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민왕의 개혁 정책으로 성장한 신진사대부는 권문세족에 비해 세력이 약하고, 공민왕의 피살로 개혁을 완수할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신흥무인인 이성계와 결탁하면서 고려 사회 모순을 개혁할 수 있는 기반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신진사대부들은 개혁의 방법을 놓고 고려 체제를 유지한 상태에서 개혁을 주장하는 온건파와 역성혁명을 주장하는 혁명파로 분열됩니다.
이때 정몽주는 고려 왕조의 수호자를 자처하면서 정도전, 이방원 등의 세력과 대립하였고, 급기야 1392년 이방원에 의해 피살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