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인이 주요 격식의상인 양복은 언제부터 입게된건지요?

2020. 05. 23. 00: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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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사정장을 뜻하는 슈트라는 단어는 '따르다'라는 의미의 프랑스어 동사인 쉬브르에서 유래되었으며, 이 동사는 한 벌이나 한 짝처럼 함께 사요하도록 되어 있는 품목들에 주로 사용됩니다. 오늘날의 신사정장은 중세시대 기사의 갑옷을 계승한 것입니다. 이런 종 류의 의복은 한 사람 한 사람을 위해 특별히 제작되기 때문에 의복 자체가 입는 사람의 정체성을 표현 하는 것으로 여겨졌습니다. 그래서 언제나 한 벌로 구성되어 있으며, 특징적인 형태나 표식을 갖는 것이 아주 중요했습니다.

1660년 왕정복고 시절 찰스 2세는 궁중 의복의 새로운 기준을 마련했습니다. 코트, 남성용 조끼, 그리고 무 릎까지 오는 반바지를 모두 같은 소재로 통일한 것입니다. 초기의 반바지는 프랑스풍의 풍성한 스타일이었는데, 1670년경에 이르러서는 몸에 잘 맞는 스타일로 변화하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다양한 스타일을 창조할 수 있도록 만든 핵심적인 요소는 재봉기술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재봉기술을 13세기 후반 서유럽 에서 도입되었습니다. 재봉기술은 새로운 스타일의 출현으로 인하여 더욱 다양하게 발달했고, 반드시 필요한 기술로 자리 잡게 되었습니다.

새로운 신사정장은 승마, 사냥, 산책, 그리고 부동산 관리를 주로 하는 영국인들의 생활양식에는 적합하지 않았습니다. 영국의 '젠트리'라 불리는 지주계급들은 자신들의 생활양식에 맞춰서 신사정장을 변형시켰습니다. 먼저 승마에 적합하도록 자수가 놓인 실크보다는 견고한 무지 옷감을 사용한 옷을 선호했 으며 정장 재킷의 앞부분을 짧게 만들었습니다. 이후 양복지는 더욱 극적인 변화의 시기를 거쳐 마침내 우 리가 오늘날에 보는 것처럼 대체로 간소한 옷감을 사용하게 된 것입니다.

19세기 후반 조지 브라이언 브룸멜이 런던에 진출한 후에는 '부룸멜 스타일'이라는 것이 생겨났습니다. 브 룸멜은 후일 조지 4세가 되는 웨일즈의 왕자와도 친교를 맺는 등 사교계에서도 활발하게 활동했습니다. 그는 언제나 재단사에게 자신의 몸에 꼭 맞는 옷을 만들도록 했습니다. 브룸멜 자신은 귀족계급이 아니었지만, 차분한 색상과 정돈된 조합의 신사정장이 귀족들에게 오래도록 사랑받을 것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습니다. 이런 색상과 조합은 사람들을 실제보다 더 교양 있고 부유해 보이게 만들었기 때문입니다. 이후에 브룸멜 스타일은 영국 신사복의 전형이 되었습니다. 20세기까지 신사정장은 길이가 주로 무릎까지 오는 몸에 꼭 맞는 남성용 더블 상의인 프록 코트나 주간에 주로 입는 모닝 코트에 줄무늬 바지로 구성되어 있었습니다. 똑같은 소재를 사용한 코트와 바지를 한 벌로 입는 것은 시골뜨기나 낮은 계급의 사람들이 하는 차림으로 여겨졌습니다. 이런 인식은 영국과 미국 에서 편안하게 입을 수 있는 신사복인 라운지 슈트, 혹은 비지니스 슈트가 일반화된 20세기에 들어서 변화되었습니다.

오늘날의 신사복은 깃의 넓이나 상의의 트임, 그리고 바지의 주름과 바지 끝의 접단을 어떤 스타일로 하느냐에 따라 다양해질 수 있습니다. 하지만 적어도 한 벌의 정장은 같은 소재로 재단한 상의와 하의로 구성된다는 개념에는 변함이 없습니다. 따라서 남성 정장은 20세기 중반 이후로 거의 변하지 않았다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출처 : https://najena.tistory.com/83

2020. 05. 24. 11: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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