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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틀러는 어떻게 총리와 대통령을 겸직하는 총통이 될 수 있었나요?
안녕하세요. 강경원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히틀러는 국가수상직으로 독일을 통치하다가 당시 대통령 힌덴부르크가 죽으면서 대통령직도 겸직하게됨그러나 대통령의 권한과 수상의 권한을 합쳤을뿐 공식 직위는 지도자(퓌러) 겸 국사수상이었음퓌러라는 단어는 우리나라 말로 하면 공식적인 직책이기 보다는 북한에서 김정은 찬양할때 쓰는 영도자, 영도인, 최고지도자 이런 말에 가까움그러니까 히틀러는 이때부터 그냥 독일을 법적으로 통치하는 통치자가 아니라 독일민족의 우상이고 약간 어떻게보면 영적인 존재였던거임근데 총리와 대통령을 합쳤다는 이유로 총통이라는 번역으로 한국에 들어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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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
23.0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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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이종무 장군이 대마도를 점령하였는데 왜 대마도는 조선 땅이 되지 않은 것인가요?
안녕하세요. 강경원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당시 정벌하고 쓰시마에 대한 보고를 올렸는데, 땅이 척박하고 농사지을만한 곳이 없으며 사람이 정착하여 살 수없는 쓸모없는 땅이라고 여겼던것 같습니다ㅡ 참 안타까운 부분인데요....ㅠ 그리하여ㅠ한마디로 버렸다고 벌수 있지요. 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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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23.04.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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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화지문이라는 고사성어는 어디에서 유래하였나요?
안녕하세요. 강경원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입은 재앙의 문이다. 재앙이 입으로부터 나오고 입으로부터 들어가므로 항상 말을 조심하라는 뜻이다.출전입은 재앙의 문이요혀는 몸을 베는 칼이다입을 닫고 혀를 깊이 감추면처해 있는 곳마다 몸이 편하다口是禍之門舌是斬身刀閉口深藏舌安身處處牢- 풍도(馮道) 〈설시(舌詩)〉이 시는 《전당시(全唐詩)》에 실려 있다. 풍도는 당나라 말기에 태어나 당나라가 망한 후에 들어선 오대십국 시대의 후당(後唐)에서 재상을 지냈다. 그리고 후당의 뒤를 이어 들어선 후진(後晉), 그 뒤를 이은 후한(後漢), 다시 그 뒤를 이은 후주(後周) 등 여러 왕조에서 벼슬을 하며, 73세까지 장수를 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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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23.04.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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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선조 임금은 왜 이순신을 백의종군하게 만들었나요?
안녕하세요. 강경원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성경에 사울은 천천이요, 다윗은 만만이라~~ 는 말이 있습니다. 사울왕이 백성이 이 말을 듣고 시기하지요!선조도 당시 이런 마음이 있었던것 같습니다.그 어려운 시기에 원균의 모함으로 백의종군 시켜버리지요. ㅠㅠ ( 카토군을 자기는 정벌할수 있다고 하면서 이순신은 이것은 매복이며 휘말리면 안된다고 하는 생각을 어기고 결국 참패하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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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23.04.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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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에서 오르세미술관은 어떤 곳인가요?
안녕하세요. 강경원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아르누보 양식의 웅장한 건물인 오르세 미술관은 파리 만국 박람회를 기념해 건축가 빅토르 라루(Victor Laloux)에 의해 만들어진 철도역이었다. 오를레앙 철도의 종착역이었는데 철도의 전동화에 따라 운행이 중단되면서 이후 건물의 용도를 다양하게 바꾸어, 호텔이나 극장 등으로도 이용하였고, 한때 철거될 위기에도 처했다가 1986년 국립 주드 폼 미술관에 전시되어 있던 작품들이 이곳으로 옮겨지게 되면서 오르세 미술관으로 태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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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
23.04.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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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군자에 있는 식물들의 왜 선택 되었나요??
안녕하세요. 강경원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매화는 이른 봄의 추위를 무릅쓰고 제일 먼저 꽃을 피운다. 난초는 깊은 산중에서 은은한 향기를 멀리까지 퍼뜨린다.국화는 늦은 가을에 첫 추위를 이겨내며 핀다. 대나무는 모든 식물의 잎이 떨어진 추운 겨울에도 푸른 잎을 계속 유지한다는 각 식물 특유의 장점을 군자(君子), 즉 덕(德)과 학식을 갖춘 사람의 인품에 비유하여 사군자라고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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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
23.04.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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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 가장 오래된 절은 어디인가요.
안녕하세요. 강경원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전등사"대한불교조계종 제1교구 본사인 조계사의 말사이다. 381년 아도화상이 창건한 절로, 창건 당시에는 진종사라고 했으나 1282년 충렬왕의 비인 정화공주가 승려 인기를 중국 송나라에 보내 대장경을 가져오게 하고, 이 대장경과 함께 옥등을 이 절에 헌납한 후로 전등사라 불렀다고 한다. 1605, 1614년에 일어난 화재로 건물들이 완전히 소실되었고, 그 다음해 4월부터 재건하기 시작해 1621년 2월 완성되었다. 1707년 사각을 고쳐 짓고 별관인 취향당을 지었으며, 그뒤 여러 차례에 걸쳐 중수되었다.경내에는 대웅전(보물 제178호)·약사전(보물 제179호)·명부전·삼성각·향로각·적묵당·범종각 등이 있다. 중요문화재로는 중국 북송시대의 범종(보물 제393호)과 조선시대의 법화경판(1544)이 전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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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4.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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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의 과거제 자격과 문과, 무과, 잡과에 대해서 궁금합니다.
안녕하세요. 강경원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科擧: 시험 종류인 과목(科目)에 따라 거용(擧用)한다는 뜻- 중국 수나라 시대 때부터 시작- 신라시대에 전래되어 958년(고려 광종 9년)에 본격적으로 시행- 1894년 갑오개혁 때 폐지1. 문과(1) 소과(小科): 15세 이상인 자가 응시, 합격하면 성균관 입학자격을 주고 하급관리로 채용. 초시와 복시 두 단계로 실시- 생원시(경학시험): 사서의(四書疑) 1편과 오경의(五經義) 1편. 유교 경전에 대해 묻는 시험- 진사시(사장시험): 부(賦) 1편, 고시(古詩) · 명(銘) · 잠(箴) 중 1편. 시와 산문 등 문장력, 당시의 정책에 대해 논술하는 시험※관리 임용과 직결되는 제도가 아니었다. 합격한 후 성균관에 들어가 공부하다가 문과에 합격하여 관직에 오르는 것이 정상적인 길이었다.※생원과 진사만 되더라도 면역(免役) 특권이 주어져 사회적으로 일정한 예우를 받을 수 있었다.(2) 대과(大科): 성균관 출신과 소과 합격생이 응시, 고급 관리로 채용- 1단계 초시: 한성시(서울에서 실시), 관시(성균관에서 실시), 향시(각 도별로 지방에서 실시)- 2단계 복시: 초시 합격자를 대상으로 이듬해 봄에 서울에서 실시- 3단계 전시(어전시): 복시 합격자를 대상으로 궁정에서 실시※2단계만 합격하면 관직에 진출하는 것이었고, 3단계는 단지 등수를 정하는 것이었다. 보통 복시를 통과하면 급제했다고 하며, 전시 최고점자를 장원이라 불렀다. 초시에 합격한 후 복시에 응시할 수 있는 기회는 한 차례만 주어졌다.※시험 시기는 일반적으로 식년시(式年試)라 하여 3년에 한 번(자, 묘, 오, 유 - 복시를 기준으로 하고, 초시는 그 전년도에 실시)씩 실시했으나, 조선 후기로 갈수록 특별 시험(별시)이 늘어 과거 급제자가 증가했다.2. 무과- 문과와 함께 실시- 초시, 복시, 전시를 거치는 삼장제(三場制)로 운영- 시험과목은 강서(講書)와 무예(武藝)3. 잡과: 역과 · 의과 · 음양과 · 율과- 식년시와 증광시에만 실시- 대 · 소과의 구별이 없는 단일과- 초시 · 복시 2단계만 있고 전시는 없음※조선은 문반과 무반의 양반(兩班) 관료 체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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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4.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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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암 박지원 한문 소설의 특징과 작품 및 내용이 궁금합니다.
안녕하세요. 강경원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연암 박지원의 소설. 조선 후기에 연암 박지원이 당시 조선의 현실을 풍자하기 위해 한문으로 쓴 풍자 소설. 2020년 현재 고등학교,중학교 국어 교과서에는 허생전이 현대 한국어로 번역되어서 수록되어 있다.원래는 열하일기 안에 있는 《옥갑야화(玉匣夜話)》에 나오는 이야기였다. 박지원과 비장[1]들이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박지원 자신이 윤영(尹映)에게서 들은 변승업[2]의 부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다가 그와 허생에 있던 이야기를 펼친 것이, 바로 허생전의 내용이다.주인공인 허생은 가난한 형편에도 10년 글 읽기를 기약하며 매일 글을 읽고 있었는데 7년째 되는 어느 날 아내가 허생에게 내가 당신 다 먹여살리는 건 아시냐, 선비 일도 장인 일도 장사도 못 하면 차라리 도둑질이라도 해서 돈을 벌어 오라고 하소연 한다.그러자 허생은 아내의 절절한 말에 글 읽기를 멈추고 집 문 밖으로 뛰쳐나가서는 한양의 갑부인 변씨를 찾아가 당당하게 1만 냥[4]이라는 거금을 빌려달라고 하는데, 변씨는 허생의 행색은 거지지만 눈빛과 말투가 예사롭지 않은 것에 흥미를 느껴 이름도 안 묻고 1만 냥을 내준다. 허생은 그 돈으로 바로 안성시장에 가서 과일을 다 싹쓸이해서 10배의 폭리를 취하고 제주도로 가서 말총을 다 싹쓸이해서 망건 값을 10배로 올려 처음 꿨던 돈의 100배로 불린다. 이때 떼돈을 벌어 기쁘지 않냐는 시종에 말에 오히려 "1만 냥만 가지면 팔도를 뒤흔들 수 있으니 심히 한탄스럽도다!" 라면서 원시적이고 전혀 발전하지 못한 조선의 경제체계에 한숨을 내쉬었다.그런데 얼마 뒤, 때마침 변산에서 도적 떼들이 들끓자 그들의 사연을 듣고는 그들을 회유하여 살기 좋다는 무인도[5]로 데려가서 새 삶을 살게 하고 나가사키(장기)의 기근을 도와주면서 은 백만 냥을 벌게 되었다. 그러나 땅이 좁은 것에 한탄하면서 돌아가기로 마음먹으며 섬에 드나드는 배를 모조리 불태우고 바다에 50만 냥을 그냥 버린다. 그리고 섬에 있는 사람 중에 글을 아는 자들을 골라내어서 배에 태워 다시 조선으로 돌려보냈다. 그렇게 허생은 다시 조선으로 돌아와 가난한 사람들에게 많은 돈을 나누어주고 10만 냥이 남게 되자 변씨에게 몽땅 다 갚는다.변씨는 깜짝 놀라며 원금과 이자 1할만 받겠다고 하지만 허생은 거절했고, 대신 변씨가 허생의 집에 양식과 옷이 떨어질 때쯤 몸소 찾아가 도와주는 정도로 만족한다. 얼마 뒤 변씨가 어영청 대장인 이완 대장에게 허생의 얘기를 하자 이완 대장이 놀라며 허생을 찾아간다. 이완이 허생에게 청나라에 대한 대책을 묻자 세 가지 해결책[6]을 던졌는데, 이완이 모두 어렵다는 답만 했다. 그러자 허생이 이완을 꾸짖으면서 칼로 찌르려고 위협했고 놀란 이완 대장은 뒷문으로 도망갔다. 그 다음 날 이완이 다시 찾아가 봤지만, 허생은 이미 사라져 그 행적을 찾을 수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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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23.04.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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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하무인이라는 고사성어는 어디에서 유래하였나요?
안녕하세요. 강경원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안하무인'이라는 사자성어는 교만하고 제멋대로 행동하는 사람을 의미합니다. 이 표현은 중국 명나라 말기 작가 능몽초의 단편소설 <초각박안경기(初刻拍案驚奇)>에서 유래했습니다. 이 작품에서는 늦게 얻은 자식을 부모가 너무 귀하게 여기고 키워, 자식이 어려서부터 버릇이 없고 제멋대로 굴게 되어 마치 왕이 된 것처럼 행세하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결국 자식이 부모를 폭행할 정도로 인품이 망가지고, 부모가 후회하며 '안하무인'이라는 말이 나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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