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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는 고려시대에 호패제도가 처음도입되었다는데 어디서 들어왔나요?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호패(戶牌, 號牌)는 전통 봉건시대에 신분증 구실을 하는 작은 패(牌)로 16세 이상의 남자가 차고 다녔다고 합니다. 고려와 조선에서 이 제도를 시행하였으며, 신분 계층별로 재질과 기재 내용에 차등을 두었는데 사망 시에는 국가에 호패를 반납하였기에 현재의 주민 등록증과 같은 물건이며 그 기원은 원나라에서 시작되어 한국은 1354년(고려 공민왕)때에 들여와 우리도 실시 하게 된 것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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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23.07.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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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르크메니스탄의 지옥으로 가는문은 어떻게 생긴건가요?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1971년 당시 소련의 지질학자가 이 곳 투르크 메니스탄에 매장되어 있는 지하 자원을 연구하던 도중에 천연 가스가 풍부한 동굴을 우연히 발견했는데 굴착기로 동굴을 뚫다가 추락하는 사고를 당했다고 합니다. 이 사고로 지름이 약 50~100m 정도로 추정되는 구멍이 생겼으며 유독 가스가 발생하는 것을 막기 위해 구멍에 불을 붙였다고 합니다. 이 구멍은 지금도 계속 불타고 있으며 현지인들은 이 곳을 "지옥으로 가는 문"이라고 부른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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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23.07.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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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 관람시 응원문화는 언제부터 시작된건가요?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우리나라 스포츠 응원 문화의 역사는 1930~1940년대 몇몇 고등학교(배제,양정 등)에서의 응원단 활동에서 시작 되었으며 단장이 단장이 리드하고 학생들이 따라하는 박수와 함성, 구호, 노래로 이루어진 응원이 대부분이었습니다. 그러던 것이 6.25를 거치면서 사관학교의 응원이 주를 이루게 되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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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
23.07.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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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승려가 누구인지 알려주세요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고려 전기의 고승인 대각국사 의천입니다. 그는 당시 고려와 중국 및 일본등에서 유행하던 불경 및 경·율·논에 대한 연구와 주석서를 널리 망라하여 그 목록을 작성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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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23.07.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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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약구급방은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의학 서적인가요..?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네 맞습니다. <향약구급방(鄕藥救急方)>은 고려 고종(高宗) 13세기 초 대장도감(大藏都監)에서 간행된 현존하는 한국의 의학서적 가운데 가장 오래된 저자 미상의 책입니다. 초간본은 전해지지 않고 조선 태종 17년의 중간본(重刊本). <방중향약목초(方中鄕藥目草)> 6장을 본문으로 하고, 부록으로 <방중향약목초부(方中鄕藥目草部)>에 향약 180종에 대한 설명이 있어, 고려 중기의 본초학 및 약용식물 등의 연구에 귀중한 문헌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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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7.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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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왕운기가 최초로 단군을 민족 시조로 내세운 역사서가 맞나여?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단군에 대한 기록이 있는 문헌으로는 고려 때의 기록인< 삼국유사> 와 < 제왕운기> 가 있습니다. 그 이전 기록에는 단군에 대한 언급이 보이지 않는다. < 삼국사기> 에는 단군 이라는 글자는 없지만 “선인 왕검”이란 글자가 보인다고 합니다. 그런데 삼국 유사는 충렬왕7년( 1281년) 제작 되었고 충렬왕 13년 ( 1287년) 제작 되었기에 제왕운기보다 삼국 유사가 더 먼저 단군에 관한 기록을 하게 된 것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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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7.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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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실록에 대해 질문드립니다.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어떤 왕조이던 그 왕이 죽은 후에 바로 실록이 쓰여지는 것이 아니라 그 왕의 재위 기간이 끝난 후에 기록은 작성되어 집니다. 고려 실록 중에 31대 공민왕에서부터 32,33,34대인 우왕, 창왕, 공양왕 때 까지의 기록인 고려 실록은 고려 시대에 제작 된것이 아니라 1398년 조선 태조 7년에 만들어 집니다. 즉, 이미 조선의 건국 후 6년이 지난 후에 만들어진 것 입니다. 그러니 모든 역사적 사실은 조선의 입장에서 쓰여 졌을 것이라고 추측 됩니다. 임진 왜란 때 고려실록은 소실 되어서 없어져서 확인 할 방법은 없지만 아마도 그럴 가능성이 높아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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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23.07.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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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비가 도성에서 말을 탈 수 있었나요?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노비도 말을 탈수 있었습니다. 다만 말의 가격이 워낙 비싸고 노비의 몸값보다 더 비싸기에 왠만한 양반집 뷰유한 노비가 아니면 말을 탈수 있는 기회는 거의 전무 했다고 생각 됩니다. 물론 말을 탈때도 주인의 허락 하에 말을 탈수 있었을 것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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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7.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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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에 소는 매매가 불가능했나요?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조선의 일하는 농촌에서 농우(農牛)는 개, 돼지, 고양이, 닭 등의 다른 가축과 질적으로 다른 대우를 받은 것은 사실 입니다. 심지어 주인이 매일 건강 상태를 점검할 정도로 소중하게 다루어졌지요. 사실 농우는 농사에 없어서는 안 될 요소였고, 논밭 다음가는 중요한 재산이었기 때문 입니다. 농번기에는 사람이나 가축이나 잠시도 쉴 틈이 없는 때이지만 그 중에 소가 가장 힘든 일을 하는 시기였습니다. 주인의 논밭은 말 할 것도 없고 이웃집은 물론 동네의 논밭을 모두 갈아야 하는 때도 있기 때문인데요, 그 만큼 소는 우시장에서도 귀하게 거래 되었습니다.조선 시대 우시장의 풍경에는 다른 전(廛)에서 볼 수 없는 특이한 점이 보이는데요. 그것은 다름 아닌 여성의 모습을 볼 수 없다는 것인데요. 집 안에서 생산한 다양한 잉여 생산물을 거래하는 것에 대해서는 여성들이 경제권을 행사할 수 없었던 것이 특징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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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23.07.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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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의 피를 이은 고려왕들은 고려의 왕으로 자각이 있었나요?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모계 출신이 원나라 라고 해서 부왕의 핏줄을 무시 할수는 없습니다. 예를 들어 조선 시대 에도 후궁 출신인 어머니에게서 난 조선의 왕들도 많았습니다. 그 왕들이 정실 왕비가 아닌 후궁 출신이라고 해서 혹은 그들의 어머니가 무수리나 궁녀 출신 이라고 해서 왕들의 출신이 비천 하다거나 그들이 애국심이 없던 것은 아닌 이치랑 같다고 생각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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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7.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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