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라시대 왕의 유품에대한 질문 입니다.
신라 왕의 유품을 개인이 소지하기에는 불가능합니다. 금관, 옥장식, 투구, 갑옷 같은 것은 대부분 왕실 유품 수준으로 국가 유산급 문화재에 해당할 가능성이 크며, 개인 마음대로 소장, 매매할 수 없습니다. 다만 합법적으로 소장할 수도 있습니다. 다만 정식으로 거래 및 양도된 유물, 도굴품, 장물이 아닌 경우, 국가 지정 문화재가 아닌 경우 등은 적법한 절차에 의해 개인 소장도 가능합니다. 하지만 출저가 불명한 것은 대부분 매장 문화재를 도굴하거나 매입한 것으로 추정하여 국가 문화재에 해당합니다.
평가
응원하기
삼국사기와 삼국유사의 차이점이 궁금합니다
우선 <삼국사기>와 <삼국유사>는 고려시대에 삼구기대를 소재로 서수란 역사서입니다. <삼국사기>는 고려 인종(1145)에 김부식 등이 왕명을 받아 편찬한 역사서로 유교적 합리주의 사관에 입각하여 기전체로 서술하였습니다. <삼국유사>는 승려 일연이 충렬왕(1281)에 몽골 침입 등의 국난 극복 과정에서 민족 자존심을 바탕으로 불교, 신화 등 신이사관에 입각하여 서술하였습니다. 삼국사기는 국가적 사업으로 편찬한 것으로 공식 기록이며, 삼국유사는 신화, 불교, 전설 등 이야기를 담은 역사책입니다.
채택 받은 답변
평가
응원하기
일제시절 수많은 고분들을 조사한다고 파헤쳤는데 이에 대해 학술보고서를 제대로 낸 경우가 있긴 한가요?
일제 강점기라도 고분 발굴 등의 사안에 대해 일부 보고서가 남긴합니다. 하지만 당시 고분 조사는 순수 학술 조사라기 보다는 식민지 통치 목적과 유물 수집이 섞인 조사였으며, 보고서도 거의 남지 않은 경우가 다반사입니다.예를들어 경주 서봉총은 1926년 조사 이후 보고서가 정리되었으며, 2014년 경주 서봉총을 국립중앙박물관에서 발간되었습니다. 즉, 일제강점기 형식적으로 조사와 발굴을 했지만 부장품을 챙기기 위한 것이며, 일부 보고서를 남기기는 했으나 거의 남기지 않았습니다.
채택 받은 답변
5.0 (1)
응원하기
남송과 북송은 같은 나라라고 할 수 있나요?
남송은 북송을 인은 나라로 국호를 송이라 하였습니다. 960년 조광윤에 의해 성립한 송의 수도는 본래 카이펑으로 화북에 위치합니다. 그런데, 1127년 금의 침략으로 카이펑이 점령되고, 이후 고종 조구가 강남의 임안(항저우)에 수도를 천도하여 북송을 이어받아 남송을 세운 것입니다. 정확하게는 남송은 북송 황실을 잇는 송나라의 재건에 가까우나 새로운 왕조라기 보다는 송나라의 남쪽에서의 연속 왕조입니다.
채택 받은 답변
평가
응원하기
우리나라 역사에서 무속신앙의 시작점은 어떤 시대라 할 수 있나요?
무속신앙은 신석기 시대 원시신항에서 기원합니다. 신석기 시대의 원시 신앙으로 샤머니즘, 애니미즘, 조상숭배, 토테미즘 등이 있었는데, 그 가운데 샤머니즘은 무속을 믿거나 무속인을 통해 신과 연결하는 사상입니다. 특히 우리나라는 늦어도 고조선의 단군은 제사장, 샤먼으로서 제정일치 사회라는 것이 단군신화 등에 반영되어 있습니다. 무속신앙은 특정 왕조가 만들어낸 종교라기 보다는 국가 형성 이전부터 내려온 토착 신앙입니다.
채택 받은 답변
평가
응원하기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나라는 어떤 나라인가요?
현재 기준으로 행복 지수가 가장 높은 나라는 핀란드입니다. 핀란드는 8년 연속 1위를 차지하고 있다고 합니다. 그 다음은 덴마크, 아이슬랜드, 스웨덴 등 북유럽 국가입니다. 우리나라는 58위입니다. 방글라데시가 높다는 인상은 아마 다른 행복 지표나 맥락과 섞여 기억된 것일 가능성이 큽니다. 그리고 과거 부탄이 행복 지수 1위라고 많이 소개되곤 했습니다. 그런데 그 표현은 다소 단순화된 것입니다. 1972년 국왕이 국민총행복을 국민총생산보다 중요한 목표를 세워 추진한 적이 있습니다. 하지만 이후 순위가 크게 내려갔습니다.
채택 받은 답변
평가
응원하기
로마제국 붕괴의 근본적 원인은 뭔가요?
로마 제국 붕괴의 직접적 원인은 476년 게르만의 용병 대장 오도아케르의 반역에 의해 멸망했습니다. 하지만 로마의 멸망 원인, 배경에는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우선 군인 황제 시대 이후로 무능한 황제의 출현으로 정국이 매우 혼란했습니다. 즉 국경 방어보다는 권력 투쟁이 더 큰 문제가 되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노예 공급이 중단되면서 라티푼디움 제도가 붕괴되고, 부자유 소작농에 의존하는 자급자족적 콜로나투스제가 확대되었습니다. 이는 자영농의 몰락과 상공업과 도시의 쇠퇴로 이어졌습니다. 그리고 게르만족의 이동 등 외부적으로 이민족의 침입 등 외부 충격을 버티지 못했습니다.
채택 받은 답변
평가
응원하기
신라 첨성대는 과연 무엇을 관측하던 천문대 였나요?
첨성대는 신라 선덕여왕 시기에 축성된 천문대입니다. 첨성대가 천문대였다면 오늘날처럼 천체 망원경으로 별의 생김새를 자세히 볼 수 있는 장치가 있어야 하는데, 그렇지는 않습니다. 이 시기는 태양, 별, 달의 위치와 움직임을 관찰하는 것입니다. 절기와 달력을 계산하는 일을 했을 것입니다. 즉 첨성대는 단순히 별구경이 아니라 절기 판단과 농사 시기 조절, 왕실 길흉 점검 등의 목적이 있었던 것입니다.
채택 받은 답변
평가
응원하기
누구 염장 지르나의 염장의 의미는 뭔가요?
유쾌한 질문입니다. "염장 지르다"의 속을 긁거나 일부러 약을 올려 화나게 하는 것을 말합니다. 예를 들어 누군가 힘든 상황에서 옆에서 자랑하거나 커플이 지나치게 다장한 모습을 보면, '내 염장을 지르는구나'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염장"은 소금에 절이는 것을 말하는데, 상처에 소금을 뿌린다라는 것입니다. 즉 남의 불만이나 속상함을 더 자극한다는 의미로 확장된 것입니다.
평가
응원하기
왜 조선시대 실학자들은 대동여지도 같은 정밀한 지도를 만들려고 했을까요?
조선시대 대동여지도와 같은 정밀 지도를 만들려 했던 이유는 국토를 정확히 알야야 행정, 군사, 경제, 교통을 제대로 운영할 수 있다고 여겼기 때문입니다. 세금 징수와 군사 이동, 관아 연락, 길 안내 같은 문제를 정확히 처리할 필요가 있었던 것입니다.김정호는 전국을 답사하고 기존 지도를 모아 비교하면서 산맥, 하천, 도로, 역참, 성곽 등을 자세하게 정리했습니다. 특히 축척이 정확하고, 산줄기와 물줄기를 정확하게 그렸습니다. 또한 기호와 점으로 정보를 담아 실제 행정과 이동에 쓸수 있게 한 것입니다.
채택 받은 답변
평가
응원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