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르헨티나의 영웅 에비타가 미이라가 된 이유가 무엇인가요?
영부인이었던 에비타는 성녀라고도 불리고 영웅이라고도 불렸는데요.
에비타가 죽고나서 미이라가 되었다는데 무슨 이유 때문인가요?
안녕하세요. 최은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에바 페론의 유해는 그녀의 죽음을 슬퍼한 남편 후안 페론과 당시 그녀를 절대적으로 지지했던 지지 세력들에 의해 정치적 목적도 더해져 방부처리 되었습니다.
안녕하세요. 임지애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죽음 이후에도 미라로 영구보존이 되어 남편의 정치에 이용 당했다고 합니다.
충격적이게도 페론은 에비타의 시신을 대중에게 공개하기 위하여 방부처리하고 '미라'로 만들어 영구보존을 결정했습니다.
페론 정권은 에비타 사후 경제위기로 인한 민심 이반으로 지지도가 급락했고 1955년 9월에는 또다른 군부 쿠데타로 끝내 몰락했습니다.페론 반대파는 페론의 유산들을 모조리 철저하게 지우려고 했고, 에비타 역시 예외는 아니었습니다.
그해 11월에는 돌연 에비타의 미라가 사라지는 충격적인 사건이 발생합니다.
에비타의 미라는 시간이 흘러서 이탈리아 밀라노의 한 공동묘지에서 훼손된 채로 뒤늦게 발견됩니다.
안녕하세요. 조사를 해본 결과 에비타가 미이라가 된 이유는 크게 두 가지로 볼 수 있습니다.
첫 번째 이유는 에비타의 죽음이 아르헨티나 국민들에게 큰 충격을 주었기 때문입니다. 에비타는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복지 정책을 적극적으로 추진하여 국민들의 큰 사랑을 받았습니다. 그녀의 죽음은 국민들에게 큰 상실감을 안겨주었고, 그녀의 유해를 영원히 보존하기 위한 움직임이 일어났습니다.
두 번째 이유는 에비타의 부인 후안 페론의 의지 때문입니다. 후안 페론은 에비타의 죽음을 애도하는 의미에서 그녀의 유해를 미이라로 만들 것을 결정했습니다. 그는 에비타의 유해를 영원히 보존하여 그녀의 업적을 기리고, 그녀의 영혼이 국민들에게 영감을 줄 수 있기를 바랐습니다.
에비타의 미이라화 작업은 1952년 7월 27일 시작되었습니다. 작업을 맡은 것은 아르헨티나의 유명한 의사이자 해부학자였던 아르투로 페데리코 아라였습니다. 아라는 에비타의 유해를 세심하게 보존하기 위해 최선을 다했습니다. 그는 에비타의 피를 글리세린으로 대체하고, 그녀의 몸을 알코올에 절여서 부패를 방지했습니다. 또한, 그는 에비타의 얼굴과 머리카락을 그대로 살려서 그녀의 생전 모습 그대로 보존했습니다.
에비타의 미이라화 작업은 1년 2개월 만에 완료되었습니다. 완성된 미이라는 부에노스아이레스의 레코레타 공동묘지에 안치되었으며, 아르헨티나의 국민들에게 큰 사랑을 받고 있습니다. 도움이 되셨다면 좋아요 추천 부탁드립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