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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균관대 영문학 및 신문방송학과 전공

성균관대 영문학 및 신문방송학과 전공

장경수 전문가
동화세상에듀코
Q.  일제 강점기 박은식 선생님께서는 독립을 위해 어떤활동들을 하셨을까요?
안녕하세요. 장경수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박은식은 일제강점기 『안중근전』, 『한국통사』, 『대동민족사』 등을 저술한 학자이자 언론인, 독립운동가이다. 1859년(철종 10)에 태어나 1925년에 사망했다. 젊어서 성리학 연구에 몰두해 성리학자로서 명성이 높았으나 독립협회의 영향을 받고 개화사상가로 변신했다. 국권회복의 실력을 양성하기 위해 개화사상과 신학문에 힘쓸 것을 주장했고, 황성신문 등 언론을 통해 애국계몽운동을 펼치는 데 주력했다. 한국인의 혼을 되살리기 위해 『한국통사』를 저술했고, 임시정부가 혼란에 빠지자 수습했으며, 대한민국임시정부 제2대 대통령으로 선출되었다.
Q.  낙랑군은 무엇을 말하는 것인가요?
낙랑군(樂浪郡, 기원전 108년~기원후 313년)은 전한 무제가 위만조선을 점령하고 세운 한사군 중 하나로, 현도군과 함께 최후까지 남은 변군(邊郡)이다. 대략 한반도 북부를 관할하였다. 한나라가 멸망한 후에도 중국의 변군으로 존속하였으며 고구려 미천왕에 의해 축출될 때까지 약 420년에 걸쳐 한반도 및 만주 일대의 민족들과 대립하고 교류하면서 많은 영향을 끼쳤다.
Q.  최무선이 처음 만든 신무기에 대해서 질문합니다.
안녕하세요. 장경수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왜구 격퇴의 신무기 화약 개발최무선의 화약 개발은 어릴 적 경험에서 시작되었다. 최무선의 아버지는 고려의 곡식을 운반하는 역할을 맡은 광흥창 관리였다. 그 당시 고려는 왜적들이 쌀을 약탈하는 일이 빈번하였고 아버지 곁에 있던 최무선은 왜구를 물리칠 방법을 생각했다. 우연히 화약의 위력을 알게 된 최무선은 화약 개발에 착수했다. 주요 성분인 염초(焰硝) 개발에서 난관을 겪었지만, 중국에서 온 상인 이원(李元)이 최무선의 열정에 감동하여 기술을 전수했다. 최무선은 화약 제조가 가능해지자 화약을 개발하는 기관을 만들 것을 고려에 요청하여 화통도감(火㷁都監)을 설치했다.왜선 500척 괴멸시킨 진포대첩 이끌어국력이 강했던 고려는 몽골에 항복한 뒤 군사력이 급격히 약해졌다. 그 결과 왜적의 침략이 전국으로 이어졌고 침략 규모도 훗날 수도까지 위태롭게 할 정도로 커졌다. 1380년 왜적은 500척의 군선을 이끌고 쌀을 약탈하기 위해 진포(鎭浦, 현재의 군산)를 거점으로 전라도로 침략했다. 당시 왜군들이 싸움에 능해 백병전으로 맞붙기에는 고려군은 모든 면에서 열세였다. 육지에서의 싸움이 불리할 것으로 판단, 고려 수군은 선상 전투를 결정했다. 병법에 능했던 최무선은 배 위에 화포를 설치하고 왜군을 기다렸다. 왜군은 500척이라는 대군단을 이끌고 덤볐지만, 최무선의 화포의 위력과 전략에 단 한 척도 남기지 못하고 괴멸되었다. 조선의 이순신 장군이 해전에서 가장 많이 침몰시킨 왜선 규모가 200척인 것을 생각하면 최무선의 승리가 얼마나 대단한 것인지 가늠할 수 있다. 이처럼 전 세계 수군 역사상 짧은 시간에 큰 성과를 냈던 고려 때의 진포대첩이 우리 역사 속에 숨 쉬고 있다.
Q.  조선시대 1차 왕자의 난은 무엇인가요?
안녕하세요. 장경수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일명 방원(芳遠)의 난 또는 무인정사(戊寅定社), 정도전(鄭道傳)의 난이라고도 한다. 왕위 계승을 둘러싼 왕자 간의 싸움인 동시에 정도전 일당과 방원 일당의 권력다툼이기도 하다.조선 건국 이후 국가의 통치질서를 확립하는 과정에서 개국공신들의 지위가 급격히 상승하였다. 1393년(태조 2) 의흥삼군부(義興三軍府)의 설립을 계기로 정도전을 주축으로 추진된 병권집중운동과 중앙집권화정책은 권력구조면에 큰 변화를 가져 왔다.개국공신 중 정도전의 지위가 크게 부상했지만, 여타의 훈신(勳臣)과 왕실세력 및 무장세력은 정치의 핵심에서 소외되기 시작하였다. 특히, 1398년 이후 이른바 진법훈련(陣法訓鍊)이 강화되자 왕자·종친, 기타 훈신 및 무장들이 가지고 있던 사병(私兵)에 대한 통수권이 해체될 단계에 이르러 양파의 대립은 극에 달하였다. 그 중에서도 방원과 정도전의 대립은 가장 첨예하였다.태조에게는 전 왕비 한씨(韓氏) 소생의 여섯 아들과 계비 강씨(康氏) 소생의 두 아들이 있었다. 방원은 한씨 소생의 다섯째 아들이었다. 그는 개국에 가장 공이 크고 야심과 재질이 큰 인물이었던 만큼 유신(儒臣) 중심의 집권체제를 강화하려는 정도전 등의 견제를 받지 않을 수 없었다.그리하여 방원은 개국공신에도 책봉되지 못했다(태조 7년 12월에 추록됨). 또한 세자 책봉 경쟁에서도 탈락했다. 태조 즉위 초의 세자 책봉에서 태조는 계비 강씨의 뜻에 따라 일곱째 아들 방번(芳蕃)을 세자로 삼으려 했다. 그러나 공신 배극렴(裵克廉)·조준(趙俊) 등은 그 위인(爲人)이 세자에 적당하지 않다며 방원의 세자 책립을 주장하였다.그러나 태조는 결국 여덟째 아들 방석(芳碩)을 세자로 책봉하고 정도전에게 세자 보도(輔導)의 책임을 지게 하였다. 이에 한씨 소생의 왕자들, 특히 방원과 그의 추종자들의 불만이 대단했다. 방원은 권력구조의 핵심에서 차츰 밀려나고, 진법훈련이 강화되어 세력 기반의 마지막 보루인 사병마저 혁파될 위기에 놓였다.이에 방원은 정도전·남은(南誾)·심효생(沈孝生) 등이 밀모해 태조의 병세가 위독하다며 왕자들을 궁중으로 불러들여 단번에 한씨 소생의 왕자들을 살육할 계획을 세우고 있다는 트집을 잡아, 이것을 미연에 방지한다는 명목으로 사병을 동원해 반대파를 제거하였다.그는 이숙번(李叔蕃) 등의 사병을 동원하여 정도전과 남은·심효생·박위(朴葳)·유만수(柳蔓殊)·장지화(張至和)·이근(李懃) 등을 갑자기 습격하여 살해했다. 그리고 세자 방석을 폐위하여 귀양 보내는 도중에 살해하고, 방석의 동복형(同腹兄) 방번도 함께 죽였다. 이렇게 방원의 정적은 거의 제거되었고, 정치 정세도 크게 바뀌었다.왕자 종친과 조준 등 일부 개국공신 및 방원의 심복인 하륜(河崙)·이거이(李居易)·이무(李茂) 등이 실권을 잡았다. 이들은 방원을 세자로 책봉하려 했으나, 방원 자신이 사양해 둘째 방과(芳果)가 세자로 책봉되었다. 그러나 정치적 실권은 방원 일당이 장악하였다.정종이 즉위하자 방원 일당은 정사공신(定社功臣)에 서훈되었다. 방원은 정치적 실권을 장악해 병권 집중과 중앙집권체제의 강화를 위한 제도개혁을 추진하면서 세력 기반을 강화하였다.방원은 정도전에게 병권이 집중되는 것을 막으려고 그를 제거했지만 권력의 구심점이 자기에게 쏠리자, 이제는 자신의 세력 강화를 위해 다른 사람들의 사병을 혁파할 필요가 생기게 된 것이다.제1차 왕자의 난은 국가의 통치질서를 확립하는 과정에서 방원이 권력획득을 위해 일으킨 정변이었다. 정도전의 중앙집권화 정책은 방원의 요구에 맞게 즉위를 거쳐, 조정, 수용되었다. 방원은 다시 제2차 왕자의 난을 성공으로 이끌었다. 이어 왕위에 올라 강력한 왕권을 행사하면서 통치질서를 확립하였다.[네이버 지식백과] 제1차 왕자의 난 [第一次王子─亂]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Q.  우리나라의 역사에서 처음 화폐라는 도구가 사용이 되었던 시기가 언제인가요?
안녕하세요. 장경수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고려 성종 15년(996년)에 건원중보라는 우리나라 최초의 철로 된 주화가 만들어졌다. 원래 건원중보는 중국의 당 숙종 2년(759년)부터 주조된 엽전인데 고려에서는 중국 건원중보와 구별하기 위해 동전 뒷면에 우리나라 화폐임을 표시하는 ‘동국(東國)’자를 넣었다. 이후 많은 화폐들이 만들어졌지만 실제로 유통이나 사용이 활발하지는 못하였다. 한편, 임진왜란을 기점으로 조선에서는 교환경제와 더불어 화폐경제의 발달이 진행되었다. 이러한 배경에서 숙종 4년(1678년)에는 우리나라 화폐 발전에 획기적인 계기가 되는 상평통보가 발행되었다. 상평통보는 우리나라 화폐 사상 전국적으로 유통된 최초의 화폐이며 고종 때까지 2세기에 걸쳐 주전소, 서예체, 천자문순, 수자순, 오행순 등으로 나누어져 약 3천여 종류가 발행됨으로써 우리나라에서 최장기간 통용된 화폐가 되었다.상평통보의 전국적인 유통은 상공업의 발달을 촉진시키고 전통적으로 취약한 농업생산에 의존하고 있던 국가재정의 어려움을 해소하는 데 기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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