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안전쟁.. 정말 27년에 일어날까요?
2027년 중국이 대만을 공격 가능성을 제기되지만 확실하지 않습니다. 2027년은 중국 인민해방군 창설 100주년입니다. 그리고 2027년은 시진핑 주석 3연임 종료 4연임 결정시기이며, 대만 총통 선거, 트럼프 2기 레임덕 등이 전쟁의 불씨가 된다고 주장합니다.실제 양안 전쟁의 발발 확률은 낮지만 러우전쟁, 이란 전쟁 등 국지전이 널어나는 세계적 분위에 편승될 우려되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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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과사는남자들 영화 보고 왔는데 역사가 궁금해졌어요.
영화 '왕과 사는 남자'는 실화를 바탕으로 만든 영화입니다. 조선 세조 계유정난과 단종의 비극적 삶을 조명한 영화입니다. 이와 같은 역사적 사실을 알기 위해서는 단종실록, 세조실록을 바탕으로 재구성한 도서를 추천합니다. 김형인의<단종평전>도 좋습니다. 그리고 유튜브 '영상한국사'와 국가기록원 나무위키 등의 자료를 활용하는 것도 좋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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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여는 전쟁으로 망한 건가요? 아니면 투항한 것인가요?
부여와 고구려는 만주 일대에서 경쟁하였으나 결국 고구려에 흡수되었습니다. 부여는 4세기 전연의 공격으로 포로 5만명 포획으로 사실상 붕괴되었습니다. 5세기 말 말갈 세력과 연계 공격을 받았으나 직접적 멸망은 문자명왕 당시 스스로 항복해 왔습니다. 송화강 유역의 부여 대부분이 고구려 영토로 흡숙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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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초 동북공정의 대상이 된 것은 어떤 역사인가요?
동북공정은 만주 지역의 고대 역사를 중국사로 편입시키는 국가 프로젝트라 합니다. 최초 대상은 고구려사로 시작했는데 2002년 4월 고구려역사연학술좌담회에서 고구려를 중국 지방 소수 민족 정권이라는 주장입니다. 현재는 고조선, 고구려, 발해가 중국의 지방 정권이며, 간도와 백두산도 중국 소유라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그 외에도 김치, 한복, 한글 마저도 중국 문화라고 하는 주장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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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접양지도는 독도 영유권 문제에서 왜 중요한 근거가 되나요?
독도는 역사적, 국제법상으로 우리나라의 고유 영토입니다. 하지만 일본은 꾸준히 자신의 영토라고 억지를 부리고 있습니다. 그러나 국내외 많은 자료에서 한국의 영유권을 확인시켜주는 자료가 발굴되고 있는데, 그 가운데 1785년 일본의 하야시가 그린 <삼국접양지도>도 근거가 됩니다. 삼국접양지도에는 조선과 일본, 청의 국경을 표시하며, 울릉도와 독도를 "조선의 소유"라고 명확하게 표시하고, 조선의 영토와 같은 노랑색으로 색칠까지 했습니다.막부 말기까지 1905년 일본의 영유권 주장 이전 일본의 고지도 대부분은 독도를 조선령으로 표시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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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선대원군의 경복궁 중건이 백성들의 원성을 산 이유는 무엇인가요?
흥선대원군은 왕실의 권위를 바로 세우기위해 임진왜란 중에서 소실된 경복궁 중건을 추진했습니다. 하지만 부족한 재원을 확보하기 위해 상평통보의 100배 가치를 가진 고액 동전인 '상평통보'를 발행하여 유통하였습니다. 그러나 이는 인플레이션을 낳았으며, 백성들에게 고통을 가져다 주었습니다. 그리고 기부금 형태의 원납전을 강제로 징수하고, 묘지림을 남벌하고, 도성의 성문 출입에대한 통행세를 징수했습니다. 이와 같은 일련의 정책은 오히려 백성들의 민심을 나쁘게 하는 결과를 낳앗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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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제국의 지계 발급이 갖는 의미가 무엇인가요?
대한제국은 광무개혁의 이념으로 적극적으로 근대화 정책을 추진했습니다. 특히 경제적으로 양전사업, 지계 발급, 상공업 육성 등 시행했습니다. 여기서 지계란 정부가 토지 소유권을 보중한 문서로 근대적 토지 소유권을 확립한 법적 증명입니다. 또한 양전 사업과 연계하여 정확한 측량과 등급화로 균등 과세, 근대화 재원 확보를 목표로 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일제의 강점으로 미완으로 끝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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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도협약을 일본이 나서 힌 이유와 내용은 어떻게 되나요?
1885년 간도 문제를 놓고 조선과 청이 협상을 하였지만 성과 없이 결렬되었습니다. 하지만 조선, 그리고 대한제국은 간도에 대한 영유권 행사를 계속했습니다. 하지만 을사늑약으로 외교권을 박탈당한 조선을 대신하여 일본은 스스로 나서 1909년 청과 간도협약을 체결하여 간도를 청에 넘겼습니다. 그 이유는 일본이 남만주 철도 부설권과 탄광 채굴권을 확보하기 위해 간도를 협상 카드로 사용한 것입니다. 즉 백두산 정계비의 토문강을 두만강으로 해석하여 간도를 청에 넘긴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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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티슈는 누가 제일 먼저 만들었나요??
물티슈를 처음 발명한 사람은 미국의 사업가이자 화학자인 아서 줄리어스입니다. 그는 1950년대 후반 외식 산업용 촉촉한 수건 사업중 세정액에 적신 일회용 수건을 고안했던 것입니다. 그리고 이를 1957년 상업화했습니다. 당시 개발한 수건은 촉촉한 수건이라는 'moist towelette'을 판매했으며, 아이에게 부터 청소까지 일상의 필수품으로 자리잡게 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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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용복의 1, 2차 도왜 이유와 성과는 어떻게 되나요?
안용복은 1683년 1차로 일본으로 건너갑니다. 당시 어부 신분으로 울릉도에서 조업 중 일본인에게 납치되어 오키제도로 끌려갔으나 당당하게 울릉도가 조선의 영토라는 주장을 했으며, 태주로 부터 울릉도, 독도는 조선 영토라는 사실의 서계를 받아 옵니다. 하지만 막부에서 인정하나 대마도가 서계를 빼앗아 조선에 은폐하였습니다.2차로 일본에 건너간 시기는 1696년으로 1차 성과가 무시당하자 스스로 '조울양도감세장' 깃발을 내걸로 자발적으로 일본으로 건너갑니다. 안용복은 대마도 불법을 고발하였으며, 막부는 울릉도 도해 금지령을 공포하는 계기가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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