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이충흔 전문가입니다.
서양의 옛날이야기나 해적 영화에서 술을 큰 나무통에 보관하는 모습이 자주 나오는 이유는 역사적인 배경과 오크나무 특유의 과학적인 성질이 맞물려 있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말하는 오크나무는 우리나라의 참나무를 뜻하는데, 옛날 사람들은 원래 술을 진흙으로 구운 항아리에 담아 운반했습니다. 하지만 항아리는 무겁고 쉽게 깨져서 거친 바다를 누비는 배나 군대에서 쓰기에 무척 불편했습니다. 그러다 단단한 나무판자를 둥글게 묶어 만든 나무통을 사용하기 시작하면서 물류의 혁명이 일어났습니다. 깨지지 않고 굴려서 쉽게 옮길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수많은 나무 중에서 참나무가 선택된 이유는 조직이 아주 치밀해서 액체가 밖으로 새지 않는 독특한 세포 구조를 가졌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열을 가하면 둥글게 잘 구부러져 통을 만들기 편했고, 나무 자체에 천연 방부 성분이 많아 습한 환경에서도 쉽게 썩지 않았습니다.
재미있는 점은 처음에는 단순히 깨지지 않는 튼튼한 포장 상자로 썼을 뿐인데, 시간이 지나면서 술맛이 놀랍도록 좋아진다는 사실을 발견한 것입니다. 참나무 통 내부를 불로 그을리는 과정에서 생긴 숯 성분이 술의 잡내를 잡아주었고, 나무에서 배어 나온 성분들이 투명하던 술을 아름다운 호박색으로 바꾸며 달콤한 바닐라 향을 더해주었습니다. 또한 나무 틈새로 미세한 산소가 드나들며 술을 부드럽게 익혀주었습니다. 결국 튼튼한 보관통으로 시작된 우연이 오늘날 고급 술을 만드는 숙성 기술로 이어지게 된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