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 갈처사 라는 사람을 전설적 지관이라 부르는 이유?
처사 라는 말은
생활이 곧은 선비 들에나 붙여주는 칭호에 가까운 걸로 압니다만
갈처사 라고
조선시대에 대단한 전설적 지관이 있었다고 하는데요
조선 19대 왕 숙종 때
숙종이 민심을 살피러 변복을 하고 시찰하는 와중에
개울가에서 한 총각 농민이 어머니의 관을 두고 슬피우는걸 발견합니다.
사연은 총각이 어머니 묫자리를 못찾아서 우는건데
이때 갈처사라는 사람이 묫자리를 잡아준 부분이 있는데요
근데 그런부분들이
갈처사가 조선시대의 전설적인 지관이라 불릴 이유가 되나요?
안녕하세요. 이동광 전문가입니다.
조선시대에 ‘갈처사’라는 인물을 전설적인 지관으로 부르는 이유는 그가 뛰어난 풍수지리 감정 능력과 예지력으로 여러 기록과 구전에서 특별히 유명해졌기 때문입니다.
‘갈처사’라는 이름은 본명이라기보다는 그의 직책이나 별칭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이며, 조선 후기부터 민간에서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속에서 특히 두드러집니다.
그는 마을이나 왕실의 터를 점쳐 길흉화복을 판단하고, 무덤자리나 건축 부지를 탁월하게 선정하는 능력을 지닌 인물로 알려져 있습니다. 이와 같은 풍수지리적 감정 능력은 당시 사회에서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하였는데, 특히 왕실이나 양반 가문에서는 명당을 찾아 조상의 묘를 쓰는 일이 큰 관심사였기 때문입니다.
갈처사는 단순한 지관 이상의 예지력과 신통력을 가진 인물로 묘사되며, 그의 조언과 판단이 실제로 큰 길흉을 예견하거나 상황을 변화시키는 사례가 많았다는 전설이 전해집니다.
이 때문에 후대 사람들은 그를 단순한 풍수지리가 아니라 신비로운 능력을 가진 ‘전설적 지관’으로 기억하고 존경하게 된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