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 초요갱이라는 기생은 관습도감 소속이었다던데 관습도감에 소속되서도 천민신분인가요?
초요갱은 조선초기 최고의 기생으로 세종의 7남 평원대군의 첩이며, 뒤에 계양대군, 화의대군 등 세종, 단종 시기 왕실 스캔들의 주인공입니다. 그는 16회나 실록에 언급될 정도로 기생 출신으로는 이름났습니다.하지만 그녀가 비록 평원대군의 첩이라고 하더라도 관습도감의 소속으로 천민이었습니다. 조선 시대 법적으로 천민 여성이 양반, 왕족의 첩으로 들어가는 것을 인정하기 않았고, 따라서 제도적으로 천민으로 남았습니다. 즉 그녀는 왕실, 관습도감에서 관리 통제를 당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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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희는 딱히 정적이 없는 공직생활을 했었나요?
황희는 고려말부터 조선 초기 관료로서 정적없이 생활한 것으로 보입니다. 황희는 태종, 세종에게 큰 신임을 받아 왕구너 측 중앙 정객이었으며, 세종 재위시에는 18년간 영의정으로 재직하였습니다. 그는 왕권 쪽의 핵심 인물이지만 동시에 관료들과 협상, 조정을 하면서 자기 파벌 없이 생활한 것으로 평가받습니다.그리고 그가 파벌 없이 비치는 것은 행정 실무형 관료이며, 청렴한 명신 이미지를 유지하려는 노력 덕분입니다. 다만 윤회 맹사성과 갈등하기도 했지만 조정자, 중립자로 역할에 충실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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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몽주의 이성계 제거 계획은 무엇 때문에 실패하게 되었나요?
정몽주는 정도전, 이성계 등 세력을 제거하려 했으나 이미 정치 군사적으로 세력이 기울어져 쉽지 않았습니다. 반면 정몽주는 문신, 학자 중심의 보수파라 결단력, 군사력, 조직력이 부족했습니다.그에 비해 이방원은 정몽주가 이성계, 정도전을 제거하려는 움직임을 알고, 선수를 쳐 선죽교에서 정몽주를 암살하여 정몽주의 계획을 막아버린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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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고야라는 도시는 역사가 어떻게 되나여?! 답글 바랍니다.
나고야는 한자로 '名古屋'로 표기합니다. 고대부터 야쓰타 신궁 주변에 신앙, 역참 중심의 마을이고, 도카이도의 교통 요지로 성장했습니다. 특히 전국시대 오다노부나가, 도요토미 히데요시, 도쿠가와 이에야스 등이 모두 나고야를 중심으로 영향권을 확대했습니다.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세키가하라 전투에서 승리하여 1610년에 나고야성을 세우면서 본격 성곽 도시로 발달했습니다. 따라서 에도 막부 시대에는 오와리 도쿠가와 가문의 거성이자 중부의 중심지 역할을 하였습니다.그리고 20세기 들어서 자동차, 항공, 기계 공업의 중심지로 급성장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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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랑캐라는 게 원래 무슨 의미였던가여?
오랑캐는 본래 13~14세기 무렵 북방 몽골계 수렵 종족인 '우랑카이'라는 이름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우랑캐가 오량케, 그리고 오랑캐 처럼 소리가 변한 것입니다. 조선시대 이르러 만주 일대의 북방 민족을 통칭하는 말로 확장되었습니다. 즉, 야만적인 의미가 포함된 경멸, 비하 용어로 굳어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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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엘 중심의 전쟁 상황에 대해 궁금합니다!
우선 이스라엘은 1~2세기 로마 제국에 의해 유대 왕국이 무너지고 2천년동안 나라 없이 살아왔습니다. 따라서 유럽 등지에 떠돌아 다니면서 민족적 차별을 당해오다 유대인들의 19세기 고향으로 돌아가자라는 '시오니즘'이 확대되고, 제2차 세계대전 당시 홀로코스트 후 국제적 분위기 변화로 팔레스타인에 1948년 이스라엘 건국되었습니다. 하지만 건국 과정에서 오랫동안 팔레스타인에 거주하였던 아랍인들이 쫒겨나는 신세에 처해져 주변 아랍 국가들과 대립하게 되었습니다.그런데, 처음 이스라엘 건국 당시 주변 아랍 국가와 달리 이란의 팔레비 왕정은 오히려 이스라엘의 건국을 지지했습니다. 하지만 1979년 이란 혁명으로 팔레비 왕정이 붕괴되고, 새롭게 수립된 이란 공화국은 이스라엘을 적대국으로 간주하였습니다. 그 과정에서 이란은 반 이스라엘 무장 단체인 헤즈볼라, 하마스, 후티반군을 지원하면서 갈등은 심화되었습니다.최근 일어난 이란 전쟁도 이란과 친이란 무장 단체와 이스라엘과 대립에서 촉발되어 이어지고 있는 것입니다. 2023년 하마스와 이스라엘 전쟁 이후 2024년 10월 이란의 이스라엘 공격 등이 확산된 사태입니다.즉, 이스라엘과 이란 갈등은 1979년 이란 혁명 이후부터 하여 서로 공격하는 단계로 들어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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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의 유자광은 어떤 인물이라 할 수 있나요?
유자광은 왕권과 결탁하여 세조, 예종, 성종, 연산군, 중중에 이르기 까지 실리를 추구한 기회주의 정치인입니다. 그는 서얼 하층 출신으로 부모 미천한 가문이지만 왕의 총애를 얻어 출세한 케이스입니다. 세조 재위시 함길도 반란 진압을 자원하는 상소로 세조의 신뢰를 받았으며, 예종 당시 남이를 역모 혐의로 몰아 옥사를 일으켰습니다. 연산군 당시 조의제문을 읽은 뒤 연산군에게 고자질하여 무오사화를 일으키게 하였으며, 갑자사화에서도 사림 탄압의 수장 역할을 하였습니다. 하지만 연산군을 배신하고 중종 반정의 1등 공신이 되지만 금방 버려져 사사됩니다. 유자광은 왕이 원하는 방향에 맞춰 행동하는 실리주의 정치인이고, 사림파와 대척하였습니다. 즉 어느 한쪽에 기울이지 않고 필요에 따라 달라지면서 간신이라는 이미지가 붙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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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녹수는 신분이 노비였는데 어떻게 궁으로 들어갔고 후궁까지 갈 수 있었나요?
장녹수는 본래 연산군의 종형인 제안대군의 여종이었습니다. 그런데, 당시 연산군이 미인집결령을 내려 조선 팔도에서 미인, 재능 있는 여인들을 선발했는데, 장녹수도 기생 , 기예를 가진 여성으로 궁에 들어간 것입니다. 그녀는 비록 노비 출신이지만 기예와 외모가 뛰어난 뽑힌 것입니다. 그런데 법적으로 후궁은 양인 대상이나 실제로는 왕의 총애를 받아 승은을 받으면 후궁이 가능하였습니다. 장녹수는 입궁 직후 승은을 받아 종 4품 숙원, 그리고 1년만에 종3품 숙용으로 승진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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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베델이 조선을 도와주려고 했던 이유는 무엇이었나요?
좋은 질문입니다. 베델은 영국인으로 원래 러일 전쟁 취재를 위해 일본에서 들어온 영국 데일리 크로니클 특별 통신원입니다. 그런데, 러일전쟁 중에 일본군의 만행을 목격하고 강한 분노를 느꼈다고 합니다. 그는 영국인으로 당시 영일 동맹으로 일본을 적대적으로 보기 어려웠지만 조선인들의 고통과 일본의 침략적 만행을 전세계에 폭로해야 한다는 인식, 정의감을 갖게되면서 1904년 대한매일신보를 발행하여 보도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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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형식에서 쿼티라고 있던데 긔게 뭔가요??
쿼티((QWERTY)는 영문 키보드에 보편적으로 쓰이는 자판입니다. 이는 Q, W, E, R, T, Y가 맨 위쪽에 왼쪽부터 배치되어 있어 붙인 키보드 명칭입니다. 천지인은 10개 버튼으로 한글을 조합하여 입력하며, 퀴티는 26영문 키를 기준으로 한글 자모를 배치해 입력 속도가 빠릅니다. 그런데, 쓰기 편함은 평소 쓰기 편한 키보드를 선택하는 것을 추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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