샤넬이 전범기업이었다고 하는데 그 이유는 무엇인가요?
코코샤넬의 브랜드 샤넬기업이 한때 전범기업이었다고 들었습니다.
그렇다면 샤넬이 왜 전범기업으로 낚인이 찍혔던것인지 그 배경이 궁금합니다
안녕하세요. 유영화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가브리엘 샤넬이 나치의 스파이로 활동했다는 문서가 발견되었다는 하여 제기된 문제입니다.(2014년 프랑스 공영방송, 의혹의 그림자) 사넬은 전쟁기간 동안 파리의 호텔 리츠에 머물렀는데, 이곳은 괴벨스와 괴링 같은 나치 장군들과 요원들의 숙소와 가까웠다고 합니다.
1941년 여름에 가브리엘 샤넬은 독일 방첩국에 의해 첩보원으로 발탁되었으며, 스페인으로 여행을 떠나서 나치의 요원으로 쓸만할 인물을 탐색하는 임무를 맡았다고 합니다. 나치 스파이로서의 행적이 공식적으로 사실로 드러나면서, 논란이 되었습니다.
안녕하세요. 최은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가브리엘 샤넬은 정치적으로는 극우 성향에 제 2차 세계대전 시기 나치를 열성적으로 지지하고 히틀러를 지지한다고 밝혀 이 사실이 알려지면서 많은 비난을 받았습니다.
나치를 이용해 유대인이었던 자신의 동업자를 사업에서 퇴출시키려 했을 만큼 전쟁 기간 동안 나치 고위층과 친분을 유지하며 그들에게 적극적으로 협력했고 그렇게 최고급 리츠 호텔에서 지내며 나치 정권에 부역하다 2차 대전 종전 후 1급 부역 혐의로 체포되었습니다.
샤넬은 전쟁기간 동안 파리의 호텔 리츠에 머물렀는데 이곳은 나치 장군들, 요원들의 숙소와 가까웠고 그 중 헤르만 괴링과 괴벨스 박사도 있었습니다.
1941년 여름 가브리엘은 독일 방첩국에 의해 첩보원으로 발탁, 스페인으로 여행을 떠나 나치의 요원으로 쓸만한 인물을 탐색하는 임무를 맡게 됩니다. 2차대전 중 샤넬은 독일 스파이로 알려진 바론 한스 귄터 본 딩클라게와 사귀었습니다.
이미 프랑스는 많은 나치 정권의 협력자들을 만 명 단위로 사형시켰던 만큼 샤넬도 부역혐의로 처형당하기 일보직전이었으나 과거 애인이었던 웨스트민스터 공작의 가까운 친구인 윈스턴 처칠 수상의 도움으로 증거 불충분으로 풀려나 추방되다시피 스위스로 도피한 뒤 10년간 프랑스로 돌아오지 못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