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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의 언어에 대해 궁금합니다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훈민 정음 창제 이전에도 약간은 용업은 달랐으나 우리가 쓰는 말을 썼지요. 다만 글로 표기할때는 훈민 정음 창제 이전에는 어쩔수 없이 한자를 빌어서 이두라고 하는 글자를 이용할수 밖에 없었습니다. 물론 한글 창제 이후에는 한글을 써서 말소리를 글로 표기가 가능했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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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22.1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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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와 천주교는 어떻게 다른가요?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개신교는 카톨릭(천주교)에서 생겼지요. 16세기 카톨릭의 부패로 안해 독일의 루터가 종교개혁을 하면서 개신교(기독교) 기 분리되어 나왔습니다. 이단이라는 것은 기독교의 기본 논리를 부정하거나 변형시키는 종교 집단을 말합니다. 예를 들어 성경 66권의 내용을 더하거나 뺀다던가, 그리스도의 부활을 부정 한다던가 아렇게 상경 말씀을 자의적으로 해석하거나 변형시키는 집단은 다 이단이라고 할수 있으며 우라나라에는 대표적으로 산천지, 여호아의 증인등이 이단이라고 볼수 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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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
22.1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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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케스트라 관람시 언제 박수를 쳐야하나요?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보케스트라를 볼때는 보통 팜플렛을 나눠주는데여. 보통 교향곡은 4악장으로 구성되어 있고, 협주곡이나 소나타는 3악장으로 이루어져 있지요. 예외적인 곡들도 있긴 하지만 보통은 그렇습니다. 그러니 공연이 시작하기 전에 팸플릿을 먼저 확인하여 각 곡들의 모든 악장이 끝난 뒤에 박수를 치는 것이 맞습니다. 여기서 또 주의할 것이 있는데 가끔 어떤 곡은 아타카(attacca)로 연결되어 있어서 곡을 모르는 상황에서 곡이 멈춘다는 것만 생각하고 악장을 계산하면 난감한 상황을 맞이할 수 있지요. ‘아타카’란 악장과 악장 사이에 멈춤 없이 바로 연결하여 연주하라는 지시어인데 이렇게 곡이 진행된다는 것을 모르고 있었다면 나 혼자만 박수를 치게 되는 창피한 상황이 발생할 수도 있는 것이자요. ㅎㅎ 정리하자면, 교향곡은 보통 네 개의 악장이 모두 끝난 뒤에, 협주곡이나 소나타는 세 개의 악장이 모두 끝난 뒤에 박수를 치도록 해야 합나다. 그래도 언제 박수를 쳐야 할지 잘 모르겠다면 다른 사람들이 모두 칠 때 같이 치도록 하는것도 한 방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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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
22.1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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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가신분을 기리는 제사는 언제부터 했나요?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제사는 조상의 넋을 기리고 그 은혜에 보답하고자 후손들이 마음을 다해 예를 올리는 전통문화이지요. 고려시대 중국의 주자학이 전래되면서 조상 제사 의식도 함께 유입되었는데, 당시는 불교가 국교였기에 제사를 지내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러다가 고려 말부터 제사를 지내기 시작했고, 조선시대에 민간에 널리 장려되었다고 하지요. 처음에 제사는 조정 중신과 일부 양반들 사이에만 행해지다가 조선 중기 이후 평민에게도 일반화됐다고 합니다. 제사가 많은 폐단을 겪으면서도 지금까지 행해지는 것은, 죽은 조상신이 후손을 지켜주고 복을 준다는 기복사상(祈福思想)에 기인한 것이라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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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22.1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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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권의 역사에도 시집살이가 존재하나요?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서양권에서는 보통 결혼을 하면 거의 분가를 하는 편아라서 고부 간의 갈등이 거의 없습니다. 물론 특수한 상황에서는 같이 사는 경우도 있지만 그런 경우에도 그다지 심하지 않은 것 같습니다. 그 이유는 여성 인권이 아무래도 서양애서 많이 발달 되고 결혼을 햐도 직장생활을 하는 서구의 문화애도 기인하겠지만 기본적으로 사고 방식의 차이 문화의 차이라고 볼수 있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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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22.1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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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일본축구가 급성장한 이유는?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사실 인정하고는 싶지 않지만 일본은 우리나라보다 피파 랭킹이 항상 높았습니다. 현재도 우리나라는 28위인데 일본은 24위이며 곧 월드컵이 끝나면 일본은 10위권대 진입을 바라보고 있습니다. 우리도 물론 24위 정도로 올라갈것으로 보고는 있습니다. 그런 이유에는 일본 축구의 인프라인데요. 일본의 프로축구는 3부리그까지 총 44개의 탐이 있구요. 우리나라K리그는 22개로 절반 밖에 되지 않지요. 또한 남자축구 기준으로 유소년 축구 또한 7만8찬명으로 우리 3만 8천명의 두배 가까이 되지요. 물론 저변이 반드시 축구 슬력으로 볼수는 없지만 그 만큼 기초가 튼튼 하다는 면에서 볼때 당분간 일본 축구는 계속 발전 할 것이라고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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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22.1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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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문화는 왜 유명했나요? 지금은 왜 부진한가요?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삼국시대, 고려, 조선시대를 통틀어 일본의 역사가 중국이나 한국보다 찬란했던 적은 한번도 없었습니다. 임진왜란을 통해 우리나라의 각종 유물, 도자기, 그림 기타 다른 것들을 착취및 도굴 해간 이유이지요. 다만 근대에 들어 메이지유신을 통해 미국등의 문화를 일찍 받아들이고 또한 2차대전 이후 한국 전쟁 등을 통해 무기 판매 및 기타 시업적인 방법으로 일본 경제는 금방 부활했고 현재에 이르게 된것 입니다. 그 와중에 일본의 문학(소설등), 만화, 기타 게임등의 분야가 많이 발달 하긴 했지만 현재는 많이 쇠태했지요. 그 쇠태의 이유 중의 하나는 바로 초령화사회로의 진입 입니다. 일본의 인구가 1억 2천만명 인데 그중 65세이상의 인구 비율이 약 29%인 3천7백만명에 이를 만큼 일본은 초고령화 사회에 이미 접어들었습니다. 우리도 곧 그렇게 되겠지만 우리는 아직 65세 이상 인구 비율이 전체인구의 18% 정도인 약 900만 정도 라고 합니다. 이렇게 저출산율 상황이 계속 되면 아마도 10년 이내로 우리나라도 결국 일본처럼 되면서 K문화도 기억의 그늘 속으로 사라져 갈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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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22.1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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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본주의와 사회주의에 대해 질문드립니다.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엄밀히 말하면 북한은 사회주의 국가가 아닌 공산당 일당 독재체재에의한 공산주의입니다. 원래 이 뜻은 "공동생산 공동분배"이며,능력에 구애를 받지 않고 동등하게 분배받는 것이 취지인데여. 빈부격차를 없애기 위한 경쟁체제이지만,이로인해 열심히 일을 하지 않아도열심히 일을 한 사람과 동등한 분배를 받아자본주의와 반대로 욕심을 저버리게 하고 개인의 의욕을 꺽어버리는 것이죠. 북한이 유일한 공산주의 국가라고 하지만,장기독재를 유지하면서 변질된 공산주의 국가입니다. 그것도 아주 악날하게 변조된것이지요. 결론적으로 두 체제의 가장 큰 차이점은 자본주의는 자신의 능력에 따라 일한 만큼 댓가를 받는 것이고 공산주의는 능력이 없어도 모든 사람과 동등한 댓가를 받는 것인데 겉으로 보기에는 그럴싸 해 보이지만 인간의 자기실현의 욕망을 철저하게 무신한 체제가 공산주의의 정의인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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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
22.1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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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르메스가 최고의 명품이 된 이유가 뭔가요?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185년이라는 엄청난 역사를 자랑하는 프랑스를 대표하는 브랜드 에르메스는 1837년 티에리 에르메스(Thierry Hermès)가 세운 마구 상점에서 시작됐다고 합니다. 당시 주된 교통수단은 마차였는데 에르메스가 직접 손으로 만든 안장·채찍을 비롯한 마구는 정교했고, 장갑·부츠 같은 승마 용품은 품질이 우수했다고 하지요. 1867년 파리에서 열린 만국 박람회에서 티에리 에르메스는 직접 만든 마구 용품으로 1등상을 받았다구 하지요. 이는 에르메스 마구 용품의 우수한 품질과 견고함을 공식적으로 인정받은 첫 대회였고, 나폴레옹 3세와 왕족이 에르메스 주요 고객이 되는 계기가 됐고 이를 기반으로 귀족사회위주로 그 명성을 알리면서 그 이름이 전세계로 뻗어나갔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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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22.1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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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탁의기사 트리스탄은 실제인물인가요?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아서왕과 원탁의 기사들이 만들어졌을 것이라고 추정되는 시기의 역사는 로마 제국의 약화된 로만 브리튼 이후로 로마 군단이 철수한 5, 6세기를 배경으로 합니다. 영국사에서도 이 당시의 역사서나 기록이 거의 없기 때문에 모든 사건은 이후의 사료와 고고학적 발굴로 추정할 수밖에 없지요. 반면, 앵글로색슨족이 기독교를 받아들이고 역사 기록을 남길 정도로 문명화되는 8세기 말이 되면 이와 반대로 사료가 너무 많아져서 아서의 모델이 되는 여러 인물들을 추정하기가 더욱 어려워진다고 합니다. 그런까닭에 아서 왕(King Arthur) 또는 아서 펜드래곤(Arthur Pendragon)은 5세기와 6세기의 고대 브리튼 지역에서 웨일스인과 콘월인의 직계 선조인 브리튼인들을 이끌며 잉글랜드인의 직계 선조인 앵글로색슨족을 상대하였으며, 원탁의 기사들과 함께 왕국을 건설했다고 전해지는 전설 속의 인물로 볼수 있고 그와 함께 했던 기사 트리스탄도 설화속 인물이라고 보는게 타당성이 있을 듯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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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22.1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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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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