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이수민 전문가입니다.
정확히 보셨어요. 종이는 매끈해 보여도 현미경으로 보면 섬유가 얽힌 울퉁불퉁한 골짜기 지형이에요. 연필로 쓴다는 건 흑연 덩어리가 이 거친 표면에 긁히면서 얇은 조각으로 벗겨져 섬유 틈에 박히는 일이에요. 흑연은 층층이 쌓인 구조라 층 사이가 잘 미끄러져 떨어지는데, 이 성질 덕분에 힘을 안 줘도 종이에 조각이 묻어나요.
처음 한 번 칠하면 흑연 조각은 주로 종이 표면의 튀어나온 봉우리에만 묻어요. 골짜기 바닥까지는 심이 닿지 않아서 종이의 흰 부분이 틈틈이 드러나 있죠. 우리 눈은 흑연의 검정과 종이의 흰색이 섞인 평균을 보니까 연한 회색으로 느끼는 거예요. 덧칠을 반복하면 조각들이 봉우리 사이 골짜기까지 차곡차곡 채워지면서 흰 틈이 사라지고, 빛을 반사하던 종이 면적이 줄어드니 점점 진한 검정으로 보이는 거고요.
다만 무한정 진해지지는 않아요. 틈이 다 차고 나면 흑연이 흑연 위에 쌓이는 단계가 되는데, 이때부터는 색이 진해지기보다 표면이 반들반들해지면서 금속처럼 번들거려요. 흑연 층이 빛을 거울처럼 반사하기 시작해서예요. 4B, 6B 같은 무른 연필이 진하게 써지는 것도 같은 원리로, 심이 물러서 한 번에 벗겨지는 흑연 양이 많아 틈이 빨리 채워지는 거예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