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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퇴한 사용자
탈퇴한 사용자23.05.28

방정환이라고 하는 인물은 무슨 인물인가요?

안녕하세요.

인물사에서 '방정환'이라고 하는 인물은 무슨 인물인가요?

방정환의 일대기는 어떠했으며

그의 업적은 무엇이 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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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녕하세요. 임지애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아동문학의 보급과 아동보호운동의 선구자인 아동문학가. 한국 최초의 순수 아동잡지 《어린이》 등의 창간을 비롯 잡지를 편집·발간했다. 창작뿐 아니라 번역 ·번안 동화와 수필과 평론을 통해 아동문학의 보급과 아동보호운동을 하였다.

    호는 소파(小波)이며 서울 출생이다. 선린상업학교를 중퇴하고 17세에 조선총독부 토지조사국에 취직했다가 곧 사직하였다. 이후 천도교청년회, 개벽사, 천도교소년회 등과 관련을 맺었다. 1917년 손병희의 딸 손용희와 결혼하여 손병희에게서 많은 도움을 받았다.

    청년문학단체인 '청년구락부'를 조직하면서 어린이운동에 관심을 보였고, 이어 천도교에서 운영하는 보성전문학교(普成專門學校)에 입학했다. 1920년 일본 도쿄의 도요[東洋]대학에서 철학과에 입학, 아동예술과 아동심리학을 연구했다. 1921년 서울로 돌아와 천도교소년회를 만들고 어린이들에 대한 부모의 각성을 촉구하기 위해 전국을 돌며 강연을 했다. 또한 '어린이'라는 용어를 처음으로 만들어 늙은이, 젊은이와 대등하게 격상시켰으며, 어린이 동화집도 냈다.

    한국 최초의 순수 아동잡지 《어린이》(1923)를 창간하고 최초의 아동문화운동 단체인 색동회를 조직하여 그 해 5월 1일을 어린이날로 지정했다. 또한 《신청년(新靑年)》 《신여성(新女性)》 《학생(學生)》 등의 잡지를 편집 ·발간하기도 했다.

    그는 동화구연대회, 소년문제 강연회, 아동예술 강습회, 소년지도자대회 등을 주재하여 계몽운동과 아동문화운동에 앞장섰다. 창작동화뿐만 아니라 많은 번역 ·번안 동화와 수필과 평론을 통해 아동문학의 보급과 아동보호운동을 하였다.

    저서로는 《사랑의 선물》과 사후에 발간된 《소파전집(小波全集)》(박문출판사, 1940), 《소파동화독본》(조선아동문학협회,1947), 《방정환아동문학독본》(을유문화사, 1962), 《칠칠단의 비밀》(글벗집, 1962), 《동생을 찾으러》(글벗집, 1962), 《소파아동문학전집》(문천사, 1974) 등이 있다. 한편 1957년 새싹회에서는 '소파상(小波賞)'을 제정하여 해마다 수여하고 있다.

    [네이버 지식백과] 방정환 [方定煥] (두산백과 두피디아, 두산백과)


  • Soulace
    Soulace23.05.29

    안녕하세요. 유병철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소파 방정환 선생은 이 한반도 땅에서 최초로 '어린이' 라는 단어를 사용한 분입니다. 마해송, 윤극영과 함께 어린이 문제를 연구하는 단체 '색동회'를 조직하여 어린이날을 제정한 분도 이분이죠.

    농담입니다만.. 이분 아니었으면 아마 우리나라 완구업계 망했을지도...ㅎㅎ

    미래의 새싹이 될 어린이들에 대한 정서발달과 교육에 힘쓴분으로 대표저서로 "사랑의 선물", "소파아동문학전집" 등이 있습니다.

    윤석중을 중심으로 새싹회라는 아동문화단체가 발족되었는데, 거기서 방정환 선생의 호인 '소파'를 따서, 소파상을 제정하여 해마다 어린이들을 위해 노력한 사람에게 수여되었던 적이 있습니다.

    민족대표33인 손병희의 사위이기도 했고, 독립선언서를 인쇄하다가 잡혀들어갔던 적도 있죠.

    그의 호인 '소파'는 작은 파도라는 뜻으로, 잔잔한 물결처럼 천천히 어린이에 대한 세상의 인식을 바꾸겠다' 는 포부에서 지었다고 하는데, 그가 남긴말에서 그의 진정성을 알수 있습니다.

    "어린이는 어른보다 한시대 더 새로운 사람입니다. 어린이 뜻을 가볍게 보지 마시오. 싹을 위하는 나무는 잘 커가고, 싹을 짓밟는 나무는 죽어버립니다."

    그는 특히 구연동화에도 남다른 재주가 있었는데, 독립선언서 인쇄사건 이후로 고등계 형사가 항상 그를 예의주시하며 미행했다고 하는데, 그를 감시하기 위해 그가 하는 강연에 참석했다가 최루성에 가까운 그의 구연동화를 듣고 눈물빼며 우는 바람에 그를 감시했던 일본형사가 이런 말을 남겼다고 합니다.

    "방정환이란놈, 흉측하지만 절대 미워할 수 없다. 나같은 경부따위에게 불려다닐 위인은 아닌데, 일본인이었다면 일본사회에서 충분히 한자리 할 놈인데, 참으로 아깝다."

    이런분이었는데... 고혈압과 과로로 인하여 31세의 젊은 나이에 아깝게 돌아가셨죠. 이분이 더 오래 사셨다면, 아마 조금은 더 우리나라가 좋은세상을 일찍 만들수 있지않았을까 생각도 해봅니다.

    얼마전 종영한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에 등장하는 방구뽕이라는.. 어린이 해방단장이 방정환선생에서 모티브를 얻어왔다는 설이 있는데... 설이 아니고 저는 거의 사실이라 봅니다. ㅎㅎ


  • 안녕하세요. 최은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호는 소파이며 서울 출생으로, 선린상업학교를 중퇴하고 17세에 조선총독부 토지조사국에 취직했다가 사직합니다.

    이후 천도교청년회, 개벽사, 천도교소년회 등과 관련을 맺었으며 1917년 손병희의 딸 손용희와 결혼해 손병희에게서 많은 도움을 받았습니다.

    청년문학단체인 청년구락부를 조직해 어린이운동에 관심을 보였고 이어 천도교에서 운영하는 보성전문학교에 입학, 1920년 일본 도쿄의 도요대학에서 철학과에 입학, 아동예술과 아동심리학을 연구합니다.

    1921년 서울로 돌아와 천도교소년회를 만들고 어린이들에 대한 부모의 각성을 촉구하기 위해 전국을 돌며 강연했으며 어린이라는 용어를 처음 만들어 늙은이, 젊은이와 대등하게 격상시켰으며 어린이 동화집을 냈습니다.

    한국 최초의 순수 아동잡지 어린이를 창간하고 최초의 아동문화운동 단체인 색동회를 조직해 그 해 5월 1일을 어린이날로 지정, 신청년, 신여성, 학생 등의 잡지를 편집, 발간했습니다.

    그는 동화구연대회, 소년문제 강연회, 아동예술 강습회, 소년지도자대회 등을 주재하여 계몽운동과 아동문화운동에 앞장섰으며 창작동화 뿐 아니라 많은 번역, 번안 동화와 수필과 평온을 통해 아동문학의 보급과 아동보호 운동을 했습니다.

    저서로는 사랑의 선물과 사후 발간된 소파전집, 소파동화독본, 방정환아동문학독본, 칠칠단의 비밀, 동생을 찾으러, 소파아동문학전집 등이 있습니다.


  • 안녕하세요. 엄재희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방정환은 1923년 5월 1일 한국 최초의 어린이날을 만들고 1923년 3월 우리나라 최초의 순수 아동잡지 『어린이』를 창간하였습니다

    3·1운동시 독립선언문을 배포하다 일경에 체포되어 고문을 받았습니다

    독립운동가 이자 아동문학가 입니다



  • 안녕하세요. 정준영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1909년 매동보통학교에 입학, 이듬해 미동보통학교로 전학하여 1913년에 졸업하였습니다. 그 해 선린상업학교에 입학하였으나 이듬해 가정 사정으로 중퇴하였습니다. 1917년 손병희(孫秉熙)의 딸 손용화(孫溶嬅)와 결혼하였습니다. 그 해에 청년운동단체인 ‘ 청년구락부(靑年俱樂部)’를 조직하여 활동하였습니다.


    1918년 보성전문학교에 입학, 이듬해인 1919년 3 · 1운동이 일어나자 독립선언문을 배포하다가 일본 경찰에 체포되어 고문을 받고 1주일 만에 석방되었습니다. 1920년 일본 도요대학[東洋大學] 철학과에 입학하여 아동예술과 아동심리학을 연구하였습니다. 1921년 김기전(金起田) · 이정호(李定鎬) 등과 함께 ‘천도교소년회’를 조직하여 본격적으로 소년운동을 전개하였습니다.


    1922년 5월 1일 처음으로 ‘ 어린이의 날’을 제정하고, 1923년 3월 우리나라 최초의 순수 아동잡지 『어린이』를 창간하였습니다. 이 잡지는 월간으로서 일본 동경에서 편집하고 서울 개벽사(開闢社)에서 발행을 대행하였습니다. 같은 해 5월 1일에 ‘어린이날’ 기념식을 거행하고 ‘어린이날의 약속’이라는 전단 12만장을 배포하였습니다. 1925년에는 제3회 어린이날을 기념하는 동화구연대회(童話口演大會)를 개최하였습니다.


    1928년에 세계 20여 개 나라 어린이가 참가하는 ‘세계아동예술전람회’를 개최하였습니다. 방정환이 남긴 작품은 번안물이 대부분입니다. 원문의 뜻과 흐름을 손상시키지 않고 외국어의 장벽을 무난히 돌파하여 동화 번안작가로서의 면모를 잘 보여주었습니다. 그가 번안 내지 개작한 동화들이 지닌 일관된 특징은 풍자와 해학의 정신과 교훈성에 있다고 할 것입니다.


    다시 말하자면 종래의 유교도덕에 얽매어 있던 어린이들을 어린이다운 감성으로 해방시키고자 하였습니다. 그러나 이 감성 해방은 시대적 상황과 결부되어 그들을 웃기기보다는 울리는 결과를 가져왔습니다. “웬일인지 별 하나/보이지 않고/남은 별이 둘이서/눈물 흘린다.”(형제별)와 같은 동요에서 이러한 모습은 잘 나타나고 있습니다.


    생전에 실천하고 남긴 업적을 간추려보면, 첫째로 민족주의를 바탕으로 한 최초의 아동문화운동가요, 사회운동가였습니다. ‘소년입지회(少年立志會)’의 조직과 3 · 1독립운동 참가, ‘천도교소년회’ 결성 및 육성이나, 아동을 ‘어린이’라는 용어로 ‘늙은이’ · ‘젊은이’와 대등하게 격상시킨 일 및 아동문제연구단체인 ‘ 색동회’ 조직, ‘어린이의 날’ 제정 등이 그것을 입증합니다.


    둘째로 번안 및 개작작가 · 동화작가 · 동화구연가 · 아동잡지 편집인으로서의 업적입니다. 『사랑의 선물』(개벽사, 1922)을 비롯한 본격적인 개작 번안, 창작동화를 남기며 최초의 대표적인 구연동화가로 활약하고 『어린이』지를 통하여 윤석중(尹石重) · 이원수(李元壽) · 서덕촌 등 아동문학가의 발굴, 육성에 힘썼습니다.


    셋째로 아동들을 소박하고 천진난만하며 순진무구하게 보고 감상적 · 관념적 · 권선징악적인 작품을 통해서 그들이 자유롭고 행복한 생활을 누릴 수 있도록 이끌어주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어린이의 현실적 · 경제적 어려움을 이해하고 종래의 전통적인 부당한 대우를 시정하여 감성 해방(동심 회복)을 하려는 데 그 목적을 두었습니다. 그러므로 그는 금세기 우리나라의 지사(志士)요, 선구적 언론인이요, 교육자요, 문학가로 불려야 마땅한 인물입니다.


    생전에 발간한 책은 『사랑의 선물』이 있고, 그밖에 사후에 발간된 『소파전집』(박문출판사, 1940) · 『소파동화독본』(조선아동문화협회, 1947) · 『방정환아동문학독본』(을유문화사, 1962) · 『칠칠단의 비밀』(글벗집, 1962) · 『동생을 찾으러』(글벗집, 1962) · 『소파아동문학전집』(문천사, 1974) 등 8종이 있습니다.


  • 안녕하세요. 이주연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방정환 선생님은 한국의 교육자이며, 대표적인 수학 교육자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의 주요한 업적은 다음과 같습니다:

    1. '알파수 수학' 교육 방법론 개발: 방정환 선생님은 '알파수 수학'이라는 창의적인 수학 교육 방법론을 개발하였습니다. 이 방법론은 기존의 수학 교육 방식을 벗어나 직관적이고 창의적인 사고를 촉진하는 방법을 제시합니다. '알파수 수학'은 학생들이 문제 해결과 수학적 사고를 자유롭게 발휘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고자 하는 방법으로, 학생들의 창의성과 문제 해결 능력을 키우는 데 큰 영향을 미쳤습니다.

    2. 올림피아드 수학 교육: 방정환 선생님은 한국의 수학 올림피아드 팀 감독을 역임하면서 다수의 학생들을 지도하고 올림피아드에서 성과를 올리도록 지원하였습니다. 그의 지도로 한국은 국제 수학 올림피아드에서 많은 입상을 차지하며 세계적인 수학 강국으로 인정받게 되었습니다.

    3. 수학교육 기여: 방정환 선생님은 수학교육 분야에서 다양한 활동과 기여를 하였습니다. 그는 교과서 작성에 참여하고, 수학교사들을 대상으로 교육 연수와 워크숍을 진행하며, 수학 문제집을 출판하고 교육자료를 제공하는 등 수학 교육에 많은 노력을 기울였습니다.

    방정환 선생님의 업적은 수학 교육 분야에서 혁신적인 방법론을 개발하고 학생들의 창의적 사고와 수학적 능력을 향상시키는 데 기여한 것으로 평가됩니다.

    그의 노력과 기여는 한국의 수학 교육 발전에 큰 영향을 미치고, 수많은 학생들에게 영감과 도움을 주었습니다.


  • 안녕하세요. 이예슬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방정환은 방정환은 일제강점기 어린이의 날을 제정하고, 아동잡지 『어린이』를 창간한 아동문학가입니다. 일제강점기의 '어린이'를 생각하면 방정환 선생님이계시는 것입니다.

    다음의 내용을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https://encykorea.aks.ac.kr/Article/E002178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