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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는 것을 공유하고 모르는 것을 함께 공부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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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준 전문가
맑은글터동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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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화이트칼라가 백인을 얘기하는 건가요?
안녕하세요. 이기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화이트칼라는 회사 내근직 직장인을 상징하는 것이고, 블루칼라는 현장 즉, 생산라인에서 일하는 직장인을 상징하는 말입니다. 과거 사무실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하얀색 와이셔츠에 넥타이, 양복을 갖춰 입었었고, 공장생산라인의 경우 푸른색 셔츠 작업복을 일반적으로 입었었습니다. 그래서 그 직업군을 상징하는 말이 색으로 대표되었던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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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피라미드를 외계인이 건설했다는 근거가 있나요
안녕하세요. 이기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근거는 없습니다. 피라미드를 어떻게 건축했는지도 예전에 가능했던 방법들을 유추할 뿐 확증된 것은 아닙니다. 어떤 이는 피라미드의 돌이 자연석을 깎아서 만든 것이라고 하고, 프랑스의 어떤 학자는 지금의 콘크리트처럼 틀에 석회와 조가비를 혼합해서 만들었다는 견해를 내기도 했습니다. 피라미드 건축에 들어간 대형 석재들이 어떻게 운반됐는지는 미스터리였습니다. 기자 피라미드 중 가장 규모가 거대한 쿠푸왕의 피라미드는 높이 147m에 밑변 길이 230m로, 여기엔 2t(톤)이 넘는 석회암과 화강암 등 석재 약 230만 개가 사용되었다고 합니다. 학계에선 나일강이 피라미드 물자 운반에 이용됐고 건설 현장까지 수로를 팠을 수도 있다는 가설이 제기돼 왔으나 그동안은 이를 입증하진 못했습니다.프랑스 ‘유럽 환경지구과학 연구교육센터(CEREGE)’의 환경지리학자 하데르 세이샤가 이끄는 연구팀은 이집트 북부 기자 피라미드 주변에서 시추한 퇴적층에서 발견된 꽃가루 화석을 통해 나일강 지류의 흔적을 확보한 결과를 전날 미국 ‘국립과학원 회보(PNAS)’에 발표했습니다.연구팀은 꽃가루 화석을 통해 기자 피라미드 인근을 흐르던 나일강 지류의 흔적을 확인하고 이를 통해 대형 석재들이 운반됐을 것이라는 가설을 세우고 조사했습니다. 이집트 제4왕조의 두 번째 파라오인 쿠푸왕의 이름을 따 ‘쿠푸 지류’로 명명된 하천이, 나일강 본류에서 약 7㎞ 떨어진 피라미드 건설 현장까지 물자를 운반하기에 충분한 수위를 유지했다는 점에 주목했습니다.여러 해에 걸쳐 5곳을 시추해 수천년에 걸친 퇴적층 시료를 확보하는데 이어 시료의 꽃가루 알갱이 화석을 분석해 양치식물과 종려나무 등 61종의 식물을 확인하였고, 이 식물들을 통해 약 8000년에 걸친 주변 환경 변화를 파악하였습니다. 부들이나 파피루스 등의 꽃가루는 물가 주변 환경을 나타내고, 가뭄에 강한 식물의 꽃가루는 하천과 멀리 떨어진 환경을 나타내는데 이를 통해 쿠푸 지류의 위치를 확인한 것입니다.연구팀은 쿠푸왕 피라미드와 카프레, 멘카우레 피라미드가 건설된 기원전 2686∼2160년 당시 해당 지류가 약 40%의 수위를 유지해 물자 수송에 충분하면서도 범람 위험이 없어 피라미드 건설에 적합했던 것으로 판단했습니다. 그러나 기원전 1350년 무렵부터는 수위가 수백년에 걸쳐 계속 낮아지면서 물자를 수송할 수 없게 돼 피라미드 건설도 끝나게 됐다고 판단했습니다. 알렉산더 대왕이 이집트를 정복한 기원전 332년 무렵에는 지류가 바짝 마르면서 피라미드 묘역으로 전환된 것으로 분석하였습니다.세이샤 연구원은 뉴욕타임즈에 기자의 자연환경이 피라미드 건설에 이용됐다는 점을 밝혀낸 것은 고대 건축물을 둘러싼 많은 의문 중 일부를 해결하는 데 도움이 됐다며 “환경에 관해 더 많이 아는 것이 피라미드 건설을 둘러싼 수수께끼를 풀 수 있다”고 말했다고 합니다.[출처 - 조선일보 기사 피라미드 건설 미스터리 풀릴까… 석재 옮긴 물줄기 흔적 찾았다 2022.8.31]하지만 그렇게 채석장에서 이동한 돌을 어떻게 그렇게 높이까지 쌓아올렸는지에 대해서는 경사로를 만들어 바닥에 나무굴레를 대고 동물 등을 이용하여 끌어올렸다고 하기도 하고, 피라미드 바닥에서 올라가며, 돌을 올릴 수 있는 나선형 이동로로 꼭대기까지 올렸다가 다시 내려오면서 그 이동로를 채웠다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아니면 피라미드 내 벽화에 돌을 옮기고 있는 일꾼들이 다른 이들보다 현저히 크게 표현된 것으로 보아 거인이 돌을 날랐다는 이야기, 알 수 없는 외계의 문명에 의해 만들어졌다는 이야기 등 다양합니다. 워낙 미스터리하다 보니 여러가지 설이 나오고 있습니다. 이번 참조한 기사에도 있듯 돌의 이동경로를 어느 정도 유추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점점 더 미스터리의 베일이 벗겨질 것으로 생각됩니다. 언젠가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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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최영장군의 부하였던 이성계가 어떻게 나라를 세울수 있었나요?
안녕하세요. 이기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고려 말 최영은 군 최고의 장수였고, 이성계는 북방 국경의 최고의 장수이자 호족이었습니다. 최고의 전공을 올리며 지역에서 추앙받던 이성계는 중앙권력에서는 홀대받았고, 그에 대해 그와 그의 수하들은 불만이 가득한 상황이었습니다. 그러던 당시 왕권도 약화되고 중앙군부세력에 좌지우지되는 나라를 뒤엎고 성리학이 기반되는 나라를 꿈꾸던 정도전과 그의 추종세력은 그들의 이상을 이루어 줄 도구로 힘이 있으나 변방으로 밀려나 있는 이성계를 포섭하였습니다. 이성계는 함께 하기는 하였으나 역모를 할 생각은 없고, 당시 고려의 상황을 바꿀 필요는 있다 생각하였다 합니다. 하지만 아마도 명분을 찾고 있었던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그러던 중 최영은 이성계와 정도전의 움직임이 심상치 않다 판단했고, 그것을 방지하고 속내를 떠보기 위해 명과의 전쟁을 추친하였고, 여러가지 이유로 이성계는 반대하였으나 결국에 참여하게 됩니다. 진군하던 중 위화도에 이르러 폭우로 강이 범람하고 전염병 등으로 진군이 어렵자 진군이 어렵다 최영에 장계를 올렸고, 받아들여지지 않자 결국에 위화도에서 회군을 하고 조민수와 결탁하여 먼저 최영을 치고 수도를 장악하여 왕을 폐위시키고 새롭게 공양왕을 옹립합니다. 그러던 중 결국 정도전, 조민수 등 함께 했던 세력들을 죽이고 공양왕도 폐위시키고 자신이 왕위에 오르며 국호를 조선이라 하였습니다. 결국 명분을 내세웠으나 군사쿠군사로 정권을 얻은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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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고려시대 절에는 어째서 노비들이 존재했나요?
안녕하세요. 이기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고려시대의 불교는 종교 이상의 가치와 권력을 가졌었습니다. 고려 태조가 건국할 때까지만 해도 지방 호족들을 중심으로 선종이 주를 이뤘는데, 중앙집권제가 구축되면서 문벌 귀족들에 의해 교종이 일어나기 시작하였고, 민중 사이에는 여전히 윤회설이나 업설을 기반으로 한 불교가 성행하면서, 도교와 풍수지리설 등이 결합되어 기복적인 기도 불교, 의례적인 불교의 성격이 강하게 나타내게 됩니다.혼란했던 12~13세기에는 이를 부처의 힘으로 극복해보기 위한 불교 행사가 성행했고 정치적 혼란의 시기를 틈타 타락한 승려들도 많이 나왔다고 합니다. 고려시대 불교 사원에 노비가 있었던 것은 왕실이나 귀족들로부터 시주를 받았던 것입니다. 대형 토지 등 농장을 운영하였고, 시주받은 노비에게 사역을 시키는 것이 당연시되었었습니다. 그러나 고려 불교는 이후 타락을 거듭하여 기복적인 궁중 불교라든지 고답적인 산중 불교같은 민중과 거리가 먼 종교가 되어버렸고 더욱이 몽골의 지배 아래 의례가 너무 남발되면서 불교는 고려가 멸망하는 데 한 원인으로까지 작용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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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우리나라는 1년을 24절기로 나누던데,,,왜 나누는 건가요??
안녕하세요. 이기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24절기의 이름은 중국 주(周)나라 때 화북 지방의 기상 상태에 맞춰 붙인 이름이므로 천문학적으로는 태양의 황경이 0°인 날을 춘분으로 하여 15° 이동했을 때를 청명 등으로 구분해 15° 간격으로 24절기를 나눈 것이라고 합니다. 따라서 90°인 날이 하지, 180°인 날이 추분, 270°인 날이 동지입니다. 한국, 일본, 중국 등 동아시아권에서 이 24절기를 사용한다고 합니다.각 절기마다의 간격이 15일입니다. 음력을 사용했다고는 하지만 24절기는 태양의 움직임에 따라 만들어졌습니다.중국의 화북지방과 위도가 같은 경우에는 경도의 차이에 의해 하루 정도의 시간 차이는 있지만 그 절기 날짜가 거의 같습니다.만들어질 당시는 농경사회였기 때문에 그 기준이 되는 지역과 남북으로의 위도의 차이가 있는 경우 적절히 감안하여 참고하여 농사에 적용하였습니다.지구는 극점과 적도를 기준으로 일정 간격으로 선을 그어 위도와 경도로서 위치를 파악합니다. 위도는 적도를 기준으로 얼마나 떨어져있는가를 측정하는 척도인데 계절과 관계가 있습니다. 경도는 극점을 이어 그리니치 천문대를 지나는 본초자오선을 기준으로 지구의 자전이 1시간에 15도 이동한다는 사실을 바탕으로 24개의 시간대를 설정하여 시간과 관계가 있습니다. 이것을 당시에 어떻게 알 수 있었을까 정말 대단한 것 같습니다. 대한민국에서 사용하는 음력은 계절에 따라 24절기를 운용하고 그것은 농사 및 어업활동에 기준으로 삼아왔습니다. 대한민국은 국토의 면적이 동서남북으로 크지 않기 때문에 시차는 없다고 볼 수 있고, 위도에 따른 계절의 차이는 국토가 남북으로 약간의 길이가 있어 몇 일의 차이가 있지만, 계절이 달라질만큼의 차이는 없습니다. (벚꽃의 개화시기가 다른 정도의 몇 일의 차이입니다.)해당 절기는 남반구 쪽으로 가면 달라집니다. 아시다시피 우리가 겨울일 때 호주의 경우는 여름이지요. 완전히 계절이 바뀌는 것입니다. 그것은 위도의 차이가 있기 때문에 해당 절기를 그대로 적용할 수는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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