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사에서의 대표적인 패자에게 씌워진 역사적 왜곡에는 무엇이 있나요?
모든 역사는 '승자의 역사'라 할 정도 승자는 미화하고, 패자는 부정적으로 왜곡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예를 들어 백제의 의자왕은 나라를 망친 왕으로 기술되기 일쑤인데, '삼천궁녀를 둔 향락의 폭군'이라 묘사됩니다. 하지만 의자왕은 초기에는 효행이 높고, 개혁 군주였습니다. 나당 연합군의 강력한 침공으로 멸망했으며, 삼천궁녀설은 의자왕을 폄하하기 위해 만든 과장입니다. 그리고 광해군이 추진한 중립외교는 현실적인 외교 정책이었으나 당시에는 패륜적으로 묘사되었습니다. 오히려 광해군은 전후복구와 대동법 시행 등 개혁에 적극적이었습니다. 또한 정여립 모반 사건에 대해선도 당시 역모를 꾀한 반역자로 기술되어 있지만 실제로는 서인 세력이 동인 세력을 제거하기 위한 정치적 조작 사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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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 선조들은 한옥 창호문으로 어떻게 겨울을 버텨냈을까요?
과거 한옥의 문은 유리대신 창호지를 사용하였습니다. 창호지는 주변에 얇은 공기층을 형성하여 열 보존을 돕고, 공기 순환이 좋습니다. 유리보다 9배 단열 효과가 있다고 합니다. 게다가 창호지를 문살 안팎으로 이중으로 바르면 더 이중창 효과도 있다고 합니다. 가을마다 문풍지를 바르고, 기존 창호지를 붙입니다. 그러면 겨울에는 창호지가 팽팽해져 더 단단해 집니다. 옛날 선조들은 창호지의 우수한 단열 성능과 덥루어 온돌의 강력한 난방과 화로 등의 보완 단열로 겨울을 슬기롭게 견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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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에는 '익명'이 최고의 사치가 될 수 있을까요?
요즘은 개인정보가 비밀이 아닐 정도로 공개된 것을 수용해야할 시기입니다. 그런데, 머지 않은 미래에는 익명성이라는 것은 사치품이 될 수 있습니다. 기술적 추적의 보편화로 얼굴 인식 기술, 위치 추적, 생체 인식, AI 분석을 통해 개인이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에 모든 행동이 기록되고 감시될 것입니다.특히 기업들은 개인 위치 정보를 수집하여 맞춤형 서비스 제공 등 상업적으로 활용하고, 제 3자에게 판매하기도 할 것입니다. 또한 국가 안보와 범죄 예방 등을 위해서도 감시 사회가 심화될 것입니다. 게다가 익명성을 유지하려면 추가 비용이 들어갈 것이기 때문에 비용도 많이 들 것이기에 사치로 여길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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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나라의 특급 첩보원인 사세용 장군은 누구?
사세용은 임진왜란 당시 명나라가 일본에 파견한 첩보원이라 합니다. 그는 명나라 황제 직속의 정보기관인 금의위 소속 무관입니다. 그는 임진왜란 당시 조서을 돕기 위해 첩보원으로 발탁되어 일본이 기밀정보 수집과 일본군이 동향을 파악하였습니다. 일본이 조선분할통치안을 명군에 제시했는데, 사세용이 일본의 의도와 협정 내용을 폭로하여 협상 결렬과 조선의 분단 위기를 저지했습니다. 그리고 일본 사쓰마 번에 잠입하여 현지 중국 귀화인들의 이용해 일본의 군사 동향을 수집하여 명에 보고하였습니다. 즉, 그는 명나라 특급 첩보원으로 조선 분단 위기를 막는데 기여했으며, 일본내에서 정보원 네트워크 설치한 인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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압록강은 흐른다 이미륵 작가님은요,,
이미륵은 1899년 3월 8일 황해도 해주에서 태어나 1950년 3월 20일 독일 뮌휀 교외 그래펠핑에서 51세 나이에 위암으로 사망하였습니다. 그는 천석꾼 지주 이동빈 가문의 3대 독자로 태어났는데, 어머니가 미륵불에게 기도하여 얻은 아들이라 미륵이라 불렸다고 합니다. 그는 18세의 나이로 경성의전에 합격하였으며, 1919년 3.1운동에 가담하여 수배당하다가 1920년 압록강을 건너 상하이를 거쳐 독일로 망명했습니다. 그리고 독일에서 47세 나이에 어린시절과 고향, 가족에 대한 향수를 담은 자서전적 소설 <압록강은 흐른다>를 발표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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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수리와 궁녀는 어떤 점에서 달랐나요?
궁궐에서 궁녀는 궁중의 모든 여인들의 총칭이지만 일반적으로 상궁과 나인들만 의미합니다. 궁녀는 가장 높은 관품인 정5품의 제조상궁 이하 정9품 주궁에 이르기 까지 관품을 제공받았습니다. 나인은 상궁 아래에서 시중을 드는 일반 궁녀를 말합니다. 이들은 왕, 왕비, 후궁의 시중을 들고, 왕의 침전 관리, 왕실 문서 보물 관리, 왕실 의례를 주관합니다.무수리는 몽골어로 '소녀'를 말하며, 궁궐에서 청소나 세숫물 등 허드렛을 하는 여자 노비를 말합니다. 천민 신분으로 궁궐 청소, 물 긷기, 불때기 등의 잡일을 합니다. 따라서 궁녀는 내명부 소속으로 왕실의 공식 시녀이며, 무수리는 노비입니다. 하는 일도 궁녀는 왕과 왕비를 시중을 드는 고급 업무, 무수리는 허드렛일을 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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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발령 당시에 지키지 않으면 어떻게 되었나요?
1895년 을미개혁으로 급진적인 여러 개혁이 단행되는데, 대표적인 것이 단발령입니다. 단발령은 순검이 거리를 순회하다 단속에 걸리면 강제로 상투를 자르는 방식으로 추진되었습니다. 신분에 관계없이 잘라버리는 방식이었습니다. 강압적인 분위기를 조성하면서 단발령을 공포했습니다. 단발을 하지 않은 관리는 파면하고, 따라서 관청에서 단발하지 않은 경우는 직무 수행이 불가능했으며, 관공서 출입도 불가능했습니다. 최익현 선생 등 강력하게 저항하기도 했으며, 의병 저항이 일어나기도 했습니다. 강압적인 시행으로 반발이 컸으며, 아관파천 이후 중단되면서 개혁 자체가 실패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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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시황의 무덤은 중국이 왜 발굴을 중지 했나요?
진시황 무덤은 현재 발굴이 중단된 상태입니다. 그 아유는 유물 보존 기술의 한계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병마용 발굴 당시 채색이 발굴 직후 몇분에서 몇시간 만에 벗겨지고, 변색되는 문제가 발생했습니다. 즉 현재 기술로는 유물이 원래 상태를 완벽하게 보존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또한 수은 문제입니다. <사기>에 따르면 무덤 안에 수은으로 강과 바다를 만들었다고 기록이 있습니다. 수은 증가는 작업자에게 치명적 손실을 줄 우려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 외에도 도굴 방지를 위한 자동 발사 장치, 복잡한 지하 구조 등으로 불굴의 어려움도 있습니다.중국 정부는 앞으로 30~50년간 발굴을 중단하기로 결정하였습니다. 이는 보호 우선, 과학 연구, 적절한 개발의 원칙을 바탕으로 향후 보전 기술이 발전할 때 기다리겠다는 계획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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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녕왕릉이 한국사에서 가지는 의미는 뭔가요?
백제 시대의 고분 가운데 무령왕릉은 유일하게 주인공을 확인할 수 있는 왕릉입니다. 무령왕릉은 도굴되지 않은 상태로 배수로 공사중에 1971년 우연히 발견되었는데, 무덤에서 2900여점의 유물이 출토되었습니다. 무령왕릉은 삼국 시대 왕릉 무덤 가운데 주인이 명확히 확인된 유일한 사례입니다. 무덤의 내역을 확인할 수 있는 지석을 통해 무령왕의 사망, 안장, 왕비의 사망과 안장 시기를 정확하게 증명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도굴되지 않은 유물이 1500년간 원형 그대로 보존되어 백제 문화의 찬란한 문명과 국제적 위상을 확인시켜줍니다. 하지만 아쉬운 점도 있는데, 발견 후 불과 14일만에 발굴을 졸속으로 종료하여 충분한 연구와 기록이 부족하고, 물에 잠긴 유물들이 급격히 산화되며 일부 손상과 보존 처리가 미흡하였습니다. 또한 발굴 전후 연구가 미흡해 학술적 가치를 충분히 활용하지 못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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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역사에서 사람들에게 돈이나 물건을 빌린 뒤 갚지 않은 인물은 누구인가요?
조선시대에도 채무를 지고 떼어먹는 사례는 많을 것입니다. 그 가운데 역사적으로 유명인 가운데, 인조반정으로 공신이었던 김자점은 고리대금으로 백성들을 착취한 인물로 유명합니다. 왕족 가운데 숙종 때 평해군은 채무자가 도마가자 그 아내를 잡아들여 한달 동안 채찍질해 죽였다고 실록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정조 때 안동에 사는 사족 김성암은 사채를 갚지 않아 채권자에게 몽둥이로 맞아 죽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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