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세계 술들을 통해서 각 나라별 문화차이를 느낄수 잇는지 궁금해여?
안녕하세요. 함철민 전문가입니다.당연히 있습니다. 술이란 건 발효를 통해 생겨난 알코올을 즐기는 건데요. 쌀이 많이 나는 지역인 우리나라에서는 막걸리 등 쌀을 발효한 술들이, 그리고 유럽에서는 포도주나 밀을 발효에 얻은 와인이나 맥주, 위스키가 생겨났다는 차이가 있습니다. 땅에서 자라는 곡물이나 과일이 없는 지역에서는 말의 젖을 발효시킨 마유주 등을 마셨습니다. 술의 역사를 살펴보면 더욱 다양한 역사적 의미를 알 수도 있는데, 대표적인 것이 소주가 아닐까 싶습니다. 소주의 증류방식은 본래 페르시아에서 유행하던 방식이었는데, 몽골이 대제국을 건설했을 때 중앙 아시아를 건너 고려까지 건너와 현재는 한국의 대중적인 술이 된 경우입니다. 멕시코의 데낄라 역시 현지에서 자라는 아가베라는 식물과 스페인이 식민지배를 하면서 건너온 증류 기술이 더해진 술이죠. 문화와도 깊은 관계가 있는데, 프랑스의 와인은 귀족 문화에 가깝다면 독일의 맥주는 서민 문화에 더 가깝죠. 한국에서 윗사람이 아랫사람에게 술을 따라주거나, 아랫사람이 위사람 앞에서 술을 마실 때 고개를 돌리는 등의 주도 역시 술이 상하 관계, 즉 지역의 문화에 깊게 관여한 사례 중 하나로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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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시간을 되돌릴 수 있다면 사람들은 왜 같은 실수를 반복할까요?
안녕하세요. 함철민 전문가입니다.철학적이고, 역사학에서도 항상 관심을 가지는 주제 중 하나인데요. 고민해보자면, 선택보다 선택 주변의 환경이 가장 큰 문제이지 않을까 싶습니다. 과거로 돌아가 같은 상황에 놓인다면, 그 주변의 환경... 예를 들면 선택자의 성격이나 욕망, 두려움, 결핍 등이 역시 똑같기 때문입니다. 어쩌면 '이번엔 다를지도 모른다'는 기대가 작용할 수 있죠. 과거로 돌아간다는 건 불가능하기에, 우리는 앞으로 발생할 사건에 대해서 또 똑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게 역사를 공부하는데요, 사실 과거와 똑같은 상황이 반복되는 것 역시 불가능합니다. 선택을 둘러싼 주변 환경 역시 시간의 흐름에 따라 바뀌기 때문이죠. 패턴은 있을 수 있지만, 완벽히 동일한 사건이 다시 일어나는 건 불가능하다는 뜻입니다.그래서 사학자 아놀드 토인비나, 잠바티스타 비코 같은 인물들은 역사가 나선형으로 반복된다고 주장하기도 했습니다. 과거와 유사한 패턴이 돌아오지만, 결국에는 앞으로 나아간다는 주장입니다.때문에 다음엔 똑같은 선택을 하지 않아야지 라는 마음가짐 보다는, 그 때 나는 왜 그런 선택을 했는지를 고민해 보는 게 더욱 중요하지 않을까 하는 개인적인 생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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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공부할 때 시대흐름 외우기가 힘들어서 드라마
안녕하세요. 함철민 전문가입니다.나쁘지 않은 방법이라고 생각합니다. 더 좋은 방법이 있다면 원인과 결과로 역사를 보는 방법이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1592년 임진왜란이 발발했다'고 외우는 게 아니라, 왜 임진왜란이 일어났고, 조선은 왜 큰 피해를 입었나를 보는 것입니다. 언급한 임진왜란을 보면, 단순히 일본이 조선을 침략했다고 보는 건 너무 좁은 시야입니다. 넓은 시각에서 보면 16세기 대항해시대의 영향으로 조총이 일본에 전해진 것과, 당시 일본에서 은광이 발견되며 일본의 은 생산량이 폭발적으로 증가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여기에 전국 통일 이후 일본의 정치, 경제적인 문제와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야욕 등이 동시에 작용하면서 임진왜란의 발생한 거죠. 또 임진왜란 이후 조선의 경제, 사회 질서의 변혁이 생기고, 더 나아가서는 명의 쇠퇴와 청의 부상으로 연결지어 볼 수 있습니다. 이건 또 이후 병자호란으로 이어지죠. 사실 역사를 공부한다는 건 몇 년에 어떤 사건이 일어났냐를 외우는 게 아니죠. 부와 권력 등 각자가 가진 손익에 따라 어떤 선택을 하는지, 그 선택이 어떤 결과를 가져오는지를 살펴보는 게 중요한 공부입니다. 사학자 E.H 카가 역사는 현재와 과거의 끊임없는 대화라고 말한 이유도 이런 맥락이지 않을까 싶습니다. 조금이나마 공부에 도움이 되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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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송시열과 김육에 대해서 궁금합니다.
안녕하세요. 함철민 전문가입니다.김육은 대동법을 주장한 대표적인 실학자 중 한 명입니다. 대동법을 알기 위해서는 당대 세금 납부 방식을 먼저 살펴봐야 합니다. 당시에는 세금으로 지역 특산품을 내게 하는 공납제가 있었는데, 폐단이 심각했습니다. 실제 산지와 무관한 물품이 배정되거나, 상인들이 권력자와 결탁해 특산물을 대신 납부해주는 대신 과도한 대가를 요구하면서 백성들이 더우 힘들어졌습니다. 또 부자나 가난한 사람이나 똑같은 양의 특산물을 바쳐야 했기 때문에, 형평성에도 어긋났죠. 이를 해결하기 위한 대책으로 제시된 방법이 대동법입니다. 특산물을 바치는 대신, 쌀·베·돈으로 납부 방식을 통일하는 거죠. 대동법으로 기대할 수 있는 효과는 컸습니다. 화폐 사용량을 늘리면서 상업과 수공업이 발달하고, 고용이 늘어났습니다. 국가 재정 확보와도 연결됐다는 시각도 있습니다. 또 토지 기준으로 세금을 걷다보니 백성들의 부담도 한결 줄어들었죠.송시열과의 갈등은 대동법 확대를 두고 벌어졌습니다. 김육은 효종 때 삼남(충청, 전라, 경상) 지역에 대동법을 다시 확대 시행하자고 주장했지만, 김상헌, 김집, 송시열 등이 이에 강하게 반대했습니다. 다만 충청도를 시작으로 대동법이 시행됐고, 점차 전라도와 경상도로 확대 시행되게 됩니다. 말씀하신 두 사람의 갈등은 대동법 시행보다는 국가 운영 방향에 대한 두 사람의 달랐던 생각을 의미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김육은 앞에서도 언급했듯 세금 개혁, 민생 안전, 상공업과 화폐 경제 등 실용적인 국가 운영을 중시했습니다. 반면 송시열은 예론과 주자학의 질서 등을 중시했죠. 아마 김육의 개혁 노선을 밀고 갔다면, 조선 후기 역사는 달라질 수도 있었을 겁니다. 다만, 송시열을 단순히 조선을 망친 사람 쯤으로 치부하는 것은 대단히 잘못된 생각입니다. 이건 어디까지나 현대인의 입장에서 결과를 알고 난 후에 내린 평가니까요. 당대는 성리학의 질서가 중시되는 사회였고, 송시열은 그 안에서 매우 강력한 지도자이자 정치 지도자였습니다. 효종의 북벌론을 가장 크게 뒷받침해주는 인물이기도 했으며, 이 과정에서 당시 사대부 사회의 정신적 구심점이 되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노론의 상징적인 지도자이자, 사후에 문정이라는 시호를 받고 효종 묘정에 배식되며 문묘에 종향됐습니다. 문묘 종향은 당시 학자로서 받을 수 있는 최고 수준의 영예입니다. 송시열의 개혁은 분명 한계가 있습니다. 그리고 김육의 업적은 오늘날의 관점에서 현대적 개혁가처럼 보이기도 하죠. 하지만, 당대의 사회, 지식 등을 배제하고 오늘날의 시각으로만 사건과 인물을 보는 건 다소 한계가 있다는 걸 알아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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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망하나요? 간첩이 너무 많은 것 같아요
안녕하세요. 함철민 전문가입니다.최근 사회에서 불거진 여러 갈등으로 인해 우려가 깊으신 듯합니다. 다만 결론부터 말하면, 대한민국이 곧 망한다거나 공산화가 준비되고 있다고 단정할 근거는 부족합니다. 질문자께서 불안을 느끼는 데는 실제 역사에서의 문제가 있는 듯합니다. 친일파 제거 실패에 대해 조금 쉽게 설명하자면, 해방 이후 친일파 청산을 위한 노력이 없었던 것은 아닙니다. '반민족행위처벌법'이라는 건데요. 일제강점기 친일 행위를 조사하고 이를 처벌하기 위한 법이었습니다. 이를 위해 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반민특위)를 설치하지만, 이승만 정부와의 충돌로 오래가지 못했습니다. 당시 한국은 행정, 치안 인력이 절대적으로 부족한 상황에서 일제시기 때 관료, 경찰로 활약했던 친일파들을 계속해서 활용하게 됩니다. 때문에 반민특위와 충돌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죠. 이 배경에는 냉전과 강한 반공 의식이 있었습니다. 한반도가 서로 다른 이념을 가진 남과 북으로 나뉘면서 좌우의 대립이 극심해졌고, 친일 청산보다는 반공 국가 건설이 우선순위가 되었습니다. 그러면서 친일파 관료와 경찰 등을 처벌하려던 반민특위는 좌파로 몰리게 됩니다. 여기에 이승만 정부의 정치적 계산도 들어갑니다. 국내에 세력이 부족했던 이승만 대통령은 행정적 경험이 풍부한 친일 세력을 자신의 세력으로 끌어들였고, 결국 반민특위의 활동은 이승만 대통령의 기반을 흔드는 일로 받아지게 되죠. 설상가상으로 한국전쟁이 터지면서 친일청산 문제는 뒤로 밀리게 됐습니다. 한국이 공산화되고 있는가. 이 문제는 좌우 대립의 문제이긴 하지만 친일파 청산과 다른 문제입니다. 현재 친일파 청산 실패는 좌파가 우파를 공격할 때, 공산화는 우파가 좌파를 공격할 때 사용하는 정치적 프레임으로 작용하는 측면이 있습니다. 공산화 같은 경우 정치적 성향에 따라 어느쪽에 좀 더 가까운가의 차이는 있지만, 근거적으로 부족합니다. 중요한 건 어떤 사건이 실제 간첩 사건인지, 혹은 정치적 낙인이 찍힌 건 아닌지 객관적이고 중립적인 시각으로 구분해서 보려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그래야 불안에 쉽게 휘둘리지 않고, 지금 한국 사회가 처한 문제를 더욱 정확하게 볼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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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천주교.이슬람교 3종교의 차이를 알려주세요
안녕하세요. 함철민 전문가입니다.세 종교 모두 넓게 보면 아브라함 계통의 종교입니다. 그래서 아브라함, 모세, 다윗, 솔로몬과 같은 인물들이 중요하게 다뤄진다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다만, 구약이 완전히 같다고 보기에는 어렵습니다. 개신교와 천주교는 구약성경을 성경의 일부로 보지만, 이슬람교에서는 구약을 경전으로 쓰지는 않습니다. 이슬람교의 경전은 꾸란입니다. 세 종교의 차이는 '예수를 누구로 보느냐'에 따라 다른 거 같습니다. 천주교와 개신교는 모두 하나님의 아들, 구세주, 인간의 몸을 지니고 인간 세상에 온 하나님으로 봅니다. 그러나 이슬람교에서는 예수를 위대한 예언자지만, 하나님은 아니라고 보고 있습니다. 예수를 위대한 예언자, 그리고 최후의 예언자를 무함마드라고 믿고 있는 조교가 이슬람교입니다. 천주교와 개신교는 종교 개혁 이후 구분되기 시작했습니다. 천주교에서는 교황의 권위를 인정하지만, 개신교에서는 이를 부정합니다. 성모 마리아에 대한 태도도 차이가 있습니다. 정리하자면, 개신교와 천주교는 교회 권위와 전통을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차이가 있고, 기독교와 이슬람교는 예수를 하나님으로 보느냐, 예언자로 보느냐의 차이라고 할 수 있을 듯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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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한자가 뭔지 알고 싶어요 알려주세요
안녕하세요. 함철민 전문가입니다.'번지'(番地)를 뜻하는 한자로 보입니다. 차례 번 자와 땅 지자를 써서 땅에 매기는 번호라는 뜻입니다. 흔히 주소를 말할 때 '~번지'라고 할 때 그 번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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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으로 한국에 대한 역사 탐방을 간다고 합니다. 그럼 가서 대한민국 임시 정부나 그런 독립 운동한걸 보러 가는 걸까요??
안녕하세요. 함철민 전문가입니다.임시정부, 독립운동 외에도 우리 역사와 관련한 다양한 탐방이 가능합니다. 향하는 지역이 어디인지 말씀하시지 않아서 정확하게 답변드리기는 어렵겠지만, 지역에 따라 고구려와 발해의 유적을 볼 수도 있습니다. 또 신라방이나 적산법화원 등 한국과 중국의 교류 관련한 장소일 수도 있겠네요. 어떤 탐방이 될지 알 수 없지만, 견문을 넓히는데 좋은 경험이 될 거라고 생각합니다. 아무쪼록 무탈하게 좋은 탐방이 되길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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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인 냐전이 일어난 배경은 무엇인가요
안녕하세요. 함철민 전문가입니다.1930년대 스페인은 개혁을 둘러싸고 여러 갈등이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특히 남부 지역의 경우 소수 지주가 땅을 많이 가지고 있고, 농민들은 가난하게 살고 있었죠. 이에 농민과 노동자들은 토지 개혁, 임금 개선, 노동권 확대 등을 요구했는데, 자본가, 지주, 보수층이 이를 사회주의 개혁으로 보면서 갈등이 싹트고 있었죠.여기에 가톨릭 교회의 막대한 영향력, 공화국 정부의 군대 개혁 등 사회 전체에 갈등이 커져가고 있었죠. 이런 상황에서 1936년 좌파 연합인 인민전선이 총선에서 승리하게 됩니다. 그러자 우파와 군대 개혁에 반대하는 군부는 스페인이 공산주의 혁명으로 가고 있다고 보았고, 우파 정치인인 호세 칼보 소텔로 암살 사건을 계기로 군부가 쿠데타를 일으키게 됩니다. 다만 쿠데타가 전국을 완전히 장악하지 못하면서 스페인은 공화파와 국민파로 갈라지게 됐고, 이렇게 스페인 내전이 발발하게 됩니다. 소설에서는 스페인 내전 한복판에 놓인 개인의 삶과 비극에 더 집중하기 때문에 배경 설명에 대해 조금 부족했던 듯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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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사찰은 어디인가요,
안녕하세요. 함철민 전문가입니다.창건 전승이 가장 오래된 곳은 강화도에 있는 전등사입니다. 전승에 따르면 전등사는 고구려 소수림왕 11년인 381년에 창건된 것으로 전해집니다. 다만 조선시대 때 화재로 건물이 크게 소실 되면서 17세기 다시 지어진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가장 오래된 곳으로 현재까지 남아 있는 곳은 안동에 있는 봉정사 극락전이 꼽힙니다. 1972년 보수를 하면서 기록 하나가 발견됐는데 1363년 지붕을 크게 수리했다는 내용이 확인됐습니다. 때문에 실제 건물이 지어졌던 때는 그 이전(약 12세기~13세기)으로 볼 수 있습니다. 전승에 따르면 봉정사 자체는 672년 창건된 것으로 전해집니다. 건립 연대가 명확한 목조 건물은 수덕사 대웅전입니다. 수덕사 대웅전은 고려 충렬왕 34년(1308년)에 지은 건물입니다. 다만, 기록상으로는 백제 법왕 1년(599년)에 짓고 이후 원효대사가 고쳤다고 전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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