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하
학문

미술

조용한문어80
조용한문어80

코코 샤넬이 독일의 스파이가 맞나요?

샤넬 브랜드로 유명한 샤넬의 창업자 코코 샤넬이 독일의 스파이라고 하는데 맞나요?

프랑스 경찰국의 비밀문서에 샤넬이름이 나왔다는데 정말인가요?

55글자 더 채워주세요.
6개의 답변이 있어요!
전문가 답변 평가답변의 별점을 선택하여 평가를 해주세요. 전문가들에게 도움이 됩니다.
  • Slow but steady
    Slow but steady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프랑스 경찰은 샤넬이 스파이 였다고 주장 합니다. 1944년 11월 파리에서 작성된 메모는 "마드리드에서 활동하는 한 정보원이 1942년부터 이듬해까지 '코코' 샤넬이 나치 비밀경찰인 귄터 폰 딩클라게 남작의 정부 겸 공작원이라는 사실을 알려왔다며 샤넬의 스파이 활동을 기록하고 있다고 합니다.

  • 안녕하세요. 김휴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추측으로 알려져있습니다.

    당시 2차 세계대전으로 가브리엘샤넬이 아끼는 조카가 나치수용소로 체포되면서 샤넬은 조카를 풀어주고싶은마음에 자신의 지인들을 통해 도움을 요청해보려합니다. 그러던 중 당시 프랑스 독일대사관에 발령을 받은 독일 남작 딩클라게를 알게되고 교제하게됩니다. 그때문인지는 몰라도 프랑스 경찰국에서 샤넬이라는 이름이 적인 비밀보안문서를 발견하게되고(사실) 그로인해 샤넬이 독일스파이라는 소문이 퍼지고 프랑스자국민들은 샤넬에게 분노와 배신을 느끼게됩니다. 당시 독일군과 만나거나 교제하는 여성들은 극혐대상이었습니다. 아무튼 조카가 나치수용소에서 풀려납니다. 그로 인해 더욱 더 오해가 커지게됩니다. 전쟁이 끝난 후에 이와 같은 여성들은 만인들이 보는앞에서 처절하게 끌려다니고 삭발을 감행하게되는데 샤넬이 붙잡히지 않았습니다. 다만 재기에 노력을 해도 프랑스에서 샤넬의 패션쇼는 인정을 못받게 됩니다. 하지만 미국에서 샤넬을 극찬하면서 다시 세상에 알려지게됩니다.

  • 탈퇴한 사용자
    탈퇴한 사용자

    안녕하세요. 정준영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제2차 세계대전 시기로 거슬러 올라가보자. 독일군이 파리를 점령했을 때 샤넬의 나이는 57세. 그녀는 13살 연하의 독일군 장교 한스 귄터 폰 딩클라게, 본명보다 슈파츠라는 별칭으로 널리 알려져 있는 인물과 사실상 동거했다. 이들의 관계는 일종의 비밀 작전으로까지 이어졌다.


    작전명이자 암호명은 ‘모자 견본’. 윈스턴 처칠이 1943년 11월 스페인 마드리드로 가게 되어 있다는 것을 알게 된 샤넬은, 스페인으로 가서 처칠이나 영국 대사를 만날 작정이었다(샤넬이 먼저 제안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당시 독일은 패전으로 치닫고 있었으니, 처칠과 루스벨트는 독일에 대해 무조건 항복을 수용할 것을 요구한 터였다. 독일 수뇌부 일부가 이 작전에 관심을 기울인 것은, 패전이 분명해지는 상황에서 평화협상의 돌파구를 찾을 수 있을지 모른다는 기대를 걸었기 때문이었다.


    샤넬은 마드리드로 갔지만 처칠을 만나지 못했다. 샤넬은 이미 영국 정보국의 요주의 대상이었다. 1944년 파리가 해방된 뒤 레지스탕스는 점령군에 협력한 이들을 색출하기 시작했다. 샤넬도 붙잡혀 구금되었지만 처칠이 영향력을 발휘해 석방됐다. 1944년 9월부터 샤넬은 스위스에서 슈파츠와 함께 호텔을 전전하며 생활했다.


    무시로 찾아 드는 권태를 달래기 위해 매일 저녁 모르핀을 주사했다. 그녀는 권태롭게 살 수 있는 사람이 아니었다. 더구나 고국에서는 크리스티앙 디올이라는 신예가 패션계에 선풍을 일으키고 있다지 않은가. 이것은 그녀가 귀국을 결심하게 된 계기이기도 했다.

    출처 : 인물세계사

  • 안녕하세요. 조사를 해본 결과 샤넬 브랜드로 유명한 샤넬의 창업자 코코 샤넬이 독일의 스파이였다는 주장은 2014년 프랑스 경찰국의 비밀문서가 공개되면서 제기되었습니다. 이 문서에는 코코 샤넬이 독일의 스파이로 활동했다는 내용이 담겨 있었습니다.

    코코 샤넬은 1940년 프랑스가 독일군에 점령되었을 때 파리에 머물렀습니다. 그녀는 독일 장교들과 친하게 지냈고, 그들에게 정보를 제공했다는 주장이 제기되었습니다. 또한, 그녀는 독일 군대의 의상을 디자인하고, 독일군의 선전 활동에 참여했다는 주장도 제기되었습니다.

    그러나, 코코 샤넬이 독일의 스파이였다는 주장에 대한 증거는 명확하지 않습니다. 코코 샤넬은 독일의 스파이 활동을 부인했으며, 그녀의 죽음 이후에도 그녀가 독일의 스파이였다는 증거는 발견되지 않았습니다.

    코코 샤넬이 독일의 스파이였다는 주장은 여전히 논란의 여지가 있습니다. 그러나, 그녀가 독일 장교들과 친하게 지냈고, 그들에게 정보를 제공했다는 주장은 사실로 받아들여지고 있습니다. 참고 하셔서 도움되셨다면 추천 좋아요 부탁드려요~ 좋은 하루 되세요~ ^^

  • 안녕하세요. 이주연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네 맞습니다. 샤넬은 나치에 협력하여 스파이 활동을 하였으며, 노르망디 상륙작전의 성공으로 연합군과 자유프랑스군이 프랑스를 해방시키자 코코 샤넬은 애인하고 스위스로 튑니다. 오랜 시간이 흐른 후 프랑스에는 돌아갈 수 있었디만 샤넬의 조국인 프랑스에서 샤넬을 매국노로 여겼습니다. 그래서 샤넬은 조국인 프랑스에 묻히지 못했습니다


    샤넬은 지속적으로 나치의 지지자임을 밝혀왔고 실제로 독일의 정보조직 아프베어를 도왔다는 증거가 나오기도 했습니다. 사넬은 나치의 비호아래 외국을 돌아다니며 사람들을 나치로 끌어들이고 첩보 활동을 할 수 있는 사람을 찾는 임무 등을 하였다고 합니다.

  • 안녕하세요. 최은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그녀의 요원 번호는 F-7124, 암호명은 웨스트민스터 입니다.

    다큐멘터리에 따르면 그녀는 1940년 독일과 프라스가 휴전을 한 이후 나치의 비밀경찰과 가까워지며 스파이가 되었고 1943년 독일이 영국에 휴전을 제안할 때 비공식 사절로 윈스턴 처칠과 만났습니다.

    샤넬은 전쟁기간 동안 파리의 호텔 리츠에 머물렀고 이 곳은 나치 장군들과 요원들의 숙소와 가까웠으며 그 중 헤르만 괴링과 괴벨스 박사도 있었습니다.

    1941년 여름 가브리엘은 독일 방첩국에 의해 첩보원으로 발탁, 스페인으로 여행을 떠나 나치의 요원으로 쓸만할 인물을 탐색하는 임무를 맡게 됩니다.

    제2차 세계대전 중 샤넬은 독일 스파이로 잘 알려진 바론 한스 귀터 본 딩클라게와 사귀게 됩니다.

    나치 스파이였으나 증거 불충분으로 풀려났는데, 그 이유 중 그녀가 막대한 피해를 입혔던 것이 아니었고, 그녀가 처칠을 비롯한 영국 및 여러 유럽 상류층과 인맥이있었고 그들의 비호를 받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샤넬이 나치에 협력한 이유 중 가장 근거있는 부분으로는 그녀의 파트너이자 코코 샤넬에게 향수로 큰 돈을 벌게 해준 사업파트너 피에르 베르트 하이머가 유대인이었고 , 그가 가지고 있던 샤넬의 코스메틱 권리를 빼앗고 싶었기 때문이란 설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