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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언제쯤의 의식으로 평생 살아가나요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제가 올해 51세인데 인데 과거의 저를 돌아보니 20대, 30대, 40대 계속 해서 사고와 생각하는 방식이 바뀌어 왔다는 생각이 드네여. 나이가 들수록 우리는 더 낙관적으로 변한다고 합니다. 미국, 네덜란드, 스웨덴, 스코틀랜드, 독일에서 6만 명의 데이터를 분석한 결과 60세 이후에는 대부분 덜 신경질적으로 변하며, 노년이 될 때까지 더 긍정적인 반응을 보인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고 합니다. 이런 연구 결과 뿐 아니라 제가 생각해도 제 자신이 나이가 들수록 좀 더 여유가 생기고 화도 좀 더 줄어들고 생각의 여유가 생기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전에는 굉장히 크게 생각되고 중요하게 생각 되던 일들도 지금은 별거 아는 것 같이 생각도 들고요. 과연 이것이 나이가 들어가는 것인지 아니면 세상에 이미 길들 어져서 그런 것인지 모르겠지만 사람은 아마도 죽을 떄 까지 어떠한 모양새던 계속 변해 가는 게 맞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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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1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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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란과 한국은 과거 나름 사이가 좋았는데 왜 이렇게 사이가 틀어지게되었나요,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양국은 1962년 10월 23일 수교하였다고 합니다. 1967년 4월에 주이란 한국 대사관이 설치되면서 대한민국과 이란과의 우호 관계는 긴밀해 졌다고 합니다. 1971년 10월 이란 건국 2,500주년 기념식에 김종필 총리가 대통령특사로 참석하였으며 그 후 국회의장을 비롯하여 수차례에 걸친 특사 및 사절단이 상호방문 함으로써 양국간의 관계는 더욱 견고해졌을 뿐만 아니라 중동 국가중에서도 비교적 대한민국의 대(對)UN정책을 지지해 온 우방 국가입니다. 하지만 미국과 이란 사이가 안좋아 지면서 중간에 낀 우리나라도 애매한 상황에 놓이게 되었고 최근에는 이태원 사고 당시 외국인 희생자 중 이란 국적자는 모두 5명으로 내국인 다음으로 사망자 수가 많았다고 하네요. 나세르 칸아니 이란 외무부 대변인은 10월 31일 정례 기자회견에서 “한국 정부가 관리 방법을 알았다면, 행사 관리를 했어야 했다”는 발언과 함께, 한국은 히잡 관련 시위 관련한 훈수를 둘 수 없다는 발언을 남겼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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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22.1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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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이 자본시장을 개방한 이유가 무엇인가요?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자국통화의 국제화를 지향하는 나라는 기본적으로 완전하고 자유롭게 이동할 수 있는 자본, 자본수지의 완전한 자유화, 환율의 완전한 교환성이 필요하지만 현 시점에서 중국은 여태 까지 그렇지 못했습니다.중국의 위안화는 이러한 통화 국제화의 조건에 이상적으로 부합되지는 않는다고 볼 수 있지요. 중국은 세계 2위의 거대 경제 규모와 막대한 교역 규모를 보유한 엄청난 잠재력을 가진 거대한 경제인 반면 위안화는 현재 통화의 태환성 및 자본시장의 개방이 제한돼 있는 통화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중국은 2009년 전국인민대표회의를 통해 위안화 국제화 추진 계획을 공식 선언했고 중국은 자국의 막대한 대외 무역 규모를 바탕으로 역내 결제 통화로서의 위상 강화를 통해 점차 위안화의 국제적 사용도를 확대해 나아가는 방향으로 위안화 국제화를 진행한다는 것이 계획입니다. 결국은 중국이 이런 방향으로 계속 나아간다면 지속적으로 가본 시장을 개방해 나갈 수 밖에 없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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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22.1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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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TI에 대해서 질문 드립니다.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결론부터 말씀 드리면 MBTI는 신뢰도와 타당성이 떨어지기에 믿을 것도, 활용할 것도, 참고할 것도 못 된다고 생각 합니다. MBTI는 연구할 만한 그리고 참고할 가치도 없다는 것이다는 것이 결론인 데요. 그 이유는 실제로 MBTI는 융의 분석 리를 기반으로 하고 있지만 융 조차 자신의 저서 '심리학적 유형'에서 "모든 개인은 각각의 유형을 벗어날 수 있으며 해당 결과는 완벽하지 않다"라는 부정적 평가를 이미 내렸다고 합니다.. 1993년 교육연구 학술지(Review of Educational Research)에 게재된 ‘MBTI의 유용성’ 논문에서는 ‘MBTI 결과는 참고하거나 신뢰하기 어렵다’고 언급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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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1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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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전쟁 발발시 일본도 참전했나요?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한국전쟁이 터지자 점령군 총사령관인 맥아더 장군은 1950년 7월8일 요시다 시게루 총리에게 경찰예비대를 만들도록 지시해 재 군비의 길을 열었는데요. 전쟁 발발 당시 일본에 군대는 없었지만, 한반도의 지리 지형을 잘 아는 옛 일본군 출신들이 있었다고 하지요. 이들은 점령군사령부의 정보조직(G2)에 협력해서 유엔군의 상륙작전 등을 돕는 정보 제공을 했다고 합니다. 일부는 상륙용 함정(LST)에 선원으로 승선해 일종의 병참업무를 담당했다고 하구요. 전투에 직접 참가하지는 않았지만 후방에서 전쟁 수행을 지원했다 합니다. 그래서 일본이 넓은 의미에서 참전국 이었다고 말할 수 있지요. 일본에서는 유엔군에 혈액을 보내자는 헌혈 운동이 벌어졌고 인천·부산 등지에서 연합군 함정을 수리하거나 항만 준설 작업을 했던 일본인도 상당수 있었다고 합니다. 1945년 2차 세계 대전 패전국인 일본이 5년 후 미국에 숫 가락 얻고 승전국에 포함된 셈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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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1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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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일본의 만행에는 무엇이 있나요?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아마도 가장 큰 학살은 관동 대지진 조선인 학살 사건이 아닌가 합니다. 1923년 9월1일, 도쿄와 요코하마 주변에는 정오 무렵 리히터 규모 7.9의 강한 진동이 관동 일대를 급습했다고 합니다. 진동이 멈추자 거리 곳곳에서 불이 났고. 순식간에 발생한 화재는 강한 바람을 타고 도시 전체를 휩쓸었지요.. 피난민으로 북적였던 육군 피복 야적장에 불이 옮겨 붙으며 4만 명이 희생되는 참사가 벌어졌고 관동 지역 인구 1000만 명 가운데 이재민만 310만 명에 달했다고 합니다.. 14만2000명이 죽고, 3만7000명이 실종됐다고 합니다. . 정작 지진보다 화재로 인한 피해가 더 컸다고 하네여. 거기에 더해 조선인이 불을 지르고 다는 다는 소문이 돌았고 결국 이 헛소문 때문에 일본 경찰과 군인이 동원되서 약 4일 동안 재일 조선인은 전부 죽였다고 하는데 독립신문 특파원이 조사·보고한 바에 따르면, 관동대지진 당시 4일 동안 희생된 조선인이 6661명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고 합니다. 이 사건에 대한 배상이나 사과는 아직도 한번도 없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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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22.1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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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시옷을 표기하는 이유가 궁금합니다.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사이시옷의 쓰임에 대해 그 원칙을 몰라 주저하기도 하고, 원칙을 알아도 적용하는 과정에서 많이 혼란 스러워 하는데요..우선, 사이시옷은 '합성어(두 개 이상의 어근이 결합된 복합어)'를 대상으로 하구요. 그리고 합성어 중에서도 '순우리말 + 순우리말', '순우리말 + 한자어'로 된 경우이며, 한자어로만 된 합성어의 경우는 예외로 인정되는 예외가 몇 개가 있습니다. 예를 들어 ,1. '순우리말+순우리말'로 된 합성어로서, 앞말이 모음으로 끝나고 뒷말이 예사소리며, 이 예사소리가 된소리로 발음되는 경우 ⇒ 귓밥, 낚싯대, 맷돌, 바닷가, 뱃길, 쇳가루, 어젯밤, 장맛비, 잿더미, 쳇바퀴, 등등 2. '순우리말+순우리말'로 된 합성어로서, 앞말이 모음이고 뒷말이 'ㄴ,ㅁ,ㅇ'으로 시작되며, 발음할 때 'ㄴ'소리가 덧나는 경우 ⇒ 깻묵, 나뭇잎, 냇물, 노랫말, 뒷머리, 베갯잇, 빗물, 요샛말 등등 3. '순우리말+한자어'에서, 앞말이 모음으로 끝나고 뒷말이 예사소리며, 이 예사소리가 된소리로 발음 되는 경우 ⇒ 깃발, 송홧가루, 자릿세, 진돗개, 콧병, 텃세, 포돗빛, 핏기, 햇수 4. '한자어+한자어'에서 두 음절로 된 다음의 여섯 가지의 경우 ⇒ 곳간(庫間), 셋방(貰房), 숫자(數字), 찻간(車間), 툇간(退間), 횟수(回數)와우, 정리해 보니 헷갈릿 것 같기도 하네여. 결국 순댓국 같은 단어는 한번만 국어 사전을 찾아보고 이름을 지었다면 좋았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남는 글자 이네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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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
22.1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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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한말 지식인들이 친일파가 된 것을 비난해야하나요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네에 말씀 하신 부분은 충분히 이해가 됩니다. 하지만 우리는 여기서 친일파와 지일파, 그리고 극일파의 차이점을 구별 해야 합니다. “친일파”라는 단어는 임종국이 1966년 출간한 《친일문학론》에서 처음으로 나온다고 하는데여. 이 책에서, 친일(親日)은 “일본과 친하다”라는 뜻으로 정의되었으며 친일파라는 명칭은 당시 기득권을 쥐고 있었던 사회지도층 세력인 부일배 표현 대신에 사용된 것입니다. 부일(附日)은 “일본제국주의에 부역하다”라는 뜻으로 단순히 일본과 친하다라는 개념을 넘어 일본의 침략 의도를 적극적으로 도운다는 의미이지요. 대표적인 인물이 바로 이완용이구요. 친일파는 일본에 대한 정확한 이해의 필요성을 주장한 지일파와 학일파(學日派), 경제·문화면에서 일본으로부터의 극복을 주장한 극일파와는 구별되는 개념이라고 봅니다.단순히 일본 문화 전반이나 일본인을 좋아하거나 이에 친근감을 느끼는 것인 친일과도 도 구별된다고 볼 수 있지요. 정말로 조선의 백성에 대한 애민 정신으로 일본의 선민 문화를 배워서 조선의 백성들을 깨우치고 계몽 하려고 했다면 그것은 칭찬 받아 마땅하고 그 뜻을 기려야 겠지요. 그 대표적인 인물이 서재필 이지요. 서재필은 정부의 보조금으로 개화파 인사들의 후원 아래 1896년 4월 7일 국내 최초의 민간 대중 신문 독립신문을 창간 창간하였고 민중의 계몽에 힘썼지요. 결론은 친일을 하던 지일을 하던 극일을 하던 중요한 건 그 행위의 궁극적인 목적 인것 같습니다. 그 목적인 개인의 안위와 행복추구 라면 결국 친일파로 흘러 갈 수 없을 것이고 그게 아니라 민족의 계몽과 독립이었다면 그것은 결국 애국의 길이 되는 것이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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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22.1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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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에도 가족관계증명서 같은 개록이 있었나요?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가족 관계 증명서는 예전에 호적이라고 했지요.호적은 행정상의 목적으로 상당히 일찍부터 시행되었을 것이나 대체로 한국에서는 율령(律令)이 반포된 삼국시대에 시행된 것으로 추정됩니다.일본 정창원(正創院)에서 발견된 신라 민정문서(民政文書)는 그 좋은 예러고 할수 있습니다. 고려시대에는 집 혹은 가족을 단위로 하여 호주 및 가적(家籍)에 속하는 가족과 신분 관계 등을 기록한 공문서로서 호적이라는 명칭이 처음 나타났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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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22.1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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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극기는 우리나라에서 언제부터 국기로 사용했나요?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태극기는 1882년 5월 〈조미수호통상조약〉 체결 당시 김홍집은 고종의 명을 받들어 역관 이응준에게 지시하여 직접 배 안에서 태극기를 그려서 사용하도록 하였고 9월 박영효 등 수신사 일행이 일본에 파견되어 갈 때에도 일본의 증기선 메이지마루 배 안에서 직접 태극기를 그려서 사용하였다고 합니다. 1882년에 고종의 명을 받아 처음 제작되고 사용되었던 태극기는 1883년 3월 6일(고종 20년 음력 1월 27일) 정식으로 '조선국기'로 채택되었다고 전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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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1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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