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키스탄은 어떤나라인지 궁금합니다.
파키스탄은 1947년 영국이 인도가 독립하면서 인도, 파키스탄으로 분리되었습니다. 이슬람 인구 중심 지역이 모여 파키스탄이 된 것입니다. 이 분리 과정에서 많은 인구 이동과 충돌이 있었습니다. 파키스탄의 공식 국호는 이슬람공화국이며, 인구는 2억 4천명으로 세계 5위권에 해당합니다. 파키스탄의 사람들의 96% 이상이 무슬림이고, 대부분 수니파입니다. 파키스탄은 아프가니스탄과 국경을 길게 공유하고 있어 탈레반 등과 오랜 관계를 맺고 있으며, 미국과 아프간 간의 협의를 주도하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2026년 이란과 미국의 휴전을 중재하공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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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초기 기인제도는 신라의 상수리 제도를 가져와서 만든 것인가요?
고려시대 기인제도는 통일신라 시대의 상수리 제도와 유사한 제도입니다. 상수리 제도는 통일신라 시대 지방의 유력자를 왕경으로 불러 주리, 상수역 등을 일하게 하면서 견제하는 역할을 합니다. 고려의 기인제도는 태조가 지방 호족의 자식을 수도에 머물게 하면서 볼모로 삼는 것입니다.가장 큰 차이점은 상수리제도는 본인 자신, 기인제도는 호족의 자식을 인질로 삼는 것입니다. 기인제도는 지방 세력 자손을 인질로 수도에 두어 중앙집권화를 강화하는 것으로 상수리제도의 변형이라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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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종의 친누나인 경혜공주는 단종위 폐위된 후 어떻게 되었나요?
단종의 유일한 혈연인 누가 경혜공주는 1450년 영양위 정종과 혼인했습니다. 단종이 노산군으로 강등되었을 때 남편 정종도 모반 혐의로 유배후에 처형되는데, 그녀는 영월, 양근, 수원, 통진, 전라도 광주 등으로 유배됩니다. 이후 남편 정종이 처형되었지만 세조가 인심으로 그녀에게는 공주 신분을 유지하도록 배려했다고 합니다. 경혜공주는 부모, 동생, 남편을 모두 잃고 살다가 말년에는 절로 들어가 살다 1473년 사망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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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시대부터 조선시대까지 가장 폭군으로 평가받는 임금은 누구인지요?
우리나라 역사상 가장 폭군으로 지목되는 국왕으로는 삼국시대는 고구려 14대 봉상왕을 꼽습니다. 그는 어려서부터 방탕하고 사람들에게 죄가 없어도 사형했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고려에서 폭군으로는 28대 충혜왕으로 부왕 후비와 외척들의 부인까지 겁탈했다고 하네요. 사치와 방탕, 사냥과 향락으로 재정을 파탄에 이르게 했습니다. 조선시대는 두발할 필요없이 연산군입니다. 무오, 갑자사화로 많은 사람을 숙청한 것으로 유명하고, 폭정과 사치와 학살을 일삼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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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역사를 뒤돌아보면 제일 훌륭한 지도자로 손꼽을만한 사람이 누굴까요??
우리나라에서 가장 훌룡한 인물을 선택하라면 세종대왕을 꼽을 수 있습니다. 세종대왕은 한글을 창제하여 백성들의 의사소통을 도왔으며, 민족 문화 창달에 이바지하였습니다. 그리고 이순신 장군을 들 수 있습니다. 이순신 장군은 임진왜란에서 조선 수군을 통솔하며 일본군의 침략을 물리쳤습니다. 그의 리더십과 판단력 등이 바탕이 되었기 때문이라 봅니다. 또다른 분으로 김구 선생을 높게 평가합니다. 일제 강점기 임시정부를 바탕으로 독립운동을 주도하여 한국 독립이 가능했다고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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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이란 전쟁에서 이스라엘은 어떤 역할인지 궁금해요
이란 전쟁에서 이스라엘은 미국의 핵심 동맹으로 활약하고 있습니다. 일각에서는 이스라엘은 오랜 적인 이란과의 대립에서 미국을 끌여들였다는 측면도 있다고 합니다.이란은 1979년 이란 혁명 이후 반 이스라엘, 반미를 국가 외교 이념으로 삼고, 지속적으로 적대적 태도를 보여 왔습니다. 그리고 이란은 헤즈볼라, 하마스, 후티 반군 등을 지원하며 이스라엘에 공세적 태도를 이어왔습니다.이란 전쟁에서 이스라엘은 이란의 핵무기 개발을 막기 위해 수차례 공급하고 개발자들을 암살했습니다. 그리고 미국에 앞서 이란에 공격적인 행보를 보여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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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궁궐은 추웠나요? 온돌이 아니던데요.
조선시대 전기까지만 해도 궁궐에 온돌이 드물었지만 중기 이후 침실, 정전 등 주요 전각은 온돌이 전면적으로 설치되었습니다. 특히 바닥 전체를 데울 수 있도록 전면에 구들과 연결형 아궁이, 복잡한 배연 구조로 열 효율을 높였습니다.비록 바닥이 나무판자로 되어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 아래 온돌이 낄여 있어 유럽의 궁전보다 훨씬 따뜻한 편이었습니다. 그리고 온돌 이외에도 화로를 놓고, 방한 복과 침구를 사용하여 온기를 유지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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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라비아숫자가 인도에서 처음 유래되엇다고 하는데 왜 인도숫자가 아니고 아리비아 숫자인가요?
아라비아 숫자는 지적한 것처럼 인도에서 만들어진 문자입니다. 그런데 유럽 사람들이 아라비이 숫자로 부르는 것은 아라비아 상인들의 활약때문입니다. 인도에서 발명되어 사용한 문자지만 아라비아 상인들이 편리성을 인식하고, 사용하였습니다. 그리고 아라비아 상인들의 사용하는 것을 보고, 유럽사람들이 아라비아 숫자로 부른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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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에 나막신은 왜 신게 되었는지 궁금합니다
일본에서 나막신을 게타라 합니다. 게타는 지면에서 밭, 옷을 떨어뜨려 두는 역할을 합니다. 특히 논, 밭, 비오 날 발을 보호하기 좋고, 기모노를 더럽히지 않기 때문에 실용적입니다. 게타는 걷기가 불편해도 옷을 청결하게 유지할 수 있기 때문에 선호하게 된 것입니다.게타를 처음 신으면 익숙하지 않아 불편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익숙해지면 걸음걸이를 조절하거나 몸의 중심에 맞춰 자연스럽게 걸을 수만 있으면 편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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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에서는 월화수목 요일을 왜 숫자를 붙여서 표현하나요?
중국에서 요일을 월~목요일 처럼 한자로 표기하지 않고, “星期一, 星期二, …, 星期六”처럼 숫자를 붙여는 것은 별이 도는 7주기라는 뜻에서 비롯되었습니다. 반면 한국과 일본은 '월화수목금토일'로 해, 달, 5개 행성에 대한 고대 천문 개념을 그대로 활용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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