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이수민 전문가입니다.
결정적이었던 건 뉴턴 이론과 아인슈타인 이론이 서로 다른 숫자를 내놓았다는 점이에요. 빛이 중력에 휜다는 예측은 뉴턴 역학에서도 나올 수 있었어요. 빛에 질량이 있다고 가정하면 태양 옆을 지나는 별빛이 0.87초각 정도 휘어야 했어요. 그런데 일반상대성이론은 시공간 자체가 휘어 빛이 그 곡률을 따라간다고 보니, 정확히 두 배인 1.75초각이 나왔어요. 어느 쪽이 맞는지 재보면 판정이 되는 상황이었던 거예요. 애매한 정성적 예측이 아니라 딱 두 배 차이라는 명확한 숫자였기 때문에 검증 실험으로서 가치가 컸어요.
관측이 어려웠던 이유도 있어요. 태양 근처의 별을 봐야 하는데 평소에는 태양이 너무 밝아 불가능해요. 개기일식만이 유일한 기회였고, 그래서 1919년 5월 에딩턴이 이끄는 영국 원정대가 아프리카 프린시페섬과 브라질로 나뉘어 떠났어요. 일식 중 태양 주변 별들의 사진을 찍고, 몇 달 뒤 태양이 없을 때 같은 별들을 찍어 위치를 비교했어요. 별이 원래 자리에서 얼마나 밀려 보이는지가 빛의 휘어진 각도예요. 결과는 아인슈타인의 값에 가까웠고, 이 발표로 아인슈타인은 하루아침에 세계적 명사가 됐어요.
다만 당시 측정 정밀도가 충분하지 않았다는 건 지금 인정되는 사실이에요. 오차가 예측값과 비슷한 수준이었고 일부 사진판은 품질 문제로 제외됐는데, 그 선택이 편향됐다는 비판도 있었어요. 그래서 이 관측만으로 확정됐다고 보기는 어렵고, 이후 여러 일식 관측과 전파망원경 측정, 최근의 퀘이사 관측으로 오차가 0.01% 수준까지 좁혀지며 확실해졌어요.
그래도 1919년 관측의 의미는 커요. 시공간이 휘어진다는 추상적인 주장이 사진 위의 별 위치라는 눈에 보이는 증거로 처음 확인된 순간이었고, 이론물리학의 예측이 실험으로 판정될 수 있다는 걸 대중에게 보여준 사건이었어요. 지금은 이 현상이 중력렌즈라는 관측 도구가 되어 암흑물질 분포를 재고 먼 은하를 확대해 보는 데 쓰여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