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 요하네스 브라암스의 음악사적 위치를 알고싶습니다.
안녕하세요. 이기중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요하네스 브람스는 독일 함부르크 출신으로 빈(비엔나)에서 주로 활동했던 작곡가, 피아니스트, 지휘자이다. 19세기 후반기에 가장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 음악가 중 한 사람이며, 동시대 지휘자 한스 폰 뷜로는 그를 요한 제바스티안 바흐, 루트비히 판 베토벤과 더불어 "3B"로 칭하기도 했다.
Q. 오페라는 언제 만들어진 공연문화인가요?
안녕하세요. 이기중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오페라는 그리스 비극에서 기원된 것이다. 따라서 초창기에는 신과 영웅의 장엄한 이야기가 주제가 되고, 이런 탓에 진지한 편이다. 이를 정가극, 혹은 오페라 세리아라고 부른다.이후 진지함보다 재미를 추구하는 세속 취향의 오페라가 등장한다. 이를 희가극, 오페라 부파라고 한다. 이와 별개로 좀더 민중친화적인 음악극의 흐름도 있었는데, 독일 징슈필(Singspiel) 따위이다. 19세기 초 벨칸토 오페라가 그 영향. 그 뒤 베르디와 바그너가 오페라를 양분하고, 푸치니가 활약한다. 20세기 초는 오페라의 황금기라 할 수 있다.
Q. 서울에 옛지명이 한양으로 알고 있는데 언제부터 서울로 불리기 시작한 것인가요
안녕하세요. 이기중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서울이라는 말은 원래 수도(首都)라는 뜻을 가진 말이었지만, 현재는 대한민국의 수도를 가리키는 고유 명사가 되었다. 즉 서울특별시를 약칭할 때 서울이라고 함이 그것이다. 이 항목에서 다루는 내용은 고유 명사로서의 서울이 아니라 수도로서의 의미에 관해서이다.서울이라는 말의 유래는 신라의 수도인 경주를 서라벌(徐羅伐)·서벌(徐伐)·서나벌(徐那伐)·서야벌 등으로 불려진 데서 비롯되었다. 또한, 백제 말기의 수도인 부여(扶餘)를 ‘소부리(所夫里)’라고 불렀던 점에서 삼국시대 수도를 가리키는 것으로 보통 명사화되었음을 알 수 있다.서울의 서는 수리·솔·솟의 음과 통하는 말로서 높다·신령스럽다는 뜻을 가진 말에서 유래했고, 울은 벌·부리에서 변음된 것으로 벌판, 큰 마을, 큰 도시라는 뜻을 가진 말에서 유래했다. 서울이라는 말은 한자로 경(京)과 도(都)자로 표시되는데, 경은 크다는 뜻이며, 도는 거느린다·번성한다는 뜻을 가지고 있다.서울을 가리키는 한자로는 경성을 비롯해 황성(皇城)·제경(帝京)·경사(京師)·경조(京兆)·도읍(都邑)·왕경·경도·황도(皇都)·왕도(王都)·도성(都城)·수도·국도(國都)·수선지지(首善之地) 등이 있다.
Q. 조선통신사가 최초로 발견된 것은 어느시기입니까
안녕하세요. 이기중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조선 통신사(朝鮮通信使)란 조선 후기에 일본으로 보낸 외교 사절단을 말한다. 당시 어휘 '통신'은 '국왕의 뜻을 전함'이라는 의미였다.보통은 1607년 이후 조선이 에도 막부에 파견한 사절단만 가리키나 연구자에 따라서는 조선 전기에 일본측에 파견된 사절도 포함시키기도 하며, 실제로 실록을 찾아보면 태종 대부터 '통신사' 가 일본에 파견된 것을 확인할 수 있다.조선 입장에서는 먼저 가장 가까운 나라와 교린을 맺는 것이 국제 관계의 도리라는 점도 있었고,서로 교린 관계를 나누면서 혹시 모를 일본의 군사적 위협을 덜자는 점도 있었다. 비록 쇼군이 새로 즉위할 때 파견되는 경우가 많았지 외교 문제가 발생할 때 곧바로 보낸 것이 아니었지만, 그럼에도 통신사는 쇼군이나 일본의 대신들과 직접 협상하여 외교 안건을 해결할 수 있었다또한 일본의 지형과 풍속 등을 살펴 왜구가 조선을 약탈하거나 도요토미 히데요시 당시 일본이 조선을 침공했을 때 같은 비상사태를 대비한다는 목적도 있었고, 1회성 사건이기는 했지만 수행 무관들을 통해 일본을 통해 들어오는 서양의 신무기를 몰래 구하는 작전이 펼쳐지기도 했고, 고구마가 조선에 전래된 것도 1763년 당시 통신정사였던 조엄의 덕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