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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휘자겸 성악가 강경원입니다

지휘자겸 성악가 강경원입니다

강경원 전문가
부산진구남성합창단
Q.  아편전쟁이 무슨 사건인가요??
안녕하세요. 강경원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학계에서는 이를 제 1차 중·영전쟁으로 부른다. 전쟁의 빌미가 된 것은 아편문제였으므로 일반적으로는 아편전쟁이라고 부른다. 영국에 대한 중국의 최대수출품은 차였고, 영국의 주요수출품은 모직물과 인도 면화였다. 영국은 차 수입을 결제할 은이 부족해지자, 인도에서 재배한 아편을 지방무역상인을 통해 청에 밀수출하여 벌어들인 은으로 차를 수입했다. 이는 청의 농촌경제 파탄과 국가 기능의 마비, 은 유출로 인한 재정 궁핍을 초래했다. 이에 황제는 임칙서를 광둥에 파견했고, 그가 아편을 모두 몰수·파기하는 단호한 조치를 취하자 전쟁이 일어났다. 전쟁은 영국의 승리로 끝나며 중국은 최초의 불평등 조약인 난징 조약을 체결했고, 이는 중국에 대한 서구 열강의 제국주의적 침략의 발판이 되었다.
Q.  을지문덕의 살수대첩은 실제 있었던 일인가요?
안녕하세요. 강경원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아닙니다. 실제 있었던 우리나라 3대 대첩중 하나입니다.612년(영양왕 23년), 제2차 고구려-수 전쟁의 대표적인 전투. 살수에서 고구려의 을지문덕의 주도 아래 이루어낸 대첩이자 한국전쟁사 중 가장 인지도가 높은 승전 중 하나이다. 흔히 강감찬의 귀주 대첩, 이순신의 한산도 대첩과 함께 한국사 3대 대첩이라 불립니다.
Q.  고려시대 토지제도중 시정 전시과와 개정전시과, 경정전시과는 어떤 차이가 있나요?
안녕하세요. 강경원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개정전시과의 특징은 첫째, 전지의 지급기준에서 인품이 빠지고 관직의 높낮이가 기준이 되었다는 점이다.이때는 모두 18등급으로 나누어 등급별로 해당관직과 전지지급애액을 규정했다.무반직과 문반직을 차별했다. 일례로 무반 정3품 상장군은 5과의 대우를 받는 데 반해, 문반 정3품은 4과의 대우를 받았다. 산직(散職)인 경우는 격차가 더욱 심했다. 셋째, 시정전시과에서는 한외과(限外科)로 분류되었던 잡색원리·유외잡직이 16과와 18과 사이로 편입되었다. 넷째, 마군(馬軍)과 보군(步軍)이 수급대상에 포함되었다. 이는 고려의 병제가 정비된 결과를 반영한 것이다. 다섯째, 시정전시과에서는 모든 품등에 전지와 시지가 지급되었으나 개정전시과에서는 16이하에는 전지만을 지급했다.경정전시과의 특징은 다음과 같다. 첫째, 과별로 전지의 지급액을 축소했는데, 특히 시지가 현저히 감소했다. 둘째, 무반의 등급이 상승했는데, 등급별 지급액이 축소되어 실제 지급액에는 큰 차이가 없다. 셋째, 산직이 제외되었다. 넷째, 개정전시과에서 빠졌던 향직이 포함되었는데, 지급대상은 대상(大相:4품)·원윤(元尹:6품)뿐이고 나머지는 제외되어 있어 이 점이 의문으로 남아 있다.
Q.  흥선대원군이 서원을 정리한 이유는 무엇인가요?
안녕하세요. 강경원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조선 고종 때 서원이 당파싸움의 뿌리라는 이유로 흥선대원군이 내린 서원철폐령의 실체가 처음 확인됐다.고종실록에 따르면, 대원군은 서원철폐령(1868ㆍ1871년)을 내려 전국의 미사액ㆍ사액서원(약 1700여곳)을 47개소(사액서원)만 남기고 모두 철폐를 명했다.이번 사액(1711년, 숙종37) 관산서원 사당터 조사에서는 온전히 확인된 매납시설을 통해 서원을 철폐하고 신주를 묻은 역사적 사실이 처음으로 확인됐다.관산서원은 창녕에서 유일한 사액서원이자 영남5현(嶺南五賢, 김굉필ㆍ 정여창ㆍ이언적ㆍ이황ㆍ정구)의 한 분으로 숭앙(崇仰)된 영의정(추증) 문목공 (文穆公) 정구(鄭逑, 1543~1620년)를 기려 그가 사망하자 세운(1620년, 광해군12) 서원이다.
Q.  신미양요때 미국이 조약을 무시하고 무력개입을 한 이유는?
안녕하세요. 강경원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조선과 미국의 처음이자 마지막 전쟁. 제너럴 셔먼호 사건에 대한 항의와 조선의 강제 개항을 목적으로 1871년 미군이 강화도를 침공한 사건이다.미국은 일본을 강제 개항시킨 흑선 사건을 통해 포함외교(gunship diplomacy)를 한 뒤, 조선도 마찬가지로 수월하게 개항시킬 수 있다고 믿었다. 이런 판단에는 조선군의 전투력이 별볼일 없을 것이라는 판단도 한몫했는데, 맞는 사실이었으나 순순히 문을 연 일본과는 달리 격렬하게 저항했기 때문에 약탈군을 이끄는 로저스 제독도 당황했다.배 구경만 시켜주었을 뿐인데 알아서 오픈한 일본의 선례도 있으니 행동 개시 전에 한번 찔러볼 요량으로 신미양요 발발 직전인 1871년 2월 21일에 제너럴 셔먼호 사건의 공동 조사와 통상 요구를 제안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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