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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메리카노한잔
아메리카노한잔23.09.03

조선은 왜 숭유억불정책을 시행하였나요?

고려말 이성계가 위화도 회군으로 왕위를 찬탈해서 세운것이 조선이라고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새로 건국한 조선이 유교를 숭상하고 기존불교를 탄압하는 숭유억불정책을 시행하였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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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변의 개수6개의 답변이 있어요!
  • 안녕하세요. 황정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조선시대 불교 정책은 억불로 요약된다.

    성라학을 기치에 내건 조선 정부와 유학자들은 불교를 이단으로 취급하였고 그 억제만이 정도를 바로 세우는 길이라고 믿었습니다.


  • 탈퇴한 사용자
    탈퇴한 사용자23.09.03

    안녕하세요. 이승원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고려 말기까지 불교계의 재산은 어마어마한 규모였다고 합니다.
    이 때문에 조선의 신진사대부는 불교의 세력을 억제하여 불교가 가진 토지 등을 개혁하였습니다. 불교세력을 청산하는 것이 필수적 절차인 것이었습니다. 무신정권의 최후의 승리자로 인정받는 최충헌이 왕이 아닌 권신으로 남을 수밖에 없었던 것도, 기존의 '고려'라는 틀을 깰 수가 없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동안 왕조 변경은 분열된 나라들의 통합을 이룬 것이었다면, 여말선초의 역성혁명은 영토ㆍ인구ㆍ관제 등의 큰 틀은 그대로 유지된 채 그저 지배계층 내의 쿠데타로 국가승계가 된 것뿐인지라 기존의 틀인 고려와는 확실히 달라야 함을 드러내야 할 필요가 있었습니다. 그리하여 구 왕조와 결별할 목적으로 숭유억불 정책을 강하게 펼치게 된 것입니다.
    아이러니한 것은, 이후 조선 후기 유림세력의 본거지나 다름없는 서원이 자기들이 그토록 비판한 고려 말 불교의 모습과 똑같은 형태로 부패했다는 점입니다. 결국 흥선대원군이 서원 47곳을 제외하고 죄다 쓸어버린 것도, 선조 그리고 같은 유동근이 맡았던 태종이 몇몇 사찰을 제외한 대부분의 사찰을 밀어버린 것과 흡사합니다.


  • 안녕하세요. 김찬우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조선시대 불교 정책은 억불로 요약됩니다. 성리학을 기치에 내건 조선 정부와 유학자들은 불교를 이단으로 취급하였고 그 억제만이 정도를 바로 세우는 길이라고 믿었기에 숭유억불 유교를 숭상한다기보다 불교를 억제하는데 초첨을 맞췄습니다. 이는 불교의 존재를 부정하고 승려의 자격을 박탈하는 것이었고, 공인되지 못한 불교는 법제의 밖에서 스스로를 보전하여야 했습니다. 이후 임진왜란이 발발하자 의승군을 일으켜 국가의 위기 극복에 큰 공적을 쌓았습니다. 이후 불교는 사회적 효용성을 인정받으면서 사찰을 만들고 사람들을 가르치고 수행에 힘썼으며 민간 신앙을 포섭하여 폭넓은 종교적 역할을 수행하였습니다.

    도움이 되셨다면 추천과 좋아요 부탁드리겠습니다.


  • 안녕하세요. 최은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고려 초기부터 불교는 귀족이나 지배층과 연관되어 막강한 교세를 누렸고, 고려 말기 사찰이 광대한 토지를 소유하고 소작민들을 부렸다는 기록이 있으며 승려들이 권력을 부리거나 재산을 축적하여 고리대금업을 일삼는 일이 많았습니다.

    고려 초기때부터 불교의 폐단을 막으려던 지눌, 의천 등의 노력에서 불구하고 불교는 세력이 강해지니 신진사대부는 성리학을 주장하고 불교를 억제하며, 불교계가 소유한 재산을 축소하려고 했습니다.

    이에 조선의 신진사대부는 불교의 세력을 억제해 불교가 가진 토지 등을 개혁했습니다.

    무신정권의 최후 승리자로 인정받는 최충헌이 왕이 아닌 권신으로 남을 수 밖에 없던 것도 기존의 고려 라는 틀을 깰수 없었기 때문으로 그동안 왕조의 변경은 분열된 나라들의 통합을 이룬것이라면 여말선초의 역성혁명은 영토, 인구, 관제 등의 큰 틀을 그대로 유지된 채 지배계층 내의 쿠데타로 국가승계가 된 것뿐인지라 기존의 틀인 고려와는 확실히 달라야 함을 드러내야 할 필요가 있었기때문에 구 왕조와 결별할 목적으로 숭유억불 정책을 강하게 펴게 됩니다.


  •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고려 시대의 문화를 털러 버리고 성리학과 같은 새로운 사상을 백성들에게 심어 주기 위한 노력이였습니다. 불교가 삼국 시대에 공인 된 것은 사실 왕건 강화의 목적 이였습니다. 하지만 조선을 세운 정도전 같은 이들의 목적은 왕도 정치가 아니라 양반 귀족, 신하들에 의한 재상 정치가 주 목적 이였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불교를 배척 하고 유교를 숭상 하는 숭유 억불 정책이 필수 였습니다. 그래서 정도전은 < 불씨 잡변> 같은 책을 써서 불교를 비판 했습니다.


  • 안녕하세요. 조사를 해본 결과 조선은 건국 직후부터 유교를 숭상하고 불교를 탄압하는 숭유억불정책을 시행하였습니다. 이러한 정책은 조선이 유교를 바탕으로 한 성리학적 사회 질서를 확립하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숭유억불정책은 크게 다음과 같은 내용으로 이루어졌습니다.

    • 사찰 및 승려 수의 제한과 억제

    • 토지와 노비의 축소

    • 불교의 교리와 의식의 금지

    • 불교계의 정치적 영향력 축소

    이러한 정책으로 인해 불교는 조선 사회에서 그 위상을 크게 잃게 되었습니다. 불교 사찰의 수는 크게 줄어들었고, 승려 수는 급감하였습니다. 또한, 불교의 교리와 의식이 금지되고, 불교계의 정치적 영향력은 축소되었습니다.

    숭유억불정책은 조선 사회에 큰 영향을 미쳤습니다. 유교는 조선 사회의 주류 이념으로 자리 잡았고, 불교는 소수 종교로 전락하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변화는 조선 사회의 문화와 정치, 경제에까지 영향을 미쳤습니다.

    숭유억불정책은 조선의 건국 이념과 정치적 목적에 따라 시행된 정책이었지만, 불교를 탄압하는 지나친 정책이라는 비판도 있습니다. 이러한 비판에도 불구하고, 숭유억불정책은 조선 사회의 근본적인 변화를 가져온 중요한 정책이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도움이 되셨다면 좋아요 추천 부탁드립니다. ^^강대선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