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에는 왜 김용의무협소설같은게없죠
한국에도 무협소설은 있습니다. 다만 우리나라가 김용 급 무협 대작이 적은 이유는 장르의 뿌리가 중국, 홍콩에서 청대말~20세기 초 대중 소설로 성장했으나 우리나라는 1950~60년대 신문 연재 정도였습니다. 그리고 식민지와 6.25 전쟁을 거치면서 무협 장르가 독립적으로 성장할 토양이 약했던 것입니다. 한국 현대문학에서도 무협은 오랫동안 대중장르로 취급받으며, 순수 문학 중심에서 과소 평가된 것도 원인 일 것입니다. 그래도 이문열의 <금시조>, 황석영의 <장길산> 등 의적, 협객 등의 무공을 다룬 무협 소설이 꽤 존재합니다.
평가
응원하기
조선 정종의 아들중에서 괜찮은 왕자가 있었다던데!!
조선의 2대 국왕인 정종의 아들은 왕비 소생은 없고, 대부분 후궁 소생으로 17남, 8녀의 많은 자녀를 두었습니다. 덕천군 이후생은 정종의 10남으로 후손이 가장 많이 번성했습니다. 왕자였으나 사치를 멀리하고, 검약했으며, 봉록을 가난한 친천과 이웃에 나누어 주었습니다. 농사를 좋아해 공주 일대에 전장을 두고 나무를 심어 정원을 가꾸는 등 소박한 생활을 했다고 하니다. 어느 해는 금강의 홍수로 수백호가 침수되었는데, 자신이 심은 나무로 뗏목을 만들어 이재민을 구했다고 합니다. 이 때문에 덕을 쌓은 어른이라고 '적덕공'이라 불렸다고 합니다. 하지만 정종은 재위 기간도 짧고 왕자의 난 이후 실권은 동생 방원에게 있었습니다. 따라서 1400년 2차 왕자의 난이 진압된 이후 정종은 상왕 태조의 허락을 받아 이방원을 왕세자로 책봉했습니다.
채택 받은 답변
평가
응원하기
북유럽 국가 중 진짜 바이킹의 후예는 누구인가요?
바이킹은 9~11세기 스칸디나비아 반도를 거점으로 활약한 해상 세력을 말합니다. 오늘날로 보면 덴마크, 노르웨이, 스웨덴 전역입니다. 고대 DNA 연구에서 바이킹 시대 사람들의 유전자는 현대 스칸디나비아인과 가장 가깝고, 덴마크·노르웨이·스웨덴 각각의 지역 집단과 유사하게 나타납니다.덴마크 바이킹은 주로 영국, 프랑스 방면으로 원정, 정착하여 데인, 노르망디 등에 해당합니다. 그리고 노르웨이 바이킹은 아이슬랜드, 아일랜드, 그린란드 등 북대서양 항로를 개척했습니다 그리고 스웨덴 바이킹은 발트해, 러시아, 비잔티 방면으로 교역, 원정을 하였습니다.
채택 받은 답변
평가
응원하기
오딧세이의 배경인 트로이 전쟁에 대해 설명해주세요.
트로이 전쟁은 호메로스의 서사시 <일리아드>를 주제이며, 주로 전쟁 자체를 소재로 삼았습니다. 올림푸스 신들의 연회에서 불화의 여신 에리스가 '가장 아름다은 여신에게'라고 적힌 글이 새겨진 황금사과를 던지면서 일이 시작됩니다. 헤라, 아테나, 아프로디테가 모두 사과를 두고 다퉜는데, 제우스는 트로이 왕자 파리스에게 심판을 맡겼으며, 파리스는 아프로디테에게 전달합니다. 그 보상으로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인인 스파르타의 왕비 헬레네를 얻게 되었습니다. 결국 파리스는 헬레네를 트로이로 데려가고, 이에 분노한 스파라트와 왕 메넬라오스, 그의 형 아가멤논 등은 그리스 연합군을 결성하여 트로이를 공격하였습니다.그리고 10년 동안의 결투는 그리스 연합군이 트로이 목마를 위장한 공격으로 승리하면서 끝납니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영웅 아킬레우스가 전사합니다. 표면적으로는 헬레네 탈환과 남편과 그리스 연합군의 싸움이지만 실제로는 에게해의 무역로와 패권을 둔 그리스 세력과 트로이의 경제, 지역적 이해관계가 충돌한 결과입니다.
채택 받은 답변
평가
응원하기
고려는 왜 신라의 경주를 놔두고 개경에 도읍했나요?
왕건이 개경에 도읍으로 정한 이유는 자신의 정치적 기반이고 지리적 이점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것입니다. 개경은 신라말 호족 왕건 세력의 고향이며 근거지입니다. 건국 직후 정권 안정을 위해 익숙한 지역에서 통치하는 것이 효율적이라 여겼을 것입니다. 지리적으로도 한반도 중서부에 위치하여 전국 통치에 유리하고, 임진강, 예성강, 한강 등의 수로와 서해를 통해 조운, 무역에 유리했습니다. 분지형 지형에 산으로 둘러싸여 방어에도 유리했고, 북방 세력에 대응하는 전방 기지 역할도 했습니다. 반면 경주는 동남쪽에 치우쳐 있어 중앙 집권적 통치에 불리하고, 신라의 재지 세력도 있어 새로운 국가 이념에 맞지 않았던 것입니다. 즉, 즉, 개경 도읍은 왕건의 권력 기반과 지리적 이점을 살리면서, 신라 중심의 구질서를 끊고 새로운 중앙 집권 체제를 구축하려는 의도였습니다.
채택 받은 답변
평가
응원하기
전통시장 속 숨은 노포 맛집 탐방의 매력이 무엇일까요?
'노포'란 수십 년 이상 같은 자리에서 한 우물을 파며 운영된 오래된 가게를 말합니다. 전통 시장이나 골목 상권에서 30, 50년, 100년가까이 영업을 이어온 노포는 지역의 역사와 기억을 담고 있습니다. 인기 노포는 점심 피크에 대기 줄이 길어지고, 순서를 지키며, 자리가 나면 빠르게 착석하는 대기 문화가 만들어져 있습니다. 그리고 한두 가지 메뉴로 단순하고, 주문도 간결합니다. 조리대와 식재료가 정리되어 있는지, 음식 보관 상태를 눈으로 확인합니다. 노포의 맛은 한결같은 레시피, 신선한 재료, 오랜 시간 다듬은 육수와 양념, 그리고 단골과의 신뢰에서 나옵니다. 즉 노포 탐방은 맛집 찾기를 넘어 세월과 사람의 이야기가 담겨져 있습니다.
채택 받은 답변
평가
응원하기
미국 남북전쟁 이후 재건시대는 왜 실패한 것으로 평가받나요?
미국 남북 전쟁 이후 재건 시대(1865~1877)가 실패로 평가받는 이유는 법적 평등을 보장하지 못했고, 이후 짐 크로우로 이어졌기 때문입니다. 재건 시대 헌법 수정하여 노예제 폐지, 시민권, 평등 보호, 흑인 남성 투표권을 보장했고, 남부에서 흑인 의원, 공직자가 등장하는 등 의미 있는 진전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 성과는 실질적 성과로 이어지지 못했습니다.구체적으로 남부에서는 쿠 클럭스 클랜 등 백인 우월주의 단체가 흑인 투표 공직 진출을 막기 위해 폭력 테러가 자행되었고, 연방 정부는 충분한 병력 투입과 일관된 진압에 소극적이었습니다. 1877년 타협으로 연방군이 철수하자 주 정부가 다시 백인 민주당 장악하에 들어갔고, 법원도 연방 개입 권한을 좁게 해석해 차별을 용인했습니다. 경제적 측면에서 토지, 자본이 없는 해방 흑인이 소작농, 작물저당제에 갇혀 빈곤의 악순환에 빠졌습니다. 그 결과 남부는 흑인 투표권이 박탈하고 공공 장소 분리법제를 통해 짐 크로우 체제가 고착화되었습니다. 결국 재건은 법적 평등으로 선언되었으나 폭력, 정치, 사법, 경제 구조가 이를 지탱하지 못해 좌절되었습니다.
채택 받은 답변
평가
응원하기
악수를 하는 문화는 과거 상대방에게 숨겨둔 무기가 없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한 방어적 행동에서 유래한 것이 맞나요?
악수는 오른손을 내밀어 무기가 없음을 증명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낯선 사람을 만날 때 오른손을 먼저 내밀어 잡는다는 것은 '내 주 무기에 쓰는 손을 비웠으니 공격할 뜻이 없다'는 신호로 읽히기 쉽습니다. 또한 위 아래로 흔드는 동작은 소매에 숨긴 단검을 떨어뜨리려는 의도였다고도 합니다. 이런 논리는 언제나 싸움이 있었던 고대, 중세 시대의 합리적 상황이었을 것입니다. 가장 오래된 악수 묘사는 기원전 9세기 아시리아 왕과 바빌로니아 통치자의 회합 부조에서 악수 장면을 찾아 볼 수 있으며, 기원전 5세기 그리스 부조, 장례 비석 등에서 나타납니다. 하지만 일부 학자들은 같은 장면을 '평화, 맹세, 조약, 신뢰의 상징'으로 해석하기도 합니다.
채택 받은 답변
평가
응원하기
전쟁은 왜 응급의학과 외상치료 발전에 큰 영향을 미쳤나요?
전장은 중증 외상 환자가 많이 발생합니다. 따라서 빠르게 처리해야 하는 절박한 상황이 많습니다. 전쟁은 단시간에 수천~수만명의 중증 외상 환자를 발생시켜 기준 의료 체계로는 대응이 불가능합니다. 총상, 포탄, 폭발로 인한 대량 출혈이 많고, 이를 위해 수혈법이 급속히 발전했습니다. 전장에서는 시간과의 싸움이기 때문에 구급차, 헬기 이송, 수술 병우너 체계를 만들어냈습니다. 예를 들어 나폴레옹 전쟁은 전방 수술팀과 구급 마차를 도입하였으며, 1차 대전 중 대량 출혈 환자를 위해 혈액형 분류, 구연산염 보존법, 전혈 수혈이 본격화되었습니다.즉 전쟁은 대량 중증 외상이 발생하는 극한 상황을 통해 의학이 빠르게 실험, 검증, 표준화되는 환경을 제공했고, 그 결과 응급 의학과 외상 치료가 발전한 것입니다.
채택 받은 답변
평가
응원하기
테헤란 울란바토르 같이 굳이 분지에 수도를 짓는 이유는 뭔가요?
테헤란 올란바토의 두곳은 분지 지형으로 기후, 방어, 물공급, 교통 등에 유리한 조건을 가지고 있어 수도로 정한 것입니다. 테헤란은 알보르즈 산맥 남쪽 기슭에 위치해 북쪽은 높은 산, 남쪽은 평야로 이어지는 반분지형 지형입니다. 산맥이 북쪽에 있어 방어에 유리하고, 산에서 내려 오는 물이 하천과 지하수를 풍부하게 만들어 안정적인 농업, 식수 공급에 가능합니다. 또한 북부 캇피해 연안과 중부, 남부 이란을 연결하는 교역로와 통신로가 만나는 요지입니다. 율란바토르는 툴 강 계곡에 위치하며, 해발 1350미터의 고지대 분지입니다. 툴강과 셀베 강이 만나는 지점으로 유목 생활에 필수적인 물과 목초지를 확보할 수 있습니다. 또한 사방이 산으로 되어 있어 방어와 겨울 찬바람을 막아줍니다. 그리고 베이징과 러시아 카흐타를 연결하는 교역로기도 합니다. 즉, 테헤란과 울란바토르가 분지에 자리 잡은 것은 당대의 전략·경제·기후·물 공급 요구를 가장 잘 충족하는 지형이었기 때문이며, 현대의 대기 오염이나 도시 열 문제는 당시에는 생각하지 못한 것입니다.
채택 받은 답변
5.0 (1)
응원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