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 오스트리아-헝가리가 유럽의 화약고인 지중해 발칸반도 일부 지역 합병 하기전의 상황?
오스트리아- 헝가리 제국은 다수의 민족(독일인, 헝가리인, 체코인, 슬로바키아인, 크로아티아인 등)으로 구성된 다민족 국가였습니다. 제국 내에서는 오스트리아 헝가리 귀족이 권력을 잡고 있어 소수 민족들은 불만이 컸습니다. 19세기 중후반부터 유럽 각지에서 민족주의가 확산되면서, 오스트리아-헝가리 내부에서도 각 민족이 독립이나 자치 확대를 요구하며 시위, 폭동, 테러 등이 빈번하게 발생했습니다. 이런 상황은 제국을 정치적 불안을 심화시켰으며, 내부 결속력이 약해진 상태에서 발칸으로 팽창 정책은 더욱 민감한 문제였습니다.
Q. 정약용은 서양식 축성법을 어떤식으로 접할 수 있었나요?
정약용은 서양식 축성법을 서양인에게 직접 배운 것이 아니라 청나라에서 들어온 서양 과학기술 관련 서적을 통해 알게 된 것입니다. 명말, 청초에서 중국에 들어온 예수회 선교사들이 서양 과학 기술을 소개하고, , 등 한자로 정리되었습니다. 이 것이 조선까지 유입되어 정약용도 접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이를 바탕으로 정약용은 거중기 같은 신기술을 익혔으며, 수원성 축조에 반영한 것입니다.
Q. 삼강행실도는 무슨 내용이 있는 책인가요?
삼강행실도는 조선 세종 16년(1434)에 집현전 학자 설순 등이 세종의 명을 받아 편찬한 윤리서입니다. 이 책은 유교의 기본 덕목인 삼강(군신, 부자, 부부 관계의 도리)를 널리 알리고자 편찬하였습니다. 충신, 효자, 열녀 등 삼강에 해당하는 인물 110명씩 330명을 중국과 한국에서 선별하여 글과 그림으로 수록하여 실었습니다.이는 오랫동안 조선시대 백성들의 도덕, 윤리 교과서로서 활용되었습니다.
Q. 제갈량과 조조의 적벽대전은 전세계적인 역사상 가장 큰 전투겠찌요?
적벽대전은 조조의 대군과 손권, 유비 연합군이 맞붙은 대규모 수상전입니다. 전략적으로도 제갈량과 주유의 심리전, 화공 등 다양한 전술이 동원되었습니다.소설에는 조조군이 80만이라 하나 실제로는 20만 내외로 추정됩니다. 세계적으로 적벽대전과 비슷한 규모의 전투로는 고대 그리스의 마라톤, 살라미스 해전, 로마의 칸나에 전투, 근대 워털루 전투, 현대의 스탈린그라드 전투 등이 있습니다. 이들 전투는 병력 규모, 전략적 전환과 역사적 영향력이 큰 전투였습니다. 적벽대전은 동아시아 역사에서 상징적이고 전략적으로 중요한 전투이지만, 세계 전체를 놓고 보면 규모나 사상자 수, 전쟁의 전환점 측면에서 더 큰 전투들도 많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