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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지한석화구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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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태일이 분신항거를 하게 된 결정적 계기는 무엇인가요?

1970년 평화시장에서 전태일님이 분신 자살을 했다는 역사에 대해 들은게 얼마전입니다ㅜㅜ같은 노동자로써 뭔가 찡하더라구요. 그 분께서 그런 마음아픈 결정을 하게된 결정적 원인이 무엇이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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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잘난몽구스218
    잘난몽구스218

    안녕하세요. 최은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1970년 11월 13일 전태일은 청계천 앞에서 그저 형식에 불과한 근로기준법 화형식을 계획했으나 시도하기 전 경찰과 고용주 측에서 동원한 패거리들에 의해 짓밟히게 되었고, 이에 또 한번 절망한 그는 평화시장에서 남쪽에 자리한 동화시장 계단에서 한참을 생각한 끝에 자살하기 위해 자신의 몸에 휘발유를 끼얹습니다.

    그리고 법전과 자신을 불태우며 '근로기준법을 준수하라!우리는 기계가 아니다! 일요일은 쉬게 하라! 노동자들을 혹사하지 말라! 내 죽음을 헛되이 하지 말자! 라고 외치며 쓰러집니다.

  •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노동환경의 열악한 현실을 알리고자 박정희 정부 와 자본기업들에게 근로기준법 을 준수할 것을 요구하다가, 시위 현장에서 자신의 몸에 휘발유 를 끼얹고 불을 붙이며 근로기준법 법전과 함께 분신 자살 하여 22세의 젊은 나이에 생을 마감했는데요. 실제로 1970년 당시 공장에서 일하는 근로자는 거의 24시간 중에서 8시간 잠자는 시간만 제외 하고는 16시간을 일하는 경우도 있었다고 합니다.

  • 안녕하세요. 김기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청계천 피복상가에서는 인간적인 대접을 받지 못한채 14-16시간의 중노동을 하는 어린 소녀들이 많았습니다. 전태일 열사는 근로기준법을 준수할 것과 노동3권 보장을 외치며 열악한 환경에서 생활하는 어린 노동자들을 위해 분신으로 산화한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