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반적으로 역사란 승자의 기록이라 합니다.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역사 왜곡도 발생할 수 있습니다. 대표적인 것으로 <고려사>에서 궁예에 대한 기록입니다. 궁예는 승려 출신임으도 불구하고 후고구려를 건국한 유능한 지도자였는데 불구하고, <고려사>에서는 헌안왕의 아들이자 불효하고 불충한 자로 묘사되었습니다. 이는 왕건이 궁예를 배신하고 왕위를 찬탈한 것을 정당화하려는 의도가 반영된 것입니다. '위화되 회군'은 이성계가 쿠데타를 일으킨 사건이지만 조선 건국 이후 정의롭게 미화되었습니다. 백제의 멸망과 관련하여 의자왕의 사치스러움을 부각하기 위한 '삼천궁녀'도 사실이 아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