첨성대가 천문대가 아닌 다른 가설은 무엇이 있나요?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첨성대의 또 다른 의미는 천문대가 아니며, 주로 군사적 목적으로 사용되었다는 것 입니다. 이곳은 당시 왕궁과 중요한 건물들을 보호하기 위해 세워진 곳으로, 천문 관측이 주된 목적은 아니었고 첨성대는 조선시대의 건축 기술과 역사적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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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빌리의 움직이는 돌은 진짜 움직였나요? 스스로?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돌이 움직이는 것은 사실 입니다. 데스벨리 지역은 1년 평균 강수량이 5cm에 불과한데 모든 조건이 충족되면 바위는 믿기 힘들 만큼 느리게 움직인다고 합니다. 이어 이와 비슷한 자연현상이 북극같이 추운 곳에서는 더욱 큰 스케일로 일어난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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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입고 있는 한복은 언제 때부터 입게 되었나요?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현대의 한복은 보통, 조선시대에 입었던 한복과 유사성이 크며 명절이나 격식을 갖추는 자리에서 입는 경우가 많습니다. 개량한복은 생활의 편리함을 강조하고 있어 20세기 동안 그 외형이 여러 변화를 겪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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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들은 개인 사생활이 없었을까요?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왕들에게도 개인 생활이 있긴 했습니다. 하지만 워낙 타이트한 생활의 연속 이다 보니 개인의 취미 생활 이라던지 하고 싶은 일을 하기는 쉽지 않았을 것으로 보입니다. 왕들은 이른 아침 부터 저녁에 잠들떄 까지 꽉 짜여진 일정의 연속이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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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종묘에서 아직도 제사를 지내나요?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네 현재도 제사를 지내고 있는데 종묘제례는 과거의 모습을 완벽히 재현한다기보다는 지금의 시기에 맞추어 변통할 것은 변통한 모습을 볼 수 있는데 그러나 조선 왕조서부터 대한제국에 이르기까지 수백년에 이르러 긴 시간 동안 이어진 의례인만큼 재현의 개념도 포함될 수 밖에 없다고 합니다. 따라서 재현을 하려면 어떠한 시기를 재현해야하는지를 설정해야하는데, 어가행렬의 경우 여러 의궤에 실린 반차도를 통해서도 확인이 가능하지만, 팔일무, 십이장복 등의 춤, 복식에서도 대한제국의 시기로 설정되어있는만큼 어가행렬 재현 시기 역시 대한제국의 것으로 설정하고 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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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 동전, 즉 엽전에 구멍이 뚫린 이유는 무엇인가요?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엽전은 중국 진나라 시대에 처음 만들어졌다고 합니다. 이 엽전은 둥그런 모양에 네모난 구멍이 뚫려 있었는데 둥근 모양은 하늘을 본뜬 것이고, 네모난 구멍은 땅을 본 뜬 것이었다고 합니다. 엽전에 구멍을 뚫었던 이유는 옛날에는 지갑이 따로 없어서 엽전을 들고 다니기가 불편해서 구멍에 실을 뚫어 옆구리에 차고 다니기에 편리해서 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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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 남학생들이 삭발을 하였던 이유는 무엇인가요?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우리 나라는 원래 머리를 자르지 않았으나 조선 후기인 1895년에 근대화를 위한 단발령이 선포되었습니다. 대한민국에서는 1970년대에 풍기 단속을 위하여 남자의 장발을 제한했으나 80년대에 와서 없어졌고 1980년대 초반 청소년의 두발 자유화를 시행 하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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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시대에는 불륜이 만연했다라는 말이 있던데, 사실인가요?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고려 시대에는 여러 가지 스캔들과 불륜 사건이 있었던 것은 사실 입니다. 특히 왕실에서는 헌정왕후인 경종 헌화대왕의 왕후는 그 중에서도 최고의 스캔들로 알려져 있습니다. 헌정왕후는 고려 제 5대 군주인 경종 헌화대왕의 왕후로, 고려 최고의 명군인 현종의 어머니이기도 했는데 그녀의 불륜 사건은 꽤 다양한 소문을 전했습니다. 하지만 일반 사람들이 불륜을 저질 러도 처벌을 받지 않은 것은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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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중 내분으로 자멸한 국가가 있나요?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내부 분열로 인해 멸망 했다는 설, 즉 내부 분열설로 멸망한 국가의 대표적인 국가가 발해 입니다. 발해는 지배층인 고구려 유민들과 피지배 계층인 말갈족들의 내부적인 분열로 인해 멸망 했다는 설이 있는 국가 중의 하나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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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종이 황희를 유배보낸 이유가 무엇인가요?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태종 18년(1418년) 그의 생애에서 가장 큰 위기가 찾아오는데 폐세자를 전면에서 반대하다가 결국 세자에게 아첨하려 한다는 죄를 얻은 것입니다. 평소 그를 못마땅하게 보아온 조정대신들은 거의 그를 죽일 듯이 탄핵 공세를 했으나 그러나 구상은 이미 태종의 머리 속에 들어 있었습니다. “사람들이 모두 황희(黃喜)를 간사하다고 하나, 나는 간사하다고 생각하지 않고 심복(心腹)에 두었는데, 이제 김한로의 죄가 이미 발각되고, 황희도 또한 죄를 면하지 못하니, 지금이나 뒷날에 곧 그 사실을 알게 될 것이다. 황희는 이미 늙었으니, 오로지 세자에게 쓰이기를 바라지는 않겠으나 다만 자손(子孫)의 계책을 위해서 세자에게 아부하고 묻는 데 바른 대로 대답하지 않았기 때문에 이제 폐(廢)하여 서인(庶人)으로 삼았으니, 인신(人臣)으로서 어찌 두 가지 마음을 가지고 있겠느냐?” 그럼에도 태종은 “그대의 간사함을 미워한다”며 경기도 교하로 유배를 보냈다가 끝내 충녕대군으로 세자가 교체되자 전라도 남원으로 멀리 내쫓았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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