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잃어버린 20년은 왜 발생한건가요?

2022. 03. 16. 13:03

2000년대 버블닷컴 이후 폭락한 주가로부터 전혀 회복하지 못하고있고

부동산가격 물가등등도 멈춰버린듯한 경제상황이

일본본토에 있엇던걸로 아는데

혹시 왜 발생한건지 알수있을까요??


총 4개의 답변이 있어요.

산림일자리발전소

안녕하세요. 장상돈 경제·금융/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일본의 경제는 메이지유신부터 살펴보아야할 것 같네요.

1854년 미국과 화친조약, 1958년 영국, 러시아, 네덜란드, 프랑스와 얀세이 5개국 조약이라 불리는 통상조약을 맺습니다.

이 조약을 맺으면서, 일본의 정치계는 260년 동안의 막부 정치가 막을 내리고, 1867년 왕정복고가 일어납니다.

이 때의 일황은 메이지 천황이며,

서구 열강의 막강한 군사력을 보고,

일본도 중앙집권화를 위해 1885년 내각제 도입, 1889년 일본제국헌법 공포를 통해 입헌군주제, 의회민주주의를 완성하고,

메이지유신 개혁을 끝냅니다.

서양의 제도를 연구하고 적극적으로 도입하였고, 산업을 육성합니다.

1882년에 설립된 일본은행은 자본주의 금융제도를 확립하게 되죠.

우편제도, 전신망, 철도, 선박 등 근대국가로 변신합니다.

기술, 교육, 군사 모두 서양의 제도를 받아들이죠.

일본은 아시아에서는 물론, 세계적으로도 가장 빠르게 강대국으로 변신합니다.

여기에는 미국과 영국 등 아시아로 진출하려는 서구 열강들의 적극적인 지원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일본 열도가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산업화, 군사화가 진행되어 결국은 청일전쟁으로 타이완, 러일전쟁으로 사할린, 그리고 한일합방을 통해 제국화합니다.

다시 제2차세계대전까지 일으키며 베트남, 싱가폴, 필리핀, 인도네시아, 오세아니아까지 광대한 아시아 전역에 식민지를 확대하고 산업화를 가속화하게 됩니다.

그러나 미국을 적국으로 만든 후, 패전하게 되고, 미국은 일본을 정치, 군사, 경제 사회전반에서 지배 당하게 됩니다.

한국전쟁은 러시아의 남하를 막기위해 일본을 전략적 군수시설로 삼았던 미국의 지원으로 일본이 다시 세계적 강대국을 유지하게 만들었습니다.

왜 이런 과거를 언급했느냐 하면,

미국이 일본에게 요구한 플라자합의때문입니다.

뉴욕 맨해튼, 센트럴파크 남단 5번가에 1907년 지어진 플라자 호텔이 있습니다.

1985년 9월 22일, 미국 영국 프랑스 서독 일본 재무장관들이 미국의 요구에 의해 이곳에 모였었죠.

플라자합의는 엔화와 마르크화의 가치를 인위적으로 올리라는 미국의 요구였습니다.

미국은 두 나라가 반대하자 보복관세를 경고하며 무조건 합의하고, 100% 환율을 올리도록 했습니다.

그때 미국이 이렇게 다급했던 이유는,

1944년 브레턴우즈 체제를 통해 선진국들이 금본위제를 부활시켰는데, 그 이유는 달러기축통화를 위한 것이었습니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기 직전 세계 44개국이 미국 뉴햄프셔 브레턴우즈에 모여 달러를 금과 연동하는 금본위제를 공식화했죠.

유럽은 전쟁으로 초토화되어 미국에게 손을 벌릴 수 밖에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전쟁터가 아니었던 미국은 1, 2차 세계대전을 거치고 나서 전세계 유례가 없는 초강대국이 되었으며,

전세계에 무기를 만들어 파는 군산복합체 미연방이 되어 있었습니다.
그러나 금본위제는 1971년 8월 15일 역시 미국에 의해 폐지되었습니다.

베트남 전쟁을 15년이나 끌면서, 금 보유량과 상관없이 막대한 달러를 무한 찍어냈고,

달러 가치 하락을 우려한 유럽의 미 국채 보유국을 중심으로 달러를 금으로 교환해달라는 요구가 빗발쳤습니다.

그러자 리처드 닉슨은 달러와 금의 교환을 중단하겠다고 선언해 버린 것입니다.

최근에는 트럼프 전대통령이 미국이 만든 자유무역기구에서 탈퇴해 버린 것과 마찬가지이죠.

그러나 금본위제 폐지나 자유무역기구 탈퇴나 모두 미국 경제에는 더 극심한 문제를 야기했습니다.
금본위제가 폐지되자, 금값은 오히려 폭등한 반면,

미국의 물가상승률은 폭발적으로 오르기 시작했죠.

달러가 아닌 금이 인플레이션 헤지 수단으로 세계 각국으로부터 각광을 받게 된 것입니다.

여기에 나사가 우주경쟁에 쏟아부은 돈과 만성적인 무역적자는 패전에 이어 미국이 세계 최대의 채무국으로 전락하게 만듭니다.

무역적자의 가장 큰 원인이 일본이었고,

메이지유신 이후 끝없이 지원되었던 미국의 기술은 엔고 강제한 플라자합의와 함께 멈추게 됩니다.

그리고 달러화의 기축통화로서의 가치를 지켜야 한다는 명분으로 마르크화까지 포함시킨 것입니다.

플라자합의 이후 독일과 일본은 전혀 다른 행보를 보였습니다.

1989년 미쓰비시는 미국의 록펠러 센터를 인수했고, 87년 야스다화재해상보험은 3990만 달러에 빈센트 반 고흐의 해바라기 작품을 사들였습니다.

반값에 일본인들은 세계 각지로 여행을 떠났고, 일본인들의 자존심은 하늘을 찔렀죠.

일본중앙은행이 플라자합의에 의한 엔고강제로 경기둔화를 우려해 정책금리를 2.5%로 내리자 부동산과 증시가 폭등했습니다.

니케이지수는 3년 동안 3배, 부동산은 한해 70%씩 뛰었죠.

이것이 바로 재태크의 원조입니다.

"도쿄 땅을 팔면, 미국 전체 땅을 살 수 있다" 그 땐 그랬습니다.

그러나 독일은 전혀 달랐습니다.

전세계에 흩어진 기술인력과 기업들을 독일로 불러들였고, 기술개발과 산업확장에 마르크를 쏟아부었습니다.

일본은 메이지유신 이후, 서구 열강과 미국에서 제공한 공짜 기술력의 가치를 전혀 생각하지 못한 것입니다.

그래서 모든 일본의 자본은 부동산에 쏟아부었고, 1990년 부동산버블이 발생합니다.

일본중앙은행은 정책금리를 3.5%포인트나 올렸고, 부동산값이 폭락하고, 금융시장은 얼어붙어버렸습니다.

부동산의 담보가치가 사라졌고, 은행 대출은 부실 채권일 뿐이었습니다.

금융 회사는 도미노처럼 도산하기 시작했고, 자금난으로 세계적 기업들이 하나 둘씩 파산하기 시작했습니다.

질문자님의 잃어버린 20년은 사실 1990년에 시작되었으니, 이제는 잃어버린 33년이군요.

놀랍게도 아직도 미국은 플라자합의 상태인 엔고강제를 풀지 않고 있는데, 미국 역시 여전히 세계 최대 채무국으로 있기때문에, 일본을 걱정해 줄 상황이 돌아오지 않은 것 같습니다.

아직도 일본은 1990년대에 전세계의 땅과 건물을 사들이 덕분에 국외에서 들어오는 엄청난 부동산 수입을 누리고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그러나 앞에서도 말씀드린 것처럼,

공짜로 얻은 기술이었기에, 기술을 지켜내고 발전시키는 일에 투자하지 않았기때문에,

더이상 수출할 제품도 없고, 다른 나라의 새로운 기기문명을 받아들일 수도 없는 상태입니다.

내수가 충분하기때문에, 아직도 일본의 전기는 100볼트를 사용하는데, 헤르쯔가 다르기때문에 전기 기기는 교차사용이 불가능합니다.

메이지유신 이후 발전소를 지으면서 도쿄쪽은 독일 장비로 50헤르쯔를, 오사카지역은 미국 장비로 60헤르쯔 주파수를 맞추었는데,

아직도 통일하지 않고 그대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일본에는 전자제품이나 전기제품이 세계적 규격의 변화를 전혀 따르지 않고 있기때문에, 수출도 수입도 할 수 없는 상태입니다.

일본의 잃어버린 20년동안 성장한 기업은 유니클로와 같은 저가 의류상품, 중고매장들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일본인들은 부자라고 하는 가정도,

가족수만큼의 자전거를 보유하고 있고,

자동차는 일주일에 한 번 정도 사용한다는 일본 친척의 말을 듣고 있습니다.

결론적으로 일본의 잃어버린 20년의 원인은 미국의 플라자합의 이후, 기술투자를 하지 않았기때문이다.

또는 일본 정부가 부동산 재테크를 부추겼고, 금융은 1990년 부동산 버블을 예상하고도 방치했기 때문이다.

이렇게 말씀드려 봅니다.

2022. 03. 17. 21: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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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본은 1991년 이래 장기불황이 계속되면서 10여 년 경제의 구조적 문제에 시달렸는데 이 위기는 이전의 불황과는 그 성격이 질적으로 달랐습니다.일본인은 일에 대해 목숨을 거는 사람들이니, 그만큼 기민했던 것이고. 이 길고 심각한 경제 위기는 '잃어버린 10년'으로 불렀는데, 이제는 20년이 지났으니 '잃어버린 20년'이라 불러집니다.
    불황은 거품 경제가 무너지고 금융권의 부실 채권이 대량 발생하면서 시작되었고. 대출 등에 의해 사들인 주식과 부동산 가격이 거품 경제의 붕괴로 한없이 하락했다. 은행에서 빌린 원금과 이자는 그대로 떠안게 되었다. 따라서 기업 등은 그 돈을 갚을 능력을 상실한 것이다. 은행이 돈을 빌려 주고도 회수할 수 없게 되어 버린 것, 이것이 부실 채권이다. 부실 채권은 금융 시장에 극심한 혼란을 가져 오고 일본 경제에 중대한 영향을 미쳐, 일본 경제가 장기간에 걸쳐 침체 상태에 빠지게 된 것이다.
    이것은 겉으로 보이는 불황의 모습일 뿐이다. 이토록 오랫동안 불황을 극복하지 못하고 지속하게 만들었던 근본적인 문제가 따로 있는 것이다. 단순히 부실 채권만의 문제가 아니다. 사실상 일본은 1990년대에 들어 급격한 정보 기술의 발달이 가져온 새로운 시대에 제대로 적응하지 못한 원인도 있습니다.

    2022. 03. 16. 15: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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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숙련**** 전문가 인증 뱃지

      안녕하세요. 이정훈 심리상담사/경제·금융/육아·아동전문가입니다.

      플라자합의가 촉발된 환율전쟁의 결과 두 배 이상 절상된 엔화가 결정적으로 무너진 계기는 중국 위안화의 공격이었습니다. 중국이 4차례에 걸쳐 300%라는 위안화 대폭 평가절하 공격을 가하자 엔화는 재기불능의 상태로 휘청거렸습니다. 미국과 중국 양쪽으로부터 협공당한 일본은 제조업 공동화가 발생하고 수출경쟁력을 잃어버렸습니다. 이로써 일본의 잃어버린 20년이 시작되었습니다.

      2022. 07. 18. 18: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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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플라자합의전에는 일본의 경제는 엄청나게 호화스러웠죠

        하지만

        미국이 플라자합의로 엔화가 갑작스럽게 상승하게되었는데요

        그래서 엔화가 오르는바람에 수출도 잘 안되고 부동산도 폭락하게되어서

        잃어버린 20년이 발생하게 된 계기가 되었습니다.

        2022. 03. 16. 14: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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