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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국악에서 거문고와 가야금은 어떻게 다를까요?
안녕하세요. 안동주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일단 거문고의 역사가 더 오래된걸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고대때부터 있었고 이런 거문고를 보고 신라시대 때 좀 변형 시켜 만든 가야금이라고 얘기 됩니다.둘다 나무재질인데, 거문고는 여줄이고 가야금은 열두줄입니다. 거문고는 소리가 상대적으로 힘차고 가야금은 맑습니다. 거문고는 볼펜만한 술대를 가지고 연주하는데 가야금은 손으로 뜯는 방식입니다.감사합니다.
학문 /
음악
23.07.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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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민속문화재에 속하는 씨름경기의 시작과 유래는 어떻게 되는지요?
안녕하세요. 안동주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정확한 시기는 알수 없는데 삼국시대때 부터는 있었는 걸로 나옵니다. 신라시대에 금석문에 씨름하는 모습도 새겨져 있고, 고려시대에는 씨름판관이라는 관직명도 있었습니다. 조선시대에는 <링검도>라는 책에 씨름에 대한 상세한 내용이 있고 <동국여지승람>에도 언급이 많습니다.씨름은 중요무형문화재 제 50호이고 1983년에 지정됐습니다.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에도 등재돼있고, 고유무술이라는거 자체가 그 나라의 전통적인 무술을 말하니 고유무술에도 속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감사합니다.
학문 /
음악
23.07.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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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와 튀르키예는 왜 사이가 나쁜 건가요?
안녕하세요. 안동주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종교 문화 영토 등으로 갈등이 많았습니다. 특히 1923년에는 서로 전쟁을 치른 끝에 인구를 교환하는 일도 있었습니다. 튀르키예에 사는 그리스 정교도와 그리스에 사는 무슬림의 인구를 교환 한 것입니다. 이것 말고도 발칸전쟁, 그리스 독립전쟁 등 계속 갈등이 있었습니다.감사합니다.
학문 /
역사
23.07.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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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백성들은 주로 어떤 옷을 입고 지냈나요?
안녕하세요. 안동주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경국대전>을 보면 "백성의 옷차림은 공경하고 단정하여야 하며, 황색이나 명주옷을 입지 말아야 한다. 또한 은장도를 찰 수 없으며, 저고리나 겉옷의 깃에 동정을 달아야 한다. 동정의 이를 꼭 맞추어 입어야 하며, 고름매듭이 곱게 되도록 매야 한다. 머리쓰개를 언제나 똑바로 써야 하며, 버선을 발에 꼭 맞게 신어야 한다. 부엌일이나 그밖의 궂은 일을 할 때에는 깨끗한 앞치마를 둘러야 한다. 그리고 때와 장소에 어울리게, 예의범절에 어긋나지 않게 옷차림을 항상 단정히 해야 한다." 라고 나와 있습니다.그래서 주로 흰색이나, 회색, 갈색 옷을 입었습니다. 봄 가을에는 저고리 치마를 입었고, 여름은 베, 모시옷, 겨을은 솜옷을 껴 입었습니다. 감사합니다.
학문 /
역사
23.07.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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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와 조선이 최초로 외교적으로 접촉한 것이 언제인가요?
안녕하세요. 안동주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1884년의 조로수호통상조약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의도는 조선이 청나라의 영향력에서 좀 벗어날려고 한 것입니다. 이걸 계기로 러시하 군함은 어느 항구든 자유롭게 드나들 수 있었고, 수리도 할 수 있었습니다.감사합니다.
학문 /
역사
23.07.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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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치페이의 유래가 무엇인가요)
안녕하세요. 안동주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맞습니다. 실제로 네덜란드에서는 더치트릿이라고 한턱내는 문화가 있습니다. 근데 과거 영국인들이 대항해시대일때 무역에서 네덜란드인들한테 장사술을 못 따라잡는데 분한게 있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영국인들은 네덜란드를 뜻하는 더치를 안좋은 쪽으로 쓰기 시작했고, 한턱 낸다는 더치트릿을 더치페이로 쓰고 이거를 같이 먹고 각자 따로 계산한다는 부정적인 의미로 바꿨습니다.참고로 뿜빠이라는 말도 우리가 쓰는데 이는 일본의 분배를 뜻하는 말에서 왔습니다.감사합니다.
학문 /
역사
23.07.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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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의 사교육문화가 발달한 이유는 무엇인가요??
안녕하세요. 안동주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우리나라는 자원이 없습니다. 그래서 중간재를 수출해서 먹고 사는 나라입니다. 그렇다보니 인력이 중요 했고 인재가 중요하게 되었습니다. 명문대에 보내는것 = 성공이라는 계산이 되었고 이 명문대에 보내기 위해 교육이 치열해지기 시작했습니다.그래서 사회가 구조적으로 다양성을 인정하지 못하는데서 출발하고 학력 높고 대기업 다니고 의사 변호사 검사 되고 이런게 성공이고 다른건 조금 차별하는 문화가 생기지 않았나 싶습니다. 그래서 사교육이 심해졌습니다.그렇다 보니 수업이 시험을 위해 존재하고 시험만 잘 보면 되니까 주입식 암기식으로 진행이 되었습니다.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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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23.07.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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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왕들의 출퇴근 시간은 언제였는지 궁금합니다
안녕하세요. 안동주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왕들의 성향이 다 달라서 딱히 정해진건 없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대체소 새벽에 일어나서 신하들하고 회의하고 낮에는 정치문제를 다루고 외교를 처리하고 저녁에는 문화생활하거나 가족하고 보냈다고 합니다. 정확히 기록된 문서는 잘 없는데, 실록에서 세종대왕이 새벽 3시에 일어나 5시까지 신하들하고 회의하고 그 뒤에 낮이 되묜 학문을 연구하고 저녁에는 시나 음악을 즐겼다 이런식으로 나옵니다.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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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7.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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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하지욕'이라는 말에 대해 알려주세요.
안녕하세요. 안동주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과하지욕'은 한신이 불량배에게 한 말에서 유래한 고대 중국 고사성어로, 대의를 위해 눈앞의 굴욕도 참을 수 있어야 한다는 뜻입니다.한신이 성공하기 전에 백정인 불량배가 한신한테 "너가 칼을 차고 다녀도 어차피 사용 못한다. 목숨 걸 용기가 있으면 나를 찌르고 없으면 가랑이 밑을 지나가라" 했는데 가랑이 밑을 지나갔다 합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겁쟁이라고 놀렸습니다. 그리고 나중에 초나라의 왕이 되어 다시 그 백정을 찾아가서 벼슬을 내렸다고 합니다. "당시에 내가 당연히 백정인 너를 죽일 수 있었지만 실익이 없기에 그냥 참고 가랑이 밑을 지나갔다. 그 모욕을 줬기에 내가 그걸 참고 잘될 수 있엇다" 라는 일화에서 나온말입니다. 과하지욕 : 가랑이 밑을 지나가는 치욕 입니다.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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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23.07.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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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이 식민지 직접 지배를 포기하게 된 이유가 무엇인가요?
안녕하세요. 안동주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일단 스스로의 힘들이 약해졌습니다. 제2차 세계대전을 치루고 유럽의 나라들은 경제적으로도 정신적으로도 많이 힘든시기여서 식민지까지 돌볼 여유가 없었습니다. 그리고 각 식민지에서도 독립운동과 반란도 많아지고 국제사회에서도 지원도 해줬습니다. 그리고 유럽 해당 국가내에서도 식민지에 대한 반대 의견도 많이 커져서 스스로 반성하는 모습도 있었습니다.1947년 8월 15일 인도 파키스탄 독립선언문, 1954년 제네바협정 등을 통해 큰 식민지들이 해방되었습니다.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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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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