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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로카드의 유래가 궁금합니다.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타로라는 이름의 유래는 여러가지 재미있는 설들이 있는데 1888년 맥그리거 매더스(골든던의 창립자 중 한명)가 'TARO'의 철자 변환에 대해 몇 가지 예를 들었다고 합니다. TORA, TROA, ORAT, ROTA, TAUR/TAOR, ATOR/ATHOR가 그것들인데 하지만 그 중에서 무엇이 옳고 아닌지 아직 증명된 것은 없다고 합니다. 이집트 문자 유래설 타로는 이집트 문자인 'TAR(길)'와 'RO, ROS(장엄한, 왕족)'에서 나온 말로서 '왕족(장엄한)의 길'이라는 뜻이라는 설. 이집트의 달과 지혜의 신인 토트의 이름에서 유래되었다는 설도 있는데 이집트의 사랑, 결혼, 기쁨의 여신인 하토르에서 유래되었다는 설과 이 여신은 머리에 두 개의 뿔 사이에 원반 모양의 태양을 달고 있는 형상이나 암소의 머리를 한 형상으로 묘사된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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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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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만 대통령이 일으킨 4.3 사건이 궁금합니다?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1947년 3월 1일을 기점으로 1948년 4월 3일 이승만 정권 시절에 발생한 제주도에서의 시위중인 군중들과 경찰/군인들의 유혈충돌사태가 4.3 사태 입니다. 1954년 9월 21일까지 무력충돌과 진압 과정에서 수많은 제주도 주민들이 목숨을 잃었다고 합니다. 한국 현대사에서 한국전쟁 다음으로 인명피해가 많았던 비극적인 사건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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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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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감찬 장군의 가장 높았던 계급이 궁금합니다ㅡ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문하성의 장관인 시중을 보통 ‘문하시중’이라고도 칭하였는데, 이가 수상직을 수행하였다고 합니다. 강감찬 장군은 서북면행영도통사, 상원수대장군, 문하시중 등을 역임한 문신이라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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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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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사극은 몇프로의 역사적사실이 들어가나요?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역사 드라마에서 작가, 제작자의 상상력이 역사적 사실 대비 허용할 수 있는 범위에 대해서는 40% 이하라고 응답한 비율이 71.5%, 60% 이하라고 답한 비율은 93.3%(40% 이하를 포함한 비율)로 나타났습니다. 흥미로운 사실은 세대별로 봤을 때 역사 드라마가 역사적 사실만을 다루어야 한다는 인식은 젊은 세대일수록 낮게 나타났다는 것인데요, 즉 젊은 층일수록 '역사'보다는 '극'에 더 방점을 찍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는 부분이라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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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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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분의 도가니라는 말이 있는데 도가니는 무슨 뜻일까요?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도가니는 그래서 단단한 흙이나 흑연으로 만드는 쇠붙이를 녹이는 그릇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흥부의 도가니라고 하면 흥분이나 감격 따위로 들끓는 상태를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이며 우리가 보통 ' 그들은 흥분의 도가니'에 있다 라고 하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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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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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시배달국은 왜 역사학계에서 인정받지 못하는 국가인가요?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신시 배달국이 인정 받지 못하는 이유는 부족한 기록과 증거 때문 인데 신시배달국의 역사는 부족한 기록과 증거로 인해 미비하게 남아 있습니다. 역사학자들은 기록이 부족한 경우 해당 국가의 존재와 역사를 확인하기 어렵게 여깁니다. 또한 신화적인 성격도 문제인데 신시배달국의 역사는 신화적인 성격을 띠고 있다고 합니다. 이러한 신화적인 요소는 역사학적 연구에서 과학적 증거와 충돌하며 인정받기 어렵게 만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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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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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고구려의 왕인 궁예가 신라 왕족이라는데 사실인가요?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궁예가 고위 신라 왕족이었다는 것을 뒷받침하는 역사적 사실은 여러 가지 기록과 정황 증거가 있다고 합니다. 궁예는 양길에게서 독립하기 전에 명주에 가서 호족 순식의 항복을 받았는데, 궁예가 그저 혈통도 알 수 없는, 아니 혈통이나 사칭하는 반란군 수령 나부랭이의 수하일 뿐이었다면 그렇게 순순히 굴복하지 않았을 것이기 때문이다 라는 말도 있습니다. 신라 당시는 가문과 혈통만은 엄격하게 따지는 골품제 혈족 사회, 신분 사회였고 상류층조차도 가문의 등급이 철저히 나뉘어졌으며 누가 몇 두품 가문 소속인지 아닌지는 가문 소속 인원들과 족보만 조사해봐도 금방 들통날 게 뻔했던 때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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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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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청자의 색깔을 현재는 정말 재현할 수가 없나요?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당시 도자기의 주요 수요층은 당연히 왕족이나 귀족 등 지배계급이었습니다. 하지만 아무리 지위가 높다고 하더라도 경제적으로 풍족하지 못하다면 사치스러운 상감청자를 마음껏 누리지는 못한다고 합니다. 물론 경제적 요인만 있는 것은 아닌데 무엇보다 그 가치를 누릴 수 있는 안목과 식견을 갖춰야 했을 것이다. 자연스럽게 11~12세기 고려가 경제적으로도 풍족했고 지배계급의 문화 수준도 높았을 것이라고 짐작할 수 있다고 합니다. 벽란도를 통한 무역으로 경제적 윤택을 누릴 수도 있었을 것인데 상업은 농업이나 공업보다 이익을 더 많이 그리고 쉽게 얻을 수 있습니다. 실제로 12세기 후반에서 13세기에 접어들면 뜻밖에 고려청자의 수준이 떨어지는 것을 확인할 수 있는데 그건 바로 무신정권의 지배와 원나라의 침입 때문 입니다. 평화롭고 윤택할 때는 문화가 세련되고 성숙해지지만 불안하고 피폐해지면 당장의 문제를 해결하는 수단이 되지 못하니 문화가 퇴보하게 된다. 가난하고 정치가 불안정한 나라에서 문화가 성장하는 경우는 거의 없습니다. 고려 말에 가면 청자의 전성기는 완전히 막을 내리고 쇠퇴하다가 조선시대가 되면 그 맥이 거의 완전히 끊어지고 마비다. 물론 조선은 유교적 가치를 내세운 왕조였기 때문에 사치와 화려함보다 질박하고 담백한 것을 추구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청자의 맥이 끊어진 것은 두고두고 아쉬운 일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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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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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국이 식민지가 되지 않았던 이유는 무엇인가요?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이러한 이유는 주변 정치적 상황이나 영국과 프랑스의 견제 때문이 아니었습니다. 실제로 태국이 식민지가 되지 않은 이유는 지도자의 시대를 읽는 혜안과 국가 혁신 정책 덕분 이라고 합니다. 19세기 지구촌은 식민지를 차지하기 위한 열강의 시대였습니다. 영국, 프랑스, 네덜란드, 미국, 독일 등이 자신들의 영역을 넓히기 위해 쟁투했지만 그러나 태국은 이런 열강들의 식민지 지배에도 꿋꿋이 자신들이 영역을 지켜냈습니다. 이 나라가 식민지가 되지 않은 이유는 나라를 이끌어가던 지도자의 시대를 읽는 혜안과 국가 혁신 정책 때문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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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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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세 유럽의 수도원에서는 왜 맥주 양조장을 만들었나요?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수도원에서 맥주를 생산한 것은 자급자족의 일환 입니다. 중세 시대의 수도원은 자급자족해야 했습니다. 농사와 가축을 기르고, 음식과 음료를 생산해야 했죠. 맥주는 이러한 자급자족의 일환으로 생산되었습니다. 또한 안전한 음료이기도 했습니다. 당시 물은 종종 오염되어 있었습니다. 하지만 맥주는 석회 성분이 많은 물보다 오래 보관되며 안전하게 마실 수 있다고 여겨졌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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