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에 있는 첨성대는 언제 만들어진 것인가요?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경상북도 경주시에 있는 삼국시대 신라 시기의 천문관측소입니다. 『삼국유사』에 신라 선덕여왕 (632~647년)때 축조되었다는 기록이 있으니 1700년이 된 건물 입니다. 위에는 높이 1m의 네모진 돌이 있는데 관측할 때에 소간의를 설치하는 곳이었다고 합니다. 1962년에 우리나라 국보31호가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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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적으로 런닝머신(트레드밀)이 고문기구 였다는게 사실인가요?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트레드밀의 원래 의미는 tread는 밟다 라는 의미이고 mill 은 공장, 기구 라는 의미 입니다. 즉 밞아서 가루를 만드는 기구 등의 의미인데 이것이 죄수들의 형벌 기구로 처음 고안되었다고 합니다. 1818년 영국의 토목기사 윌리엄 큐빗이 죄수들을 대상으로 사용하기 위해 고안한 것인데 죄수들은 바퀴에 박힌 계단을 발로 밟으며 통나무를 굴리는 형벌을 받았습니다. 특히 죄수들은 칸막이가 쳐진 트레드밀 위에 나란히 서서 하루에 최소 6시간씩 트레드밀을 움직여야만 했고 이것은 거의 에베레스트를 올라는 것과 비슷한 육체적인 고통을 주었다고 합니다. 이후 트레드밀은 대표적인 유산소운동 운동기구로 거듭나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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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에서 주기적으로 펼쳐지는 열병식은 왜 하는것인가요?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공산 주의 국가의 열병식은 비단 북한 만이 아니고 중국이나 과거 소련에서도 이러한 행사를 주기적으로 했습니다. 그 이유는 자신들의 체제, 특히 군사력을 과시하고 해외 고위급 인사를 초청해서 외교력을 과시하는 자리이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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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는 왜 분단 국가가 된 건가요?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쉽게 말씀 드리면 미국과 소련, 중국 등의 외세 때문 입니다. 우리 나라는 광복 후 남한과 북한에 각각 독립 정부가 들어 셨는데 이 것은 우리 민족의 의지가 아니라 미국과 소련 등 강대국들이 자기들 마음대로 38선을 기준으로 북한과 남한으로 분단 시켰기 때문 입니다. 우리는 힘이 없었고 그래서 그냥 그렇게 살아 오다가 6.25가 터지고 더욱 더 남북 분단은 고착화 되어 진것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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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차나 소방차에 사이렌은 언제 도입이 되었나요?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불이 나면 소방대를 모집하기 위해 경보를 울리는 것은 조선시대에도 존재했다고 합니다. 종루에서 불이 나는지를 감시하고 있다가 연기를 발견하면 큰 종을 쳐서 알리는 방식이었다고 하는데 이 시스템은 일제강점기 초까지 이어지다 기계식 경보 장치인 사이렌이 들어오면서 바뀌기 시작했고 일제 강점기인 1924년 3월에 남대문 소방서 망루에 처음 설치된 것을 계기로 전국에 설치됐다고 합니다. 손으로 돌리는 수동식 사이렌은 소방차에, 기계로 돌아가는 대형 사이렌은 철제 탑 위에 올려 온 동네 사람들이 들을 수 있도록 했다고 전해 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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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케다 신겐은 왜 급사한것인가요?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그의 죽음에 관한 설은 여러가지가 있으나 가장 신뢰성 높은설은 신겐의 시의였던 미슈쿠 켄모츠의 기술에서 유래한 병사설로, 신겐은 애초에 결핵에 걸려 건강이 극히 나쁜 상황이었고, 오다 세력을 멸망시키고 천하를 호령할 호기를 놓칠 수 없어 그런 건강 상태를 무시하고 출전을 강행했다가 도중에 숨졌다는 것이 제일 유력한 설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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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대교의 핵심 교리와 신앙에 대해 알려주세요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유대교의 특징 중 가장 중요한 것은 모노테이즘(Monotheism)입니다. 유대교는 하나의 하나님만을 숭배하며 다른 신을 경외하지 않는 종교이고 심지어는 예수님도 선지자 중의 한명 이라고 생각 하는 종교 입니다. 이 점이 기독교와 천주교와 다른 점 입니다. 이 믿음은 유대교의 기초이자 핵심 원리 중 하나이며, 유대인들의 일상생활과 종교적 신앙을 조화시키는 중심 요소입니다. 또한, 유대교는 율법(Torah)을 중요하게 여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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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노플리 효과 de panoplie effet는 무엇인가요?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사람들이 특정 제품을 소비하면서 유사하거나 같은 급의 제품을 소비하는 소비자와 같은 집단, 같은 부류라고 여기는 환상을 가지게 되는 현상을 일컫는 용어인데 파노플리(panoplie)는 프랑스어로 한 세트(set), 집합이라는 뜻하는 단어 입니다. 예를 들어 마치 어떤 사람이 자신이 고급 승용차를 한대 사서 구매 하면 마치 자신이 상류층 사회의 일원이 된것 같은 착각을 일으키게 만드는 효과가 있다는 것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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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은 왜 둘째아들 단속을 못해 비극을 불렀나요?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자식 고집은 부모도 못 말린다고 합니다. 역사상 왕위에 대한 욕심을 가기도 본인의 차례가 아닌데도 왕위를 노린 제왕들은 많았습니다. 조선의 첫 왕인 태조 이성계의 다섯번 째 아들인 이방원은 원래 왕이 될수 없던 자리였습니다. 자기형들이 4명이나 있고 동생이 2명이나 있는데 있는데 2명을 제외 하고는 다 죽이고 본인이 왕이 된 경우 입니다. 태조 이성계가 과연 자식 교육을 잘못 시켜서 일까요? 세종 대왕의 둘째 아들인 수양 대군도 관연 세종 대왕이 자식 교육을 잘못해서 자기 조카를 죽이고 수양이 세조가 되었을 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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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는 족보가 있는데요, 해외에도 그런 것이 있을까요?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동양권 뿐 아니라 미국에도 족보라는 것이 나타난 적이 있었습니다. 경제적 여유로 사회적 활기를 보였던 19세기 말엽 아메리카 대륙의 미국인들은 유럽의 귀족 가문에 뿌리를 둔 것처럼 보이는 족보를 다투어 만들어 신분을 과시하려 했는데 유럽 콤플렉스에서 비롯된 유행이었으나, 이때 이들이 제작한 족보는 우리처럼 이름을 적어 뿌리를 밝힌 '문서 족보'가 아니라 얼굴이나 이름을 적은 '그림 족보'가 대부분이었습니다. 이때 족보를 만든 사람들은 대부분 백인이였고 이후 족보 열풍은 1970년대 후반기까지 이어졌는데 당시 '뿌리(root)'라는 TV 연속극이 방영되면서 미국인들 로 하여금 백인들은 물론 흑인들까지 '뿌리' 찾기에 나서도록 만들었던 것입니다. 이에 따라 족보 회사들 이 난립했고 사립 탐정들이 족보 추적에 나서는 일도 벌어졌지만 족보 열풍은 많은 사람, 특히 흑인들에게 조상에 대한 그리움만을 새삼스럽게 일깨워 주었을 뿐, 현실화된 족보를 손에 쥔 사람은 많지 않았다고 합니다. 아프리카 시절에 대한 뿌리 찾기가 사실상 불가능할 뿐만 아니라 그 추적 비용이 너무 비쌌기 때문입니다. 우리나라나 미국이나 본인의 뿌리가 궁금 한 것은 사람의 본성 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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