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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여름가을겨울 동화속 은빛파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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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사를 언제부터 왜 지내게 되었나요

제사를 언제부터 누가 먼저 왜 지내게 되었나요?

첨 시작할때부터 이렇게 음식의 가지수가 많았나요?

너무 낭비라는 생각이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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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개의 답변이 있어요!
    • 안녕하세요. 이현행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제사의식 자체는 선사시대부터 있었습니다. 주로 풍년을 기원하는 의식이었습니다. 고구려 동맹 부여 영고 삼한의 계절제가 있었습니다. 우리가 오늘날 지내는 제사는 유교와 관련이 깊습니다. 유교는 조상을 대단히 중시여기는데 핵심적 가치가 충과 효에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유교적 제사를 지내기 시작한 것은 고려 때부터입니다. 고려는 정치는 유교식으로 문화는 불교식이었습니다. 그러다 조선이 들어서고 정치와 생활문화가 모두 유교식으로 바뀌었습니다. 조선시대 제사는 양반들이나 지켜가며 음식도 풍족히 할 수 있었습니다.

      갑오개혁으로 신분제가 폐지되어 양반이니 노비니 하는 것이 법적으로는 사라졌습니다. 이제 노비 출신들도 성씨를 갖게 되었고 따라서 양반처럼 제사를 지냈던 것이 아니었을까 합니다. 음식을 많이 차린 것은 엣날 양반처럼 잘살고 싶다는 욕망의 표현이 아니었을까 합니다.

    • 안녕하세요. 김동연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예로부터 동양에서는 자연 현상과 천재지변의 발생을 경이와 공포의 눈으로 보았으며 4계절의 운행에 따른 조화로 인간이 생존할 수 있음을 감사하였다. 동시에 하늘과 땅, 해와 달, 성신(星辰)을 비롯하여 산천(山川)에 깃들여 있다고 생각한 신(神) 그리고 선조(先祖)와 선사(先師)의 가호로 재앙이 없는 안락한 생활을 기원하였는데, 이것이 제사의 기원이다.


      그러나 제사는 인문(人文)의 발달에 따라 대부분의 제사 대상이 의미를 잃게 되었고, 오늘날 제사라고 하면 선조에 대한 의례를 가리키는 것으로 느끼게 되었으며 지내는 절차도 일정한 격식을 갖추게 되었는데 이것이 곧 제례이다.


      문헌에 의하면 중국에서는 이미 요(堯), 순(舜) 시대에 천신(天神), 지기(地祇), 5악(嶽), 4독(瀆)을 제사한 기록이 있고, 조상숭배가 크게 성행하여 조상에 대한 제례가 하(夏), 은(殷) 시대를 거쳐 주대(周代)에 확고하게 갖추어졌다.


      우리나라 제사의 시초로는 부여(夫餘)에서 12월에 하늘에 제사한 영고(迎鼓), 고구려에서 하늘에 제사 지낸 동맹(東盟), 동예(東濊)에서 10월에 하늘에 제사 지낸 무천(舞天) 등을 들 수 있다. 또 마한(馬韓)에는 소도(蘇塗)라는 신역(神域)이 있어 솟대를 세우고 북과 방울을 달아 천군(天君)이 신을 제사 지냈고, 신라에서는 남해왕(南解王) 때에 혁거세묘(赫居世廟)를 세우고 혜공왕(惠恭王) 때에 5묘(廟)의 제도를 정했으며 산천도 제사 지냈다.


      고려시대에는 원구(窩丘), 방택(方澤), 사직(社稷), 종묘(宗廟), 능침(陵寢), 선농단(先農壇), 선잠단(先蠶壇), 문선왕묘(文宣王廟), 마조단(馬祖壇), 사한단(司寒壇) 등을 설치하고 예를 갖추어 제사 지냈고 명산, 대천, 우사(雨師), 운사(雲師), 뇌사(雷師) 등도 제사 지냈다. 조선시대에도 원구와 방택만을 제외하고 고려의 제도를 그대로 따랐다.


      오늘날에는 전주 이씨(全州李氏)의 종약원(宗約院)이 거행하는 종묘의 제향, 서울의 성균관과 지방의 향교에서 유림(儒林)이 거행하는 문묘(文廟)의 제향, 유림이 거행하는 각 서원의 제향, 사가의 조상 제사 이외의 다른 것은 찾아볼 수 없다.


      사가(私家)의 제례는 고려시대에는 대부(大夫) 이상은 증조까지 3대, 6품(品) 이상의 벼슬아치는 할아버지까지 2대, 7품 이하의 벼슬아치와 평민은 부모만을 가묘(家廟)를 세워 제사 지내게 했으나, 조선시대에 이르러 주자가례(朱子家禮)에 근거를 두어 신분을 가리지 않고 고조까지 4대를 봉사(奉祀)하게 했다.


      근래에는 1969년 제정된 가정의례준칙으로 기제는 조부모까지만 봉사한다고 하였으나 1999년 규제개혁철폐에 의하여 가정의례준칙은 폐지되고, 새로 제정된 건전가정의례준칙을 보면 제례는 기제 및 명절차례로 구분되고 봉사는 제주로부터 2대조까지 성묘는 제수를 마련하지 아니하거나 간소하게 한다고 되어있다.

    • 안녕하세요. 이예슬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제사는 샤머니즘을 바탕으로 하는 자연숭배와 관련이 깊어 그 역사가 오래되었지만,

      자료에 따르면 현재의 제사방식으로 제사를 지내기 시작한 것은 고려말부터라고 합니다.

      고려시대 중국의 주자학이 전래되면서 조상 제사 의식도 함께 유입되었는데, 당시는 불교가 국교였기에 제사를 지내지 않았다. 그러다가 고려 말부터 제사를 지내기 시작했고, 조선시대에 민간에 널리 장려되었다.

      https://theme.archives.go.kr/next/koreaOfRecord/jesa.d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