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양에 일식 보급한 사람 중 한국인이 많다던데
안녕하세요. 이동권 전문가입니다.일식이 아무래도 세계화에 더 앞섰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일식은 말씀해주신 것처럼 고급화 전략으로 해외에 소개되었습니다. 당시 일본의 버블과도 겹치는 시기였기에, 일본의 상승하는 경제력과 그들이 먹는 신비한 음식은 서구권 문화에서는 신비로운 음식으로 여겨졌습니다. 그래서 부자들로 시작하여 수요가 늘어났고, 일식당을 찾는 사람들도 많아졌습니다.미국의 예로 보면 LA에 수많은 일식당들이 이때 생겨났습니다. 그리고 그 사장들은 한인들도 상당히 많았습니다. 일식에 대한 수요가 늘어나자, 한국인일지라도 일식당을 내세워서 돈을 벌려고 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속초에 만석닭강정이 유명해지자, 주변으로 수많은 닭강정 집이 생겨나는 것과 같은 원리입니다.당시 해외에 이주한 한인교포들의 가장 최우선은 생존이었기에, 돈을 벌 수 있는 것을 찾다보니 일식당을 하게 되었다로 생각해주시면 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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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 문명은 왜 큰 강 주변에서 발전했나요?
안녕하세요. 이동권 전문가입니다.고대 문명이 큰 강에서 시작한 이유는, 대부분 농사와 관련이 있기 때문으로 보고 있습니다.큰 강의 경우 물을 길어오기 쉽기 때문에 농사를 쉽게 지을 수 있었고, 토지 자체도 퇴적물이 많아 비옥하기에 생산성이 매우 높았습니다. 이집트 나일강의 경우 정기적으로 범람을 자주 하였는데, 한번 넘쳐 흐른 강물이 빠지고 나면 그 땅은 매우 비옥해지기에 농사를 지을 때 더 좋은 수확물을 걷어들일 수 있었습니다.많은 생산성 -> 더 많은 인원의 수용 가능으로 이어지기에, 고대 문명들은 강 주변에서 주로 시작하였다고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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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서양인들은 그들의 문화의 뿌리가 그리스라고 하나요?
안녕하세요. 이동권 전문가입니다.그리스 문화가 유럽 문화의 원류라고 이야기 하는 이유는 다양하지만, 몇가지만 추려서 답변드리겠습니다.1. 그리스-로마로 이어지는 유럽의 역사"모든 길은 로마로" 라는 말을 들어보셨을 겁니다. 그만큼 로마는 유럽은 물론이고 세계로 통하는 가장 강대한 국가 중 하나였습니다. 이 로마 문화의 뿌리가 그리스 문화였습니다. 그리스가 강대국이었던 시절, 신생 로마는 그리스의 다양한 폴리스(도시 국가) 중 하나였습니다. 그 로마가 커지면서 최강대국이 되었고, 같은 문화를 가지고 시작하였기에 유럽을 통일한 로마 문화, 즉 그리스 문화가 유럽의 원류라고 불리우고 있습니다.2. 서양 철학의 시작인 그리스 철학세계 4대 성인 중 하나인 소크라테스는 그리스인이었습니다. "너 자신을 알라" 라는 말로도 유명한 소크라테스 외에도 플라톤, 에피쿠로스, 그외의 다양한 학파들에서 볼 수 있듯이 그리스에는 다양한 철학이 공존하고 끊임없이 토론을 하면서 발전시켰습니다. 이것이 서양의 다양한 근대 철학에도 영향을 주었습니다.3. 알렉산더 대왕의 원정과 헬레니즘 문화알렉산더 대왕은 오리엔트 지역까지 세력을 확장하였습니다. 그 과정에서 그리스 문화를 전파하였고, 이것이 오리엔트 지역과 합쳐지며 만들어진게 헬레니즘 문화입니다. 알렉산더 대왕의 원정과 함께 헬레니즘 문화는 동방까지 퍼져나갔고, 이후 동방의 간다라 미술까지 영향을 줍니다. 이 헬레니즘 문화의 주요 요소가 "개인의 행복 추구"입니다. 단순하게 널리 퍼진 것으로 끝나는게 아니라 이후 기술할 내용과도 이어집니다.4. 르네상스유럽 전역을 뒤덮었던 14~16세기의 문화 흐름이었던 르네상스는 "고대 그리스, 로마의 복원"을 추구하였습니다. 이러한 인식이 퍼지게 된 가장 큰 이유는, 중세가 "신"을 중심으로한 세계였기 때문이었습니다. 십자군, 교황, 마녀사냥 등 인간이 아닌 "신"을 위한 세계를 살았던 중세 사람들에게 르네상스는 인간 중심의 세계로 돌아가자는 일종의 문화 혁명 운동이었습니다. 고대 그리스의 "개인 행복 추구" 사상을 바탕으로 인본주의 움직임을 보였으며, 이것이 유럽의 근대 시대로 가는 가장 첫 관문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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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적으로 여성보다 남성이 먼저 구애하는 경우가 많았던 이유는 무엇인가요?
안녕하세요. 이동권 전문가입니다.문의주신 사항에 대하여 개인적인 의견으로 답변드리자면, 생물학적인 이유가 가장 크다고 생각합니다. 인간의 세계가 아닌 동물의 세계에서도 대부분의 수컷들이 암컷을 구애하는 행동을 보이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결국 자손을 낳는 것은 대부분이 암컷이기 때문입니다.동물의 본능으로는 자신의 뿌리를 잇기를 바라는, 종족 번식의 습성이 있습니다. 대부분의 종족 번식 형태가 수컷의 씨앗을 가지고 암컷이 잉태를 하여 번식하는 형태로 진행됩니다. 수컷의 입장에서는 자신의 유전자를 뛰어나게 번식시키고 싶어하고, 그로 인해 아름다운(더 훌륭한 자손을 낳아줄 수 있는) 암컷에게 구애를 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뛰어난 암컷은 그 만큼 자신을 원하는 수컷도 많을 테니, 선택권이 주어질 수도 있는 거구요.초기의 인간의 사회도 이와 크게 다르진 않았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초기 부족 사회에서는 모계 중심의 사회가 대부분을 이루고 있었습니다. 그만큼 아이를 낳는, 노동력을 결정지을 여자들에게 남자들이 구애하는 것이 기본이 되었을 것 입니다. 이러한 습성이나 본능이 아직까지도 남아있기에 남자들이 구애하는 일이 더 많아지지 않았나 생각합니다.이후 남성 중심의 사회로 변화하였어도, 더 아름다운 여자를 쟁취하기 위해서 남자들이 자신을 과시하고, 또 구애해 왔습니다. 이것도 결국 자신이 더 완벽한 종족 번식을 원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사회적 인식에서 종족 번식을 하지 못하면 결국 도태된 사람으로 여겨지게 되고, 특히 남자 입장에서는 결혼도 못하고 아이도 없다고 하면 그냥 잊혀진 사람이 된다는 인식이 더 강하게 남겨져 있다고 생각합니다.요즘에 여성이 먼저 고백하는 경우는 이제 남/여에 대한 역할 구분이 많이 모호해졌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아름다운 여자를 쟁취하기 위해 구애하는 남자가 아닌, 아름다운 사람을 쟁취하기 위한 다른 사람의 구애로 변화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만큼 능력이 있는 여자도 많고, 잘생긴 남자들도 많아졌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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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는 어떻게 훨씬 강대한 페르시아 제국을 상대로 승리할 수 있었나요?
안녕하세요. 이동권 전문가입니다.마라톤 전투에 대해서는 다양한 의견이 있지만, 현재 가장 정설로 받아들여지는 기준으로 답변드리겠습니다.아테네 군은 약 1만의 중장보병 병력을 가지고 있었고, 페르시아군은 보병 2만5천과 기병 2천명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페르시아군이 20만~60만이라고 하는 이야기도 있는데, 가장 정설은 위의 병력입니다.)페르시아군은 아테네의 점령을 위하여 군대를 나누게 됩니다. 그래서 보병 1만명과 기병 2천명을 배에 먼저 태워놓았습니다. 아테네군은 이 점을 간파하여 수비하는 입장임에도 먼저 공격을 감행합니다. 그로 인해 아테네군 1만명과 페르시아 보병 1만 5천의 싸움으로 이루어지게 됩니다. 아테네군은 일부러 중앙의 수비를 약하게 하여 페르시아군을 중앙으로 유인하였고, 중앙 돌파를 하던 페르시아군은 한 순간에 아테네군에게 포위당하게 됩니다. 아테네군의 주 전략은 좌/우를 일부러 강하게 하여 중앙군을 유인하였고, 양쪽 날개부터 격파하고 남은 중앙군을 소탕하는 작전이었습니다. 이로 인해 고립된 페르시아 중앙군은 괴멸하였고, 후퇴 시에도 지형을 제대로 알지 못하여 습지 방향으로 후퇴하면서 후퇴 병력도 모두 전멸당하게 됩니다.이후 배를 타고 공격하던 페르시아군을 막기 위하여 아테네군은 30km 거리를 3시간만에 중무장한채로 주파하여 아테네로 돌아왔고, 이미 수비벽을 완성한 아테네를 보고 페르시아군은 포기하고 돌아가게 되면서 아테네가 승리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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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올림픽과 김일성 북한 주석의 사망일과 동일한지
안녕하세요. 이동권 전문가입니다.파리 올림픽은 2024년 7월 24일에 시작하였습니다. 김일성 북한 주석의 사망일과는 무관하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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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를 좋아하는 학생이 선택할 수 있는 진로에는 어떤 것들이 있을까요?
안녕하세요. 이동권 전문가입니다.역사학과 졸업 후 역사를 활용한 직업에는 말씀해 주신 것 처럼 다양하게 있습니다. 말씀해주신 것 외에 주변에서 역사와 관련된 직업을 가진 예시를 우선 말씀드리겠습니다.첫번째로 고고학 발굴 학계에서 일하는 방법이 있습니다. 어떻게 보면 교수와 비슷할 수도 있는데, 발굴을 주로 하는 학회에서 일하는 것 입니다. 학회 안에서 연구하면서 교수가 되기도 하고, 아니면 발굴만 전문적으로 하는 분도 있습니다. 우리나라는 대형 토목공사를 하면 법적으로 발굴 조사를 무조건 하게 되어 있어 지속적으로 일을 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습니다. 연구직인데도 불구하고 재정적으로 꽤 괜찮게 일하시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그리고 외국인들 대상으로 가이드를 진해하는 분도 있습니다. 주로 서울 경복궁-종로쪽 투어를 진행하시는데 외국어를 배워야 하긴 하지만 우리나라의 역사를 외국에 알릴 수 있다는 것으로 많이 자부심을 가지고 일하십니다. 온라인에서 이런 투어들은 예약하기 쉬어서, 궁금하시다면 한번 신청해서 같이 다녀보는 것도 괜찮으실 것 같습니다.역사학과 졸업생으로 역사를 진로로 생각하신다기에 기분이 좋습니다. 저는 교육계 기업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다만 역사를 완전히 활용해서 일하지는 못하고 있습니다. 박물관 학예사나 문화재 연구원을 희망하신다면, 우리나라에서는 무조건 대학원이 선행되어야 합니다. 대학원은 결국 본인이 연구를 해야 되는 분야가 있어야 하기에 이끌어주실 교수님이 있는 대학교를 잘 선정하는 것도 꽤 중요합니다. (아직까지 역사학계는 학연이 꽤 있습니다.) 고등학교때 학업 외에 한국 유네스코와 같은 협회에서 주최하는 대외활동을 참여하는 것도 좋습니다. 경험적으로도 꽤나 유익했고 스펙으로도 좋았던 기억이 있습니다. 공무원을 생각하신다면 한국사 능력 검정시험을 보는 것도 좋습니다. 공무원 시험 제도가 변화하여, 한번 따두면 꽤 오래까지 사용할 수 있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마지막으로 역사와 관련된 직업은 많기에, 자신이 좋아하는 역사에 대한 열정을 계속 이어가는게 제일 중요할 것 같습니다. 특히 역사관에 따라서 다르게 해석하는 역사가 많습니다. 올바른 역사관을 가지고 자신의 열정을 꾸준하게 이어간다면 분명 훌륭한 역사학도가 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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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사찰은 어디인가요,
안녕하세요. 이동권 전문가입니다.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사찰로 알려져 있는 것은 인천 강화에 있는 전등사 입니다. 381년 고구려 소수림왕대에 건립되었다고 알려진 전등사는 이름이 계속 변경되다가, 고려 충렬왕 시대에 현재의 이름인 전등사로 바뀌었다고 합니다. 조선시대에 조선왕조실록의 유실을 막기 위하여 지방의 서고에 나누어서 보관을 하였던 정족산 서고도 전등사 내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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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우와 보수의 차이는?,,,,,,,,,
안녕하세요. 이동권 전문가입니다.보수와 진보를 부를 때 우파/좌파로 부르는 것의 시작은 프랑스 혁명 당시 국민공회에서 시작되었습니다. 최초의 국민 공회에서는 왕당파가 오른쪽 / 공화파가 왼쪽에 앉았었고, 왕당파가 축출된 이후에는 온건 공화파가 오른쪽 / 급진 공화파가 왼쪽에 앉게 되면서 우파/좌파로 불리었습니다. 아이러니한건 당시 좌파가 현재의 자유주의, 공화주의를 지향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즉 우파는 현재에는 보수로 많이 부르지만, 원래의 의미로 본다면 "현재의 체제를 유지하는 쪽"이 우파로 보는게 맞습니다. 같은 의미로 좌파도 진보로 많이 부르지만, 본래의 의미는 "새로운 체제를 지향하는 쪽"이 좌파로 보아야 하구요. 역사적인 정의로 본다면 위 처럼 보는게 맞습니다.현재의 의미는 사실 많이 변질되어 우파=보수, 시장경제체제, 계층과 권위를 옹호하는 성향으로 보며, 좌파=진보, 평등주의, 사회주의적 성향으로 많이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의 경우는 사실 정치적으로 봤을 때, 기존의 보수와 진보의 개념에서 많이 변질된 것들이 많아 경계가 애매모호 하기도 합니다... 우리나라로 본다면 우파=친미, 기업위주, 북한에 대하여 부정적으로 생각하면 될 것 같고 좌파=친중, 서민위주, 친북 정도로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사실 뭐가 맞다라고 하기엔 정치적으로나 외교적으로 복잡한 관계이기에 성향적인 차이로 봐주시면 될 것 같습니다.극우나 극좌는 위에서 말한 성향이 워낙 강해서, 전혀 타협이 되지 않으면 극우나 극좌로 보고 있습니다. 예를 든다면 제 개인적으로는 중국보단 미국이 외교적으로 좀 더 친해져야 되지 않을까? 생각하고 있는데, 상황에 따라서는 중국도 무시할 수 없다 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이런 저는 보수적인 성향으로 볼 수 있구요. 그런데 극우는 무조건 미국과만 친하게 지내야 하고, 중국은 우리의 적일 뿐이다 라고 이야기 하는게 극우입니다. 극좌도 반대의 경우로 같은 것 이구요. 타협에 대한 여지가 있느냐 없느냐로 보면 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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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역사가 달라졌다면 일제강점기는 없었을까여?
안녕하세요. 이동권 전문가입니다.역사에 만약은 없기에, 이렇다 라고 말하긴 어렵겠지만 당시 조선의 상황이나 외세의 침략 시기와 같이 생각했을 때 꼭 일본이 아니더라도 다른 나라들의 위협이 있었을 수도 있습니다. 상대적인 국력이 많이 약한 상황이었고, 다른 나라들도 조선 자체에 견제를 하기 보단 경쟁국을 견제하기 위하여 조선에서 활동을 하였기 때문에 쉽지은 않았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국제사회에서 당연한 친구는 없기에, 어떻게 해결에 나가느냐에 따라 다르긴 하겠지만 외교적으로 정말 많은 노력이 필요했을 것으로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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