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 로마군의 징병과 자원입대는 어떻게 이루어졌나요?
로마 제국의 군대는 시대에 따라 징병과 자원입대가 혼합된 형태로 운영되었습니다. 초기 공화정 시기에는 징병제로 운영되었습니다. 징병 대상은 토지 소유 남성 시민 17~46세로 각 부족별로 소집되었습니다. 대규모 전쟁이나 인력 부족시 평소보다 더 많은 인원을 강제 소집하거 면제자까지 징집하기도 했습니다. 자원 입대도 있었는데, 전리품, 명예, 사회적 상승, 시민권 획득 등을 이유로 많은 이들이 자발적으로 입대했습니다. 특히 마리우스는 토지 없는 빈민층이 군대에 자원할 수 있게 되면서 직업 군인화가 본격화되었습니다. 따라서 로마 군은 평상시에는 자원입대에 의존했으나, 인력 부족이나 대규 모 전쟁 시에는 징병을 병행했습니다. 황제시대(제정기)로 갈수록 자원입대 비중이 커졌고, 보조병과 속주민의 자발적 지원도 활발해졌습니다.
Q. 한반도에도 표범 등이 실제로 서식했었나요?
한반도에서 표범이 실제로 존재했습니다. 한국표범은 한반도 전역에 서식하였으며, 호랑이 보다 더 많은 개체가 살았습니다. 1919~1942년 13년간 포획된 표범이 624마리로 같은 기간 97마리 호랑이 포획보다 많았습니다. 1970년대까지 남한에서 표범이 포획된 기록이 남아있습니다.조선왕조실록 등 공식 기록에 표범 관련 내용이 다수 등장합니다. 예를 들어 성종 18년에는 표범이 포획되었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그리고 민화 등에 표범이 자주 등장하며, 표범 가죽은 관복, 의장, 궁중 장식으로 애용되었습니다.
Q. 역대 최악의 조선왕 베스트 3를 꼽아주시겠어요?
조선왕조에 최악의 국왕으로 손꼽히는 3명의 인물은 연산군, 선조, 고종이라 생각합니다. 연산군은 폭정과 사치, 무자비한 숙청 등으로 조선 최대의 폭군으로 평가받습니다. 신하와 백성, 심지어 가족까지 잔혹하게 탄압했던 인물입니다. 그리고 선조는 임진왜란 당시 무능한 대응으로 러더십이 부재하였으나 의주로 도주하였습니다. 또한 신하들간의 분열을 조장하고, 책임을 회피하는 등 국가 혼란을 심화시켰습니다. 또한 고종은 조선 말기 국권 상실의 책임이 큽니다. 민씨 외척의 부패와 주요 개혁 추진에 대한 우왕좌왕, 외교 위기의 우유부단한 태도를 보였습니다.
Q. 통일신라 신문왕릉이랑 조선후기 화선 융건릉 양식 차이 알려주실 수 있나요?
신문왕릉은 단순하고 소박하며 상징적 요소인 호석으로 12지신상 등이 중심을 이룹니다. 봉분은 크지만 석물은 장명등, 문인석 등 소수만 배치하였습니다. 그리고 전체적으로 소박하고 상징저그 자연과 조화를 중시하였습니다. 이와 비교하여 조선 후기 융건릉은 봉분 앞에서 상석, 석등, 문무인석, 석수 병풍석 등 다양한 석물을 정교하게 배치하였으며, 병풍석에는 모란, 연꽃 등 화려한 문양 새겼습니다. 진입로에 홍살문, 향로, 정자각 등 의례 공간과 부속시설 발닳하였으며, 풍수에 따라 연못 다리 등 주변 조경도 중요시하였습니다.
Q. 박태준의 수필, 수목 中 「인도인의 오막살이」에서 파이리아와 불가촉천민
박태준의 수필, 중 인도인의 오막살이에서 언급된 파이리아는 인도 최하급 천족으로 소개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파이리아는 명칭은 인도 카스트제도에서 불가촉 천민, 즉 최하의 계층 명칭으로 알려져 있지는 않습니다. 불가촉천민은 달리트, 하리잔 등으로 불리며, 사회적으로 극심한 차별을 받아왔습니다. 이들은 주로 오염된 일, 청소, 가죽무두질, 시체 처리 등 사회적으로 기피되는 직업을 맡아왔고, 다른 계급과 접촉 조차 금기시되었습니다. 따라서 박태준이 언급한 파이리아는 불가촉천민과 유사한 최하층 계급을 말하지만 인도에서 사용되는 표준 명칭은 아닌 것으로 판단됩니다.
Q. 우리나라 세계문화유산 중에 수원화성의 특징은 무엇인가요?
수원화성은 조선 정조가 아버지 사도세자의 묘를 이장하고, 정치, 군사적 목적으로 건설한 성곽입니다. 수원화성은 1997년 세계 문화 유산으로 등재되었습니다. 우선 수원화성은 동양과 서양의 군사 건추기술이 결합된 독특한 구조이며, 정약용은 서양의 축성 이론까지 참고하여 설계하였습니다. 특히 거중기, 녹로 등 혁신적인 기계와 신기술이 동원되어 짧은 기간 내에 효율적으로 축성했습니다. 그리고 수원화성은 군사 시설 외에도 정조의 개혁 정치와 정권 강화를 위한 배후 도시로 계획적으로 건설되었습니다. 따라서 정조는 수원 화성에 장용영의 외영을 주둔시키고, 상공업자를 살도록 하였습니다. 주요 특징은 둘레가 5.7km, 4개 성문, 48개 주요 시설물, 평지와 산지를 아우르는 평산성, 실학사상과 효 사상이 반영된 건축물입니다.
Q. 시에스타 문화는 왜 생겼고 어디서 많이 하나요?
시에스타는 스페인 등에서 점심 식사 후 낮잠이나 휴식을 취하는 문화입니다. 이는 스페인, 이탈리아, 그리스 등 지중해 연안의 국가들이 여름날에 너무 더워 야외 활동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점심 후 휴식을 취하는 습관으로 자리잡게 된 것입니다. 그리고 점심 식사 후 소화 과정에서 졸음이 오고, 에너지 보충을 위해 잠깐의 낮잠이 필요하다고 생물학적으로 필요하다고 인식된 것도 있습니다. 그런데 현대에는 대도시를 중심으로 시에스타 시간이 줄거나 사라지는 추세입니다. 그러나 아직도 소도시나 전통시장, 일부 직장에서는 여전히 오후 2시~4시경에 문을 닫고 휴식하는 문화가 남아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