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를 교육할때 우리나라는 근현대사 비중이 20%뿐이라고 하더라구요. 다른나라는 근현대사 비중이 50%정도라고하구요. 우리나라만 근현대사 비중이 낮은건가요?
우리나라 중학교의 귾녇사 비중은 20%, 고등학교는 65%정도 됩니다. 즉, 중학교는 전근대사 중심으로 편성되어 있으며, 고등학교는 근현대사 비중이 큽니다.근현대사를 적개 배운다는 사실 중학교 단계를 말하는 것으로 판단됩니다. 다만 고등학교에서 근현대사 비중이 크더라도 교육 과정상으로 시수 확보가 어려워 깊이 있는 학습이 불가능합니다. 특히 민주주의 관련된 현대사는 교과서의 마지막 단원에 해당되어 학기 정기고사, 행사 등으로 소외되기 일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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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혁명이 일어난 근본적인 원인이 뭔가요?
프랑스 혁명의 근본적인 원인은 '앙시앙레즘', 즉 구제도의 모순입니다. 프랑스는 성직자, 귀족이 특권을 장악하고 있었으나 대다수인 3신분은 경제적 부담만 지고, 정치적 권한은 없었습니다. 그리고 왕실은 전쟁과 사치, 특히 미국 독립 전쟁에서 참전으로 재정이 파탄 지경이었습니다. 또한 계몽 사상의 확산으로 제도 개혁의 필요성이 대두되었습니다.즉, 구제도의 모순과 개혁의 실패, 오랫 동안 쌓여있던 재정 위기가 삼부회 소집과 동시 폭발하면서 1879년 프랑스 혁명이 발발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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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암행어사에 대해 궁금해요.
암행어사 제도는 지방 수령의 부정과 백성의 억울함을 비밀리에 점검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중앙이 지방을 직접 감시하기 어려웠기 때문에 왕이 믿을 만한 신하를 보내 그 실태를 파악하는 것입니다.암행어사는 겉으로는 평민처럼 숨어 다녀야 했습니다. 따라서 눈에 띄는 호위나 행차가 있으면 금방 신분이 드러나기 때문에 감찰 기능이 상실되었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초라한 행색으로 업무를 수행한 것으로 봅니다. 즉, 이 제도는 편하게 출장 보내는 직책이 아니라, 비밀성과 독립성을 극대화한 감찰 임무였습니다. 대신 그만큼 현장에서는 매우 고되고 위험한 일이었고, 실제로는 밥값과 숙박까지 사비로 해결하는 경우도 있어 “지옥길”에 가까운 임무로 여겨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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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인식으로인한 청소년들에대한 역사교육시간을 늘려야한다
질문자의 지적에 공감합니다. 최근 메스컴을 통해 알려진 청소년들의 왜곡된 역사 인식과 오류가 생각보다 심각합니다. 하지만 교육 현장에서는 올바른 역사 교육을 가르치는 교육 환경은 매우 열악합니다. 우선 교육 과정에서 한국사는 수능 필수라기는 하지만 대학 입학 당락에 미치는 영향이 미미합니다. 그 시간에 수능에 중요한 수학 문제 한문제 더 푸는 것이 올바른 선택이라는 인식입니다. 또한 역사 교육 시수의 부족입니다. 과거에는 2개 학년 8단위 정도로 시수를 운영하였지만 현재는 대부분 1학년 6단위로 머물러 있습니다. 따라서 가장 중요한 현대사 수업을 학년중에 진행하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그리고 교육 과정에서 민주시민 교육 등의 부재입니다. 학교 현장에서는 입시 위지의 교육에 매몰되어 교양 교육은 설자리가 없습니다. 마지막으로 역사 왜곡 및 약자를 비하하는 일베식 행동으로 역사를 왜곡하거나 비난하는 행위를 해도 처벌할 도리가 없는 것이 현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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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건축물과 적산가옥 많이 있는 곳 알려주세요. 인천, 군산, 강경은 다녀왔습니다.
좋은 경험을 하셨네요. 질문자님이 방문한 인천, 군산, 강경 일제 강점기 일본인 소유의 적산 가옥이 산재하는 곳입니다. 그외에도 목포, 서울 정동, 대구 근대 골목, 김제, 익산, 벌교 등에도 적산 가옥이 많습니다. 특히 목포는 인천, 군산과 더불어 일본의 경제 침탈 근거지로 근대 역사 문화 공간을 방문하면 일본식 가옥과 근대 건축물이 밀집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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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시대 왕의 유품에대한 질문 입니다.
신라 왕의 유품을 개인이 소지하기에는 불가능합니다. 금관, 옥장식, 투구, 갑옷 같은 것은 대부분 왕실 유품 수준으로 국가 유산급 문화재에 해당할 가능성이 크며, 개인 마음대로 소장, 매매할 수 없습니다. 다만 합법적으로 소장할 수도 있습니다. 다만 정식으로 거래 및 양도된 유물, 도굴품, 장물이 아닌 경우, 국가 지정 문화재가 아닌 경우 등은 적법한 절차에 의해 개인 소장도 가능합니다. 하지만 출저가 불명한 것은 대부분 매장 문화재를 도굴하거나 매입한 것으로 추정하여 국가 문화재에 해당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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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사기와 삼국유사의 차이점이 궁금합니다
우선 <삼국사기>와 <삼국유사>는 고려시대에 삼구기대를 소재로 서수란 역사서입니다. <삼국사기>는 고려 인종(1145)에 김부식 등이 왕명을 받아 편찬한 역사서로 유교적 합리주의 사관에 입각하여 기전체로 서술하였습니다. <삼국유사>는 승려 일연이 충렬왕(1281)에 몽골 침입 등의 국난 극복 과정에서 민족 자존심을 바탕으로 불교, 신화 등 신이사관에 입각하여 서술하였습니다. 삼국사기는 국가적 사업으로 편찬한 것으로 공식 기록이며, 삼국유사는 신화, 불교, 전설 등 이야기를 담은 역사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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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시절 수많은 고분들을 조사한다고 파헤쳤는데 이에 대해 학술보고서를 제대로 낸 경우가 있긴 한가요?
일제 강점기라도 고분 발굴 등의 사안에 대해 일부 보고서가 남긴합니다. 하지만 당시 고분 조사는 순수 학술 조사라기 보다는 식민지 통치 목적과 유물 수집이 섞인 조사였으며, 보고서도 거의 남지 않은 경우가 다반사입니다.예를들어 경주 서봉총은 1926년 조사 이후 보고서가 정리되었으며, 2014년 경주 서봉총을 국립중앙박물관에서 발간되었습니다. 즉, 일제강점기 형식적으로 조사와 발굴을 했지만 부장품을 챙기기 위한 것이며, 일부 보고서를 남기기는 했으나 거의 남기지 않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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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송과 북송은 같은 나라라고 할 수 있나요?
남송은 북송을 인은 나라로 국호를 송이라 하였습니다. 960년 조광윤에 의해 성립한 송의 수도는 본래 카이펑으로 화북에 위치합니다. 그런데, 1127년 금의 침략으로 카이펑이 점령되고, 이후 고종 조구가 강남의 임안(항저우)에 수도를 천도하여 북송을 이어받아 남송을 세운 것입니다. 정확하게는 남송은 북송 황실을 잇는 송나라의 재건에 가까우나 새로운 왕조라기 보다는 송나라의 남쪽에서의 연속 왕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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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역사에서 무속신앙의 시작점은 어떤 시대라 할 수 있나요?
무속신앙은 신석기 시대 원시신항에서 기원합니다. 신석기 시대의 원시 신앙으로 샤머니즘, 애니미즘, 조상숭배, 토테미즘 등이 있었는데, 그 가운데 샤머니즘은 무속을 믿거나 무속인을 통해 신과 연결하는 사상입니다. 특히 우리나라는 늦어도 고조선의 단군은 제사장, 샤먼으로서 제정일치 사회라는 것이 단군신화 등에 반영되어 있습니다. 무속신앙은 특정 왕조가 만들어낸 종교라기 보다는 국가 형성 이전부터 내려온 토착 신앙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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