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일드한참고래293
- 생활꿀팁생활소금으로만 양치를 해도 괜찮은건가요?A. 안녕하세요. 쫀쫀한사마귀265입니다.소금으로 양치질을 할 경우 소금의 거친 굵은 입자가 치아 표면을 미세하게 갈아 마모시켜 시리게 할 수 있습니다. 또 소금에는 살균, 항균 효과가 있어서 잇몸병 예방에 도움된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소금으로 양치질을 하는 경우 잇몸에 상처를 입힐 수 있습니다
- 생활꿀팁생활튀김용 식용유 재활용해서 다시 사용할 방법은 없나요?A. 안녕하세요. 쫀쫀한사마귀265입니다.1- 튀김용 기름을 맨 마지막으로 사용할때 대파나 양파를 조금 넣고 튀긴후2- 거름망으로 찌꺼기는 빼고 식용유 맑은것만 걸러내서 용기에 담는다.3- 냉장보관해서 계란후라이나 앞으로 튀김요리 할때 한번 정도 재사용 하면 됨.
- 생활꿀팁생활머리를 찬물로 감으면 상대적으로 머리카락이 덜 빠지나요?A. 안녕하세요. 쫀쫀한사마귀265입니다.탈모예방에 효과적이라 생각해 찬물로 머리를 감는 사람들이 많다. 찬물 세안이 피부의 모공을 수축시켜 주듯이 찬물로 샴푸를 하면 두피모공이 수축돼 탈모의 진행을 예방할 수 있다고 믿는 것이다. 하지만 이 같은 주장은 다소 무리가 있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 생활꿀팁생활냉동 대패삼겹살 누린내 제거하는 법 있을까요?A. 안녕하세요. 쫀쫀한사마귀265입니다.일단 배나 키위로 질긴거 좀 잡아주고 육두구라는거 있는데 이거로 고기잡내를 잡고 마늘 생강에 고추장 넣고 팍팍 무쳐서 냉장고에 넣었다가기름 두르고 파 양파 넣고 팍 볶으세요.
- 생활꿀팁생활굴은 왜 겨울에만 나오고, 겨울에만 먹나요?A. 안녕하세요. 쫀쫀한사마귀265입니다.냉면을 여름에도 먹기 시작한 것은 근대화 시대인 일제강점기부터다. 그 이전에는 겨울에만 먹을 수 있는 계절 음식이었다. 여러 문헌에서 냉면을 겨울에 먹었던 이유를 온돌에서 찾고 있다. 온도 조절이 어려운 온돌 때문에 뜨거워진 방에서 열을 식히기 위해 별미로 먹은 것이 냉면이라는 것.
- 생활꿀팁생활냉면을 원래 겨울에 먹는 다고도 하는데, 냉면은 어느 계절에 먹는 음식인가요?A. 안녕하세요. 쫀쫀한사마귀265입니다.냉면을 여름에도 먹기 시작한 것은 근대화 시대인 일제강점기부터다. 그 이전에는 겨울에만 먹을 수 있는 계절 음식이었다. 여러 문헌에서 냉면을 겨울에 먹었던 이유를 온돌에서 찾고 있다. 온도 조절이 어려운 온돌 때문에 뜨거워진 방에서 열을 식히기 위해 별미로 먹은 것이 냉면이라는 것.
- 생활꿀팁생활환승조건이 어떻게 되나요 대중교통 이용시 ?A. 안녕하세요. 쫀쫀한사마귀265입니다.환승은 하차 태그를 기점으로 시간, 횟수 등을 헤아리기 때문에 태그않으면 다음 승차 시 환승 혜택이 적용되지 않는다. 환승 횟수에도 제한이 있다. 버스와 지하철을 포함해서 최대 4회까지 환승 가능하다(세부적인 조건은 지역적에 따라 차이가 있으며, 이는 수도권 기준이다.).
- 생활꿀팁생활전자레인지와 에어프라이어의 다른점은 ?A. 안녕하세요. 쫀쫀한사마귀265입니다.전자레인지(電子range)는 고주파로 가열하는 조리 기구이다. 고주파 전장(電場) 중의 분자가 심하게 진동하여 발열하는 것을 이용한 것으로 빠른 시간에 고르게 가열할 수 있다. ... 최근에는 '전자 오븐', '광파 오븐' 등의 명칭으로 나오는 제품도 있다.에어 프라이어(air fryer)는 대류 구조를 사용하여 음식 주위로 뜨거운 공기를 순환시켜 조리하는 가전제품이다. ... 에어 프라이어는 열을 적용시키고 반응을 내기 위해 최대 200°C (392°F)로 가열된 공기를 순환시키면서 원하는 음식을 얇은 층의 기름으로 코팅함으로써 동작한다.
- 생활꿀팁생활비를 맞으면 탈모가 오나요??A. 안녕하세요. 쫀쫀한사마귀265입니다.비를 맞는다고 당장 탈모가 되는건 아니지만 비에는 미세먼지등과 같은 화학물질도 많습니다. 두피에 미세먼지가 쌓이게 되고 피부질환까지도 유발하는 빗물을 제대로 세정해주지 않는다면 탈모는 물론 두피에서 피부질환까지도 유발할 수 있겠지요. 그러나 개인적인 의견으로는 탈모에는 유전적인 요소가 더 중요하게 작용한다고 봅니다. 도움이 되시길 바랍니다.
- 생활꿀팁생활우크라이나와 한국은 밀접한 관계인가요?A. 안녕하세요. 쫀쫀한사마귀265입니다.과거 러시아의 시베리아 개척 당시에는 카자크들이 주로 활약하였다. 루스 차르국이 시베리아를 개척하고 청나라 국경을 탐사할 당시 탐사대의 주력은 카자크로 나선정벌 당시 조선군과 교전한 러시아군 역시 카자크였다. 카자크 외에도 러시아 제국이 시베리아를 건너 외만주도 개척할 무렵, 우크라이나 민족주의 활동을 하다가 정치적 이유로 유배, 정치적 수용소 등으로 강제이주되거나 경제적 이유로 땅을 개척하러 온 우크라이나인, 폴란드인 등등도 적지는 않았다. 오늘날에도 연해주의 러시아인들 중에는 우크라이나계 성씨를 사용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은 편이기도 하다. 훗날 외만주에 정착한 우크라이나인들은 러시아 혁명 이후 연해주 땅에 젤레나 우크라이나를 세워 러시아 내전 때 소련 볼셰비키 정권에 저항한 적도 있었지만 적군에 패배하여 훗날 소련령 만주 또는 러시아 만주가 되었다. 이러한 연유로 근대 연해주에도 상당한 수의 우크라이나인들이 정착하여 한국인들과 교류하기도 하였다. 1920~22년에는 연해주에 젤레나 우크라이나가 들어서 현지 고려인들에게도 영향을 주기도 했다. 이 외에도 안중근 의사가 이토 히로부미를 사살한 만주의 하르빈 역시 고골 거리라는 이름의 우크라이나인 밀집 거주 지역이 있었을 정도로 우크라이나인 인구가 적지 않았다. 1931년 기준 하르빈에 거주했던 우크라이나계 인구는 2~3만여 명 정도로 추산되고 있다. 한 때 번성했던 하르빈의 동유럽인 커뮤니티는 일본 제국이 하르빈에 731 부대를 건설하고 임산부 포함 민간인들을 대상으로 생체실험을 진행하면서 큰 위협을 받고[ 대다수는 일제의 만행을 피해 상하이를 거쳐 미국, 호주 등으로 탈주하였다. 20세기 초반 하르빈에 건설된 시나고그는 오늘날 하르빈 조선족들의 학교로 개조되었다. 1922년에는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원산으로 백군 난민 9,000여 명이 피난하였는데# 이들 중 적지 않은 수가 우크라이나계일 것이라는 추정이 가능하다. 물론 일제강점기 당시 한국에 정착한 러시아/우크라이나 출신 난민들은 링크된 논문에 의하면 6.25 당시 소련군에 의해 소련으로 납치되었고, 오늘날 한국에 거주하는 우크라이나인들은 소련 해체 이후 한국에 새로 이주해온 사람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