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라는 삼국 가운데 가장 늦게 불교를 공인했습니다. 이는 기존 종교와 귀족 세력의 반발이 컸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찬돈의 순교를 계기로 불교가 공인될 수 있었습니다.
당시 신라를 비롯한 삼국은 중앙 집권적 고대 국가로 발전하는 과정에서 여러 부족 세력들의 사상적 통합이 필요했습니다. 또한 왕즉불 사상에 입각하여 백성이 왕을 단순히 정치 지배가 아니라 신성한 존재로 여겼습니다. 즉 불교는 왕권 강화에 유리했습니다.
또한 신라는 진흥왕대에는 왕을 불법으로 세상을 다스리는 이상적 군주인 전륜성왕으로 표방했습니다. 이는 왕의 정복과 통치를 종교적 사명으로 정당화했습니다. 그리고 불국토 사상은 신라 왕실과 국가 자체를 불교적 구원의 중심으로 만들었습니다. 게다가 활용사 9층 목탑처럼 사찰과 불교 행사는 국가와 왕실의 수호를 상징 역할을 하였으며, 정신적 기반이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