닷컴버블 시기 한국 사회의 모습은 어땠는지 알고시퍼여?
닷컴 버블 시 인터넷이 곧 우리 사회의 미래라고 믿었던 것같습니다. 이 당시 IMF 외환 위기 직후라 불안했지만 동시에 인터넷과 벤처 기업에 대한 기대를 걸었던 시기입니다. 당시 '닷컴'이라는 이름만 붙어도 기업가치고 급등하였으며, 좋은 인터넷 주소는 높은 가격에 거래되었습니다. 그리고 1999년을 전후로 코스닥이 폭등하면서 직장인과 개인투자자들이 주식과 벤처 열풍에 동참했습니다. 거리에는 PC방, 초고속 인터넷과 휴대전화의 보급으로 디지털 시대가 시작되는 느낌이 강했습니다. 특히 벤처 성공의 신화가 보도되면서 너도나도 취업보다 창업과 투자에 뛰어들었지만 거품이 꺼지자 많은 벤처가 무너지고 손실도 컸습니다. 당시는 희망과 과열, 그리고 성장과 불안이 함께 공존했던 시기였다고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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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에 외국인을 보면 어떻게 대했나요?
과거에는 외국인을 아예 낯선 존재로 보기도 했습니다. 낯선 손님이자 동시에 경계해야 할 존재로 여겼습니다. 특히 개항 이후 외국 사신을 접할 때 이상하게 대하는 것이 일반적입니다. 외국인이 오면 보통 현지 관청, 영사, 상인조합, 종교와 연관됩니다. 통역은 현지에서 외국어를 아는 사람, 혼혈, 이주민, 상인, 역관 같은 중개인이 맡았으며, 숙박은 여관, 상인, 숙소, 조계지, 사원, 교회 같은 곳이 담당하였습니다. 그리고 신변 변호는 관청이나 영사 협의로 해결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외국인의 내왕으로 음식, 기술, 패션도 유입되었습니다. 따라서 개항장을 중심으로 새향신료, 조리법, 옷, 장식과 상품도 함께 들어왔으며, 외국인과 접촉으로 새로운 언어와 예절과 생활 양식도 퍼져나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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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계절이 남다른것 같은데 어떤 기준하에 절기가
절기는 달력의 날짜로 규정하는 것이 아니라 태양의 고도를 기준으로 만들어집니다. 즉 1년 동안 태양의 움직임에 맞추어 24등분으로 하여 만들어진 것이 24절기입니다. 춘분점을 0도로 보고 태양의 황경이 15도씩 움직일 때마다 하나씩 절기를 정합니다. 그래서 입춘, 경칩, 청명같은 절기가 생긴 것입니다. 절기는 옛날 중국 화북지방에서 농경과 관련되어 만들어졌습니다. 음력으로만은 계절을 잘 맞지 않아 농사 시기에 맞추어 태양의 기준의 절기를 만들어 절충한 것입니다. 우리나라도 중국의 24절기를 수용하여 사용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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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베스피에르는 왜 혁명 동지들까지 단두대로 보냈나요?
로베스피에르는 급진 자코뱅파로 프랑스 혁명 당시 공포정치를 이끈 대표 인물입니다. 당시 프랑스는 대프동맹군과 전쟁, 그리고 왕당파의 반혁명, 식량난, 정치적 혼란이 겹친 혼란한 상황이었습니다. 그는 강경책만이 혁명을 살릴 수 있다고 본 것입니다.그리고 로베스피에르는 혁명을 단순히 정권교체가 아니라 새로운 공화국의 도덕적, 정치적 정화 과정으로 보았습니다. 그의 노선에 동조하지 않으면 혁명의 적으로 간주한 것입니다. 게다가 자코뱅파 내부의 갈등은 숙청을 부추겼습니다. 더 많은 숙청을 주장한 강경 에페르파, 온건한 뒬롱파 모두 위험하다고 보았습니다. 그리고 로베스피에르가 장악한 공안위원회와 혁명재판소는 공포 정치를 심화시켰습니다. 즉, 로베스피에르는 혁명을 지키려면 내부 반대파도 제거하여야 생각하며, 전쟁과 반란, 혼란은 공포 정치를 가속화시킨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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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훗카이도의 원주민에 대해 궁금하네요.
일본의 훗카이도의 원주민은 아이누족으로 일본 본토의 야마토 민족과는 다른 북방계 민족입니다. 아이누족은 원래 신석기 시대 본토에 거주했던 조몽인의 후예로 북방으로 밀려난 민족입니다. 이들은 사냥, 어업, 채집을 중심으로 생활했으며, 고유한 언어와 문화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렌데 메이지 유신 이후 일본이 훗카이도를 본격적으로 개발하면서 일본 본토 사람들이 많이 이주하여 아이누족은 토지와 생활 기반을 잃고 점점 동화되었습니다. 공식적으로 아이누족의 수는 자료마다 다르지만 약 1만 3천~2만5천명 정도로 소개됩니다. 혈통이나 문화적 연관까지 널히면 더 많게 추정되기도 합니다. 한마디로 말하면, 훗카이도는 원래 아이누족의 땅이었고, 지금의 아이누족은 일본 사회 안에서 소수 원주민으로 살아가며 문화 보존 운동을 이어가는 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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샌드위치와 햄버거는 누가 언제 어디에서 어떻게 만들었나요?
샌드위치는 18세기 영국의 샌드위치 백작 존 몬테규의 이름에서 나온 것입니다. 그는 카드놀이를 좋아했는데, 카드 놀이를 하면서 한손으로 간편하게 먹으려 빵 사이에 고기 같은 것을 넣아 먹은 것에서 유래된 것입니다. 그리고 햄버거는 독일의 함부르크의 다진 고기 요리와 관련이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먹는 빵 사이에 패티를 넣은 햄버거는 19세기~20세기 초 미국에서 자리잡은 음식입니다. 피자는 이탈리아 남부 나폴리에서 유래된 것으로 그 원형은 지중해 지역의 납작한 빵에 재료를 얹어 먹던 음식까지 올라갑니다. 치킨은 미국의 남부에서 조리 전통과 연결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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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려는 왜 만주와 한반도에 걸친 광대한 영토를 가질 수 있었나요?
고구려가 삼국 가운데 가장 광대한 영토를 지배한 고대국가입니다, 그 바탕에는 왕권 중심의 중앙 집권 체제가 삼국 가운데 이른 시기에 정비되어 외부 팽창이 가능했습니다. 특히 4세기 국난을 극복하고 전진과 수교를 통해 태학 설립, 불교 공인, 율령을 선포하여 국가 체제를 완성하였습니다. 이는 광개토대왕과 장수왕같은 강한 왕들이 대규모 정복 전쟁을 가능하게 하였습니다. 그리고 주변 정세도 고구려에 긍정적 영향을 주었습니다. 중국은 흉노의 남하 이후 서진이 멸망하고 5호 16국으로 분열되었으며, 신라와 백제와의 힘의 균형으로 영토 확장에 유리했습니다. 지리적으로도 고구려는 산악 지역으로 산성을 바탕으로 외침에 대해 방어에 유리하고, 장기전으로 수행할 수 있었습니다. 즉, 고구려는 내부적으로 체제 정비와 강력한 국왕의 출현과 지형적 유리, 주변이 혼란할 때 기회를 잡은 것이라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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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시대 살던 일본인은 다 일본으로 돌아갔나요?
일제강점기 한반도에 거주했던 일본인의 대부분은 일본으로 돌아갔습니다. 해방 직후 미군정의 송환 정책에 의해 군인, 민간인 가리지 않고 상당수 1946년 봄까지 본국으로 돌아갔습니다. 일제 강점기 한반도에 살고 있던 일본인은 시기별로 다르지만 패전 직전에는 약 71만~80만정도 거주했습니다. 하지만 일부 본국 송환을 포기하고 한국에 남은 일본인들도 있었습니다. 한국인과 결혼한 배우자, 사정상 귀환하지 못했거나 한국내 재산을 포기하지 못하고 떠나지 못한 일본인들도 있었습니다. 이들은 한국 사회에 편입된 소수 정도로 이해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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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 운동가 후손들 지원을 위한 제도로는 모가 있을까요?
독립 유공자에 대한 예우는 기본적으로 '독립유공자예우에 관한 법률에 따라 국가보훈처의 독립유공자 예우, 보상 제도가 있습니다. 독립유공자 뿐만 아니라 유족, 손자녀 등 일정 범위의 후손에게 보상금과 생활 지원금이 지급됩니다. 후손 지원은 모든 후손에게 일괄 지급 방식이 아니라 보훈 등록 여부와 소득 재산 기준을 함께 보는 경우가 많습니다. 지자체별로도 별도로 지원하고 있습니다. 서울시는 저소득 독립유공자 후손에게 생활지원수당, 장학금, 임대주택 특별 공급, 공공요금 감면, 해외 뿌리찾기 사업 등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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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의 연예인들 중에 독립 운동가 후손에는 어떤 분들이 있나요?
현재 활동하는 연예인 가운데 독립유공자 후손으로는 윤주빈, 배성우과 배성재 형제, 홍지민, 김지석, 박환희, 청하 등이 있습니다. 윤주빈은 윤봉길 의사 종손으로 알려져 있으며, 배성우와 배성재는 독립운동가 신영호 선생의 외손자입니다. 홍지민은 독립유공자 홍창식 선생의 딸이며, 한수연은 독립운동가 김순오 선생의 외증손입니다. 김지석은 독립운동가 김성일 선생의 후손이며, 박환희는 독립운동가 하종진의 외손입니다. 청하는 독립운동자 김용근 선생의 외손녀입니다. 그리고 배우 김을동과 그녀의 아들 송일국은 김좌진 장군의 후손입니다. 또한 석주 이상룡 선생의 후손으로 알려진 배우 이서진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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