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 프로필
프로필
답변
잉크
답변 내역
전체
학문
우리나라 공주들도 화려하고 사치가 심했나요?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공주는 대부분 12~15세 전후에 결혼을 했다고 합니다. 남편과 나이 차이는 동갑이거나 남편이 한두 살 연상이었으나 경우에 따라서는 공주가 연상일 때도 있었다고 하네여. 왕자에 비해서 공주의 생활이 그렇게 부각 되지 않은 이유는 결혼을 하면서 궁 밖에서 살면서 왕자들과는 권력과는 멀어진 생활을 하게 되기 때문이지요. 공주는 왕실 가족으로 내명부·외명부와 함께 궁중의 잔치, 왕비의 시위(侍衛), 혼인 및 초상 등 여러 행사에 참석하였다고 합니다. 「경국대전」에는 공주의 집이 50칸을 넘지 못하도록 정해져 있지만 대체로 공주의 집은 이 보다 훨씬 커서 수백 칸이 넘는 경우도 있었지요.
학문 /
역사
22.12.06
0
0
우리나라에 긴 다리는 어디에 있나요?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긴 교량은 2009년 준공된 인천대교 (11.86km)인 것으로 조사됬는데요. 가장 긴 터널은 서울양양고속도로 구간에 위치한 인제양양터널 (10.96km)이었다고 합니다.
학문 /
미술
22.12.06
0
0
우리나라에서 최남단섬이 마라도라는데 주민수는?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마라도에는 약 50명의 주민이 살고 있다고 하네요. 작은 섬이지만, 마라도는 우리에게 꽤 친숙하지요. 우리가 잘 알고 있는 마라도 짜장면과 최남단이라는 상징성은 마라도를 한 번도 와보지 못한 사람들에게도 익숙할 정도로 유명합니다. 얼마전 TV 에 무한 도전의 유재석씨가 나와서 짜장면을 마라도에서 먹던 장면도 생각이 나네여.
학문 /
역사
22.12.06
0
0
우리나라 첫 금메달을 딴 선수는?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우리나라의 첫 올림픽 금메달은 사실 1936년 베를린 올림픽 마라톤에서 손기정 선수가 딴 금메달이 최초지만 당시에는 한국이라는 나라는 존재 할 수 없었기에 손기정 선수가 딴 금메달은 공식적으로는 일본의 것 이였습니다. 대한 민국이 광복후에 처음으로 딴 올림픽 금메달은 1976년 몬트리올 올림픽때 레슬링 자유형 62키로급에서 양정모 선수가 딴 금메달이 처음 이였습니다.
학문 /
역사
22.12.06
0
0
올림픽에서 따는 금메달은 진짜 금일까요?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현재 올림픽 규정상 현재 금메달은 99.9% 이상이 순은을 이루고 있고, 도금 시 최소 6g 이상의 순금을 사용한다고 합니다. 그러니 금메달은 사실 은메달에 가까운 것이지요. 하지만 은메달은 100% 다 은이라고 합니다.
학문 /
미술
22.12.06
0
0
세계인이 좋아하는 우리나라 음식은?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세계인이 좋아하는 우리나라의 음식 1,2,3위는 차례로 1. 비빔밥 2. 삼계탕 3. 소갈비구이 순으로 나타났습니다. 아무래도 중국인들이 많이 우리나라에 찾다 보니 이런 결과가 나온 것 같은데 아마 미국인들이나 서양인들의 입맛으로만 따지만 아마도 소갈비가 1위를 하지 않았을 까 합니다.
학문 /
음악
22.12.06
0
0
미국 혁명 보스턴 차 사건과 관련된 것이 궁금합니다.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보스턴 차 사건(Boston Tea Party)은 영국의 지나친 세금 징수에 반발한 북아메리카의 식민지 주민들이 인디언으로 위장한후 1773년 12월 16일 보스턴 항에 정박한 배에 실려 있던 홍차 상자들을 바다에 버린 사건이고 이를 계기로 미국과 영국의 독립 전쟁이 시작된 것이지요. 이 시기에 조선은 영조 49년 이였고 여전히 조선은 붕당 정치로 인해 당파간에 싸움만 벌리고 있었던 때 였습니다. 이 시기에 프랑스는 이미 루이 14세 때부터 빈민과 평민 계층에 대한 압박이 일상화되어 있었고 베르사유 궁전의 건축으로 잘 알려진 프랑스 왕실의 사치와 낭비는 시간이 지날수록 그 도를 더해 갔고, 더욱이 계속되는 주변 강대국과의 전쟁, 북아메리카 대륙에서의 무리한 군사 행동은 국가의 재정을 더욱 악화시켰구요. 1774년에 국가 재정의 33% 이상이 군비 증강을 위해 소비되었고, 약 3%가 부채에 따른 이자 지불에, 10%는 왕실의 경비로 지출되었고, 이러한 상황에서 곡물 가격은 천정부지로 치솟았으며, 전염병이 극성을 부려 수많은 가축들이 죽어 나갔다. 프랑스의 농촌 경제는 완전히 몰락하여 파산 지경에 이르렀던 시점 이였지요. 이 시기에 영국도 프랑스와의 전쟁 등로 인해 재정적인 어려움을 겪고 있었던 시기여서 더더욱 미국 같은 식민지에서 더 많은 세금을 거둬야만 하는 상황 이였지요. 그래서 결국 미국과의 전쟁이 일어나게 된 것 이구요.
학문 /
역사
22.12.06
0
0
흥선대원군의 쇄국정책은 어떻게 바라봐야 할까요?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역사를 현재 기준으로만 판단 하는 것은 사실 무리가 있긴 합니다. 하지만 결론적으로 일본이 치욕을 견디면서 메이지 유신을 하면서 미국의 신문명을 받아들였고 중국이 아편 전쟁의 패전으로 영국과 불평등 조약을 맺는 것을 보면서 우리도 변화의 몸부림을 했어야 했는데 우리는 너무도 소극적이고 수동적으로 변화에 대응한 결과 결국 한일 합방이라는 치욕을 겪게 되지요. 결국 흥선 대원군의 쇄국 정책은 그때도 지금도 잘못된 판단으로 보여집니다.
학문 /
역사
22.12.06
0
0
인간은 고통없이는 얻는것도 없다 라고 말한 학자는 누구일까요?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No pains , No gains라고 처음 말한 사람은 아마도 영국의 시인 Robert Herrick(1591~1674)가 그의 시집 "Hesperides"에서 이런 말을 했다고 하지요. NO PAINS, NO GAINS. 사실 이런 비슷한 말들은 영어 표현에 굉장히 많습니다. No sweat, no sweet, No cross, no crown, No gain without pain 등도 전부다 비슷한 표현들이지요. 모든 성공에는 댓가 가 따른다는 말이 겠지요.
학문 /
철학
22.12.06
0
0
태종 때, 호패법 폐지한 이유가 궁금합니다. 폐지할만한 부작용이 있었던것인지?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호패법의 취지는 백성들의 거주 안전을 도모하고 국가 입장에서는 징세를 안정적으로 취해 국가와 백성의 살을 둘 다 이롭게 하자는 취지 였을 것 입니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임진왜란 이나 병자호란 등으로 생활이 어려워진 백성들은 살고 있는 곳에서 더이상 살기가 힘들어져 다른 곳으로 계속해서 옮겨 다니며 생활을 할 수 밖에 없었는데 이런 백성들의 거주의 자유를 법으로 막는 셈이나 다름 없었던 것이죠. 지금으로 따지면 서울 살다가 부산으로 이사가면 부산에서 이전 신고만 하면 되는데 당시에는 신고가 아니라 허가를 받아야 하는 방식이다 보니 백성 입장에서는 여간 불편하고 불합리한 제도 였을 겁니다.
학문 /
역사
22.12.06
0
0
2350
2351
2352
2353
2354
2355
2356
2357
235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