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이 건국된 후 이성계는 개성의 왕씨 왕족 일부를 정치적 위협으로 간주되어 숙청 대상이 되었습니다. 특히 태조 3년 순흥군 왕승과 정양군 왕우 일가 일부가 몰살되거나 처벌받는 사건도 있었습니다. 태종 이방원은 더욱 왕씨의 숙청 강도를 높혔습니다. 왕씨 가족을 전국 각지로 유배보내거나 섬으로 보내 죽이도록 명령하는 등 강경책을 사용했습니다. 결국 많은 왕씨들은 처형당하는 등 대규모 피해가 발생했습니다.
일부 상당수 고려 왕족과 귀족들은 조선의 신권 체제에 적응하며 투항했으며, 후손들은 성씨를 바꾸어 서서히 스며들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