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 홈답변 활동잉크

지휘자겸 성악가 강경원입니다

지휘자겸 성악가 강경원입니다

강경원 전문가
부산진구남성합창단
Q.  조선초기 이성계는 왜 무악으로 수도를 이전하려고 한것이고 무악은 어디를 말하는건가요?
안녕하세요. 강경원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고려의 흔적이 남아있던 한양이 불편했던것이다.그래서 이성계는 무악으로 수도를 옮기려했으나 장소가 너무 좁았다ㅡ 오늘날의 신촌이다.
Q.  우리나라의 친일잔재 청산이 어려운 이유는?
안녕하세요. 강경원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그렇습니다. 친일잔재 청산이 어려운점은 해방이후 어려운 국내 정치적 상황에서 일본에 붙어먹은 놈들이 다시 공산당(인민군),자유주의(국군)로 나뉠때 남쪽의 지유주의를 표방하며 정치를 휘어잡았지요....ㅠ 공산당 프레임을 씌워서 아예 일제 라는 말을 입에 내지도 못하게 했고, 행여 일제앞잡이라고 몰아붙이면 오히려 공산당이라고 밀고해서 사형이나 엄벌에 처해버리는 어처구니 없는 상황이 벌어져 오늘날까지 이어지고 있답니다. ㅠㅠ
Q.  헤라클레스는 신화속 인물이 아니라 실존 인물인가요?
안녕하세요. 강경원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그리스 신화속 인물이지요~제우스는 알크메네와 낳은 아들 헤라클레스를 사랑하여 뛰어난 힘을 주고 왕위를 약속했지만 아내 헤라의 질투로 이루지 못한다. 헤라가 늘 헤라클레스를 위험에 빠뜨리려 해서 그는 끝없이 모험을 해야만 했다. 후대 사람들은 이 모험을 12가지 사역이라 하는데 힘과 용기로 시련을 극복한 이야기들이다.그리스 신화의 영웅이자 신.전 세계의 다종다양한 설화와 전설, 신화속 영웅 가운데서도 실질적으로 영웅의 대명사로 군림하는, 지구 전체의 신화와 전설에서 가장 유명한 사나이라 할 수 있다. 현재까지 온전히 전승된 그리스 신화 내에서도 중요하게 다루어지는 인물로, 초인적인 힘과 불굴의 정신을 지닌 헤라클레스의 무용은 신화와 전설로 널리 알려져 있으며, 후대의 예술가와 시인, 작가들에 의해서 끊임없이 재창조, 재생산되고 있다.여담으로 신화상에서 보여준 용력과 능력이 대단하다보니 세상에서 가장 힘이 센 사람의 대명사격으로 사용하기도 한다.
Q.  회헌 안양의 일생과 업적은 어떠했나요??
안녕하세요. 강경원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고려 충렬왕 때 원나라에서 성리학을 도입하고 섬학전을 설치하여 이를 보급한 고려의 문신. 초명은 유, 자는 사온, 호는 회헌이고 원종 1년 문과에 급제해 교서랑을 거쳐 직한림원이 됐다. 문교부흥의 기운이 소생하기 시작한 충렬왕 때 원의 문화적 영향을 많이 받으면서 원나라를 왕래하며 학풍을 견학하고 이를 최초로 국내에 들여왔다. 이는 한국 유학의 새로운 경지를 개척해 고려의 불교세력과 대항하고 나아가 그것을 압도하면서 조선시대의 건국이념으로까지 성장했다. 안향은 고려 말 인물로 경상북도 영주 순흥(順興) 고을 출신이다. 그는 불교가 지배한 시대를 살았고, 무신 집권기와 수차례 몽고의 침략 등 시련을 겪으면서 올곧게 학문과 수양에 매진할 수 없었던 때에 고려의 관료로서는 최초로 성리학을 받아들였다. 개인적으로 연구했을 뿐 아니라 후진에게 전수할 목적으로 교육에도 부심했다. 그의 문하에서 소위 ‘육군자(六君子)’가 배출되었다. 그의 노력은 관학의 부흥을 가져와 많은 인재를 양성했고, 이들은 조선 개국의 동인으로 작용했다. 그는 주자의 저술을 집대성한 주자대전(朱子大全)을 손수 베껴와 철저하게 연구하고 주자의 초상화를 그려 이를 벽에 걸고 평생을 경배했다. 자신의 아호도 주자의 호인 회암(晦菴)에서 따 회헌(晦軒)이라고 했다. 철저한 ‘따라 배우기’였던 셈이다.
Q.  기자 조선이라는게 뭔가요? 고조선이랑 다른건가요?
안녕하세요. 강경원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기자가 고조선 지역에 책봉받아 세웠다고 전해지던 왕조. '후조선'(後朝鮮)이라고도 했다. 고조선이 사라진 이후, 삼국시대부터 19세기까지 기자조선은 사실로 믿어졌지만 현대에 발달한 연구 방법이 도입된 이래로 기자조선은 고고학적 발굴과 배치되어 국내 학계에서는 그 실체를 부정하고 있다. 그래서인지 현대 한국인들도 단군은 알지만 기자에 대해선 모르는 사람들이 꽤 많다.여기서 실존 불인정은 정확히 말하자면 '기자 동래설 or 기자 피봉설'을 말하는 것이다. 위만 이전에 있었던 고조선의 실체가 없었다는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기자조선이 아닌 토착계 국가가 있었기 때문이다. 같은 원리로 한국의 역사학계는 를 실증적으로는 부정하지만 역시 위만 이전에 있었던 토착 고조선의 존재 자체를 부정하지는 않는다.또 이와 관련하여 위만이 찬탈하기 이전 고조선의 부왕과 준왕의 조선을 단군조선 내지는 단군조선이 아니더라도 위만 이전에 존재했던 토착 고조선 왕계로 봐야 할 지, 기자조선의 후반부로 봐야 할 지에 대한 소소한 논란이 있는데 어차피 단군이든 기자든 실증적으로 논하긴 어려운지라 그리 큰 의미는 없다. 쉽게 말해 단군조선/기자조선을 구체적으로 따지기엔 둘 다 확증할 만한 고고학적 근거가 부족하니 그냥 고조선으로 퉁치는 셈이다
201202203204205
아하앤컴퍼니㈜
사업자 등록번호 : 144-81-25784사업자 정보확인대표자명 : 서한울
통신판매업신고 : 2019-서울강남-02231호개인정보보호책임 : 이희승
이메일 무단 수집 거부서비스 이용약관유료 서비스 이용약관채널톡 문의개인정보처리방침
© 2025 Aha.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