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후기 실학이 실제 정치와 개혁에 반영되지 못한 것은 우선 실학자들의 대부분이 중앙 정계에 영향력이 미약했기 때문입니다. 특히 중농주의 실학자의 경우에는 남인 출신이 많았으며, 이들은 붕당 정치에서 배제되어 일찌기 정계에서 물러나 향촌에 머물거나 영향력이 약했습니다. 또한 이들의 주장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것이 토지 개혁인데, 이는 양반 지배층의 특권을 위협했습니다. 따라서 성리학적 지배 질서를 중시하던 지배층과 관료들의 저항에 부딪혔습니다. 또한 정조 사후 세도 저치가 시작되면서 개혁을 추진할 왕권마저 약해졌습니다. 결국 실학은 현실 문제를 정확히 지적했지만 이를 실행할 만큼 정치적 역량에 부족했던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