 그외 수컷-_-;들이 손대는 건 절대 엄금이었다는 말이죠-
그렇기 때문에 혹시나 모를(왕의 여자를 손댈) 위험분자 중 하나인 왕궁에서 기거하는 남자들-
내시들을 거세시킨거죠.
그들은 고환을 잘라버리거나 태어나자마자 고환을 주물러 정자 생성이 불가능하게 만들어버림으로써
남자 구실을 못하게 됩니다...
태어나자마자 고환을 주물러 정자 생성을 불가능하게 만든 경우는 때때로 크면서 그 기능이 회복되어
궁녀들이나 왕의 총애를 받지못한 여자들에게 인기가 최고-_-*였다고 해요-(물론 걸리면 죽음...;)
아예 성기를 잘랐다는 기록도 본 것 같은데요..
자른 지 얼마 안된 내시들은 소변 조절을 못해서 한마디로 '질질' 흘리고 다녔다는군요.
그래서 선배 내시들에게 많은 눈총을 받았더랩니다궁에서 만나는궁녀들을탐하지 못하게 거세를합니다 궁녀들은 다왕의 여자이기때문에 그렇습니다.......................................................................................
조선 시대 내시들은 왕의 곁에서 왕을 보좌하는 일을 했습니다. 왕의 곁에서 일하다 보니 왕의 후궁들이나 부인들과 접촉할 일이 많았습니다. 이에 내시와 후궁 혹은 왕비와 눈이 맞을 굿을 미리 방지하고자 내시가 되기 위해선 거세를 미리 진행해야지 될 수 있었습니다. 거세를 하고 나면 남성 호로몬인 테스토스티론이 나오는 낭심이 없어져 상대적으로 여성 호로몬인 에스트로젠이 나오고 이는 질문자 분께서 알다시피 얇은 목소리와 털이 덜 나는 것으로 이어집니다!
흔히 내시로 표현되는 이런 복장의 인물은
내시가 아니라 환관입니다
물론 조선시대에 들어오면서
환관이 내시 업무를 같이 하게 돼
내시가 곧 환관인 것처럼 표현되긴 하지만
고려시대에는 내시와 환관이 분명 구분되는 존재였습니다
이 당시 내시는 왕과 함께 다니며 여러가지 업무를 봤는데
왕을 보좌하는 역할까지 함께 해야했기 때문에
무술시험도 봤다고 합니다
또한 궁궐 밖에 나가 민심을 살피거나
죄인을 이송하는 일을 담당하기도 했습니다
오늘날 내시라고 하면 얕잡아보는 경향이 있지만
고려시대의 내시는 우리의 생각보다
더 높은 위치에 있는 존재였습니다
게다가 이들은 환관처럼 거세를 하지도 않았다고 합니다
관은 남북국 시대에(통일신라와 발해) 처음 등장한 것으로
통일신라 흥덕왕 때 심부름꾼 역할을 했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환관은 중국에서 건너온 것인데
강족과 전쟁을 해서
포로들을 환관으로 만들었다는 기록을 볼 수 있습니다
강족은 티베트족의 조상이 되는 중국의 소수민족으로
중국이 상나라(은나라)일 때 이들이 조공을 바쳤다고 하는데
상나라가 기원전 17세기 ~ 11세기에 존재했던 나라니
환관의 역사는 약 3000천년 이상 되었다고 말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상나라의 기록을 보면
환관을 남자의 생식기 모양과 칼 도(刀)자를 같이 그려 표현했는데
이런 기록을 보면 이 당시 환관들도 거세를 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아마 이때 거세를 한 이유는
남자들이 국가와 가족을 지키지 못했으니
남자의 상징인 생식기를 잘라
'니들은 남자도 아니다' 라고 표현한 것이 아닌가
그리고 대를 잇지 못하게 만든 것이 아닌가 추측하고 있습니다
중국 명나라때는 환관이 10만명이나 될 정도로 규모가 컸다고 하니
환관에 대한 의존도가 많이 높았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환관은 중국뿐만 아니라 베트남, 인도, 터키
페르시아, 이집트, 그리스, 로마 같은 나라에서도 존재했지만
특이하게 일본은 환관이 있었다는 기록을 찾아볼 수 없다고 합니다다른 나라의 환관들 역시 거세를 했는데
전제 군주 국가에서 왕은 일부다처제
즉 수많은 부인이 있었는데
혹시나 궁에서 일하는 환관이 후궁과 바람이 나지 않을까
하는 이유 때문에 거세를 했다고 합니다
우리나라 환관 역시 같은 이유로 거세를 했습니다.안녕하세요!
궁에서 내시가 되기 위해서는 반드시 거세를 해야만 했습니다. 그 이유는 내시는 늘 왕의 곁에서 궁의 잡일을 도맡아야 했기 때문에 왕비와 후궁,궁녀등의 여성들을 가까이 하게 될 때가 많았기 때문입니다.
궁 안에 있는 모든 여인들은 왕비부터 궁녀에 이르기까지 모두 최고 권력자인 왕의 예비신부로 여겼기에 다른남자를 가까이 하는 것을 절대 금기시 하였습니다.
이때문에 혹시라도 모를 사고를 예방하고자 내시들의 남성기능을 모두 제거 하였다고 합니다..
우리가 흔히 떠올리는 남성성이 부족한 내시의 모습은 조선시대 때의 내시이며, 고려시대에는 내시와 환관이 나뉘어 있어 환관들만 거세를 시행하였다고 합니다.
이 답변은 네이버 지식백과 중 <의심많은 교양인을 위한 상식의 반전 101>에서 가져온 내용입니다.
내시에 관해 더 자세히 알고 싶으시면 참고해 보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궁금증 해결에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네요~ 감사합니다
내시와 궁녀가 서로 사랑이 빠질 수 있기 때문에 거세를 했다고 알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내시를 거세를 시커서 궁녀와 서로 사랑에 빠지는 일이 없도록 예방하는 것이었죠.
하지만 이럼에도 불구하고 조선왕조실록에는 내시와 궁녀가 서로 사랑에 빠졌다가 걸려서 조사를 받고 사형을 당했다는 기록이 종종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