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조 사후 세도 정치는 붕당 간의 정책, 학맥 중심이 아니라 외척 가문의 권력 독점과 관련됩니다. 세도 정치의 시작은 정조의 갑작스러운 죽음, 어린 순조의 즉하면서 비롯되었습니다. 탕평정치가 제도로 정착하지 못한 점, 비변사가 인사권을 장악한 점 때문에 외척이 권력 공백을 차지했습니다.
당시 안동 김씨·풍양 조씨 등이 비변사와 군영 등 요직을 독점해 인사권·재정권을 장악했고, 왕권은 형식화되었습니다. 지방에 대한 중앙 통제력이 약화되면서 지방의 탐관오리들의 매관매직과 뇌물 정치가 성행하고, 공론과 정책 토론이 사라졌으며, 삼정 문란과 수탈로 민생이 피폐해져 민란이 잇달았습니다. 조선은 개혁의 역량과 통치 기능이 상실되고 쇠퇴의 길로 들어서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