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라미드는 진짜 어떻게 세웠을까??
피라미드는 고대 이집트에서 건설한 무덤 양식입니다. 피라미드의 주요 원료는 석회암과 화강암으로 채석장에서 채석합니다. 구리톱으로 돌에 줄질을 하고, 홈을 만들어 쐐기를 꼽고 물을 부어 팽창시켜 돌을 깎습니다. 나일강을 이용하여 수송합니다.그리고 경사면을 설치하여 수십명 노동자가 한 조가 되어 석재를 끌어 올려 층층이 쌓습니다. 아래쪽 큰 돌을 먼저 쌓고 위쪽으로 작은 돌을 차례로 올리며 수만 명 노동자의 조직력으로 완성했습니다. 농사철이 끝난 농부들이 건설 현장으로 이동하여 필요한 노동을 제공했습니다. 수학적 계산과 기하학적 원리, 별자리 천문학적 관측을 바탕으로 설계되었으며, 경사로, 지레, 썰매, 트랙 등을 사용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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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문화에 대하여. 서양 문화랑 차이점?
우리나라를 포함하여 동양 문화에서는 성을 먼저 쓰고, 이름을 이어 붙입니다. 이는 가문과 조상을 중시하는 문화입니다. 그리고 아내의 원래 성도 유지하는데, 이는 대를 잇는 의미때문입니다. 반면 서양은 이름을 먼저 쓰고, 성을 나중에 붙입니다. 이는 개인의 정체성을 강조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결혼후 아내의 성을 남편의 성으로 바꾸는 것은 가족이 같은 성을 써야 가족 느낌이 강하기 때문입니다. 특히 서양에서 결혼 이후 남편 성을 따르는 문화는 가부장적 전통에서 비롯되었는데, 여성을 남편의 소유물로 보는 관점입니다. 그렇다고 이와 같은 것은 동양에서 건너간 것은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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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국진체는 왜 알려지지 않았을까요?
동국진체를 창시한 인물은 17세기 옥동 이서입니다. 그는 남인 명문가 이익의 형으로 옥동체라고 불리며, 동국진체 하였습니다. 그리고 18세기 이광사가 동국진체를 완성하였습니다. 동국진체는 중국의 필법을 우리나라식으로 진화시킨 서체로 "동쪽 나라의 진짜 글씨"라는 의미입니다. 하지만 동국진체가 잘 알려지지 않은 이유는 용어 자체가 현대 학자 후대에 만들어졌고, 역사 교육 과정에 한계로 석봉체, 추사체에 비해 비중이 약하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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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주막의 국밥이 있었나요? 국밥을 하려면 솥이 있어야하는데..
조선 후기 국밥이 존재했습니다. 초기 초기 주막은 잠만 자는 곳이지만 음식을 팔지 않았습니다. 양난 이후 주막이 번성하였으나 여전히 음식점 역할을 하지는 않았습니다.하지만 18세기 이후 대동법 시행으로 화폐 유통이 확대되면서 주막에 시래기 국밥이 등장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19세기 활발히 운영되어 소고기 장국밥, 설렁탕, 육개장 등 다양한 국밥을 판매하였습니다. 솥은 삼국시배 부터 사용하였으나 무쇠솥은 고려 시대 이후 본격 사용하용습니다. 온돌 아궁이에 가마솥을 올려 밥, 국 등을 조리하는 용도로 사용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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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가 B이지민 B가 C이며 C는 A가 아닌경우의 존재의 의문
이것은 저치 명제와 부분 명제가 섞인 형태를 말합니다. 수학적으로 정삼각형(A)은 삼각형(B)입니다. 삼국형(B)은 다각형(C)입니다. 하지만 다각형(C)의 모두는 삼각형(A)이 아닙니다. 다른 예로는 고양이(A)는 동물(B)입니다. 동물(B)은 생명체(C)입니다. 하지만 생명체(C)가 모두 고양이(A)는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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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룡이 구약시대에도 있었나요....??
성경의 구약이 6000년경에 쓰여졌다고 한다면 과학적으로 6500만년전에 멸종된 공룡이 인간과 공존하지 못하므로 맞지 않습니다. 그리고 공룡이리나는 용어 자체가 1841년 만들어졌기 때문에 성경에는 언급되지 않습니다. 하지만 성경 해석적 측면에서 공룡은 인간과 함께 하나님이 창조한 6일째에 존재하였습니다. 창세기 1장의 "땅의 짐승"에 공룡이 포함되었으며, 노아 방주에도 들어갔고, 홍수 이후 사람과 함께 살았으나 환경 변화로 멸종했다고 봅니다. 공룡이라는 단어는 없지만 '탄니인(큰짐승)" 등이 공룡을 지칭한다고 해석됩니다. 즉, 성경 문자적 해석을 취하면 공룡은 구약시대에 존재했고, 과학적 관점을 취하면 구약시대에는 없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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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스페이퍼는 베트남이 원조인가요?
라이스페이퍼는 베트남이 원조입니다. 베트남어로 '반짱이라 부르며, 쌀가루와 타피오카, 소금 물이 주재료입니다. 쌀가루를 얇게 펴서 말린 형태로 22cm가 가장 흔합니다. 베트남 남부 메콩강 지역에서 쌀을 소비하기 위해 만들었는데, 떠이닌 지방 짱방 마을의 가정주부가 실수로 만들어낸 것이라는 전설이 있습니다. 라이스페이퍼는 쉽게 상하지 않아 오래 보관할 수 있어 베트남 전쟁 때 군인들의 주요 식량으로 사용하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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튀르키예 관련 궁금증있어서 질문 올립니다.
현재 튀르키예는 유럽 연합의 구성국은 아닙니다. 하지만 1987년 EEC에 가입 신청했으며, 1999년 헬싱키 EU 이사회에서 공식 회원국 후보국으로 인정했습니다. 이후 2005년 공식 가입 협상을 시작햇으나 2016년 쿠데타 시도 2019년 그리스와 갈등으로 협상이 멈춘 상태입니다. 튀르키예가 EU에 가입하고자하는 이유는 시장 진출 확대, 정치적 안정 강화, 유럽 안보 유지에 기여하고 자국 안보를 보장을 위하서입니다. 하지민 EU는 인권 침해와 법치주의 부족, 코펜하겐 기준인 민주주의, 인궈느 시장 경제 등의 위반, 그리고 이슬람 국가, 사법 구조 문제 등의 회원국 의무 미이행을 이유로 회원국 가입을 거절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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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5일장은 자연스럽게 날짜가 고착화 된것인가요?
본래 조선은 중농억상 정책에 따라 상거래를 통제했습니다. 하지만 농민들은 교역의 필요성에 15세기 후반 지방에서 자연스럽게 장시가 출현했습니다. 처음에는 한달에 한번 내지 두번 열리는 보름장, 열흘장을로 열렸습니다. 16세기 중반에는 장시가 전라도, 충청도, 경상도 일대로 확대되었습니다. 그런데, 양란 이후 정부의 중농억상 정책이 약화되면서 농민들은 자구적으로 상행위가 확대하였으며, 상품화폐경제가 발달하였습니다. 18세기에는 현재와 같은 5일장으로 전국적으로 정착되었습니다. 오일장은 지역의 유통망을 형성하고, 상설시장이 등장하는 등 규모가 더욱 커지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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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릴 문자는 어디서 어느나라어 쓰던 언어일까여?
키릴 문자는 9세기말 비잔틴 제국의 선교사 성 키릴로스와 성 메토디오스 형제가 개발한 문자입니다. 그리스 문자를 기반으로 일부 글라골 문자도 참고하여 제작하였습니다. 불가리아 제국에서 처음 사용하였다가 동유럽 다른 슬라브 국가들 루스, 러시아 제국 등이 사용하였습니다. 오늘날에도 키릴 문자는 러시아, 우크라이나, 벨라루스, 세르비아, 불가리아 등 여러 국가에서 공용 문자로 사용되고 있으며, 현재 120개 이상의 언어가 키릴 문자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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