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산군은 즉위 초기 성종 때의 체제를 어느 정도 유지하면서 선정을 펼쳤다고 합니다. 하지만 머지않아 정치적으로 숙청 정치를 일삼아 많은 희생자를 낳았습니다. 예를 들어 무오사화, 갑자사화가를 통해 사림 등 비판적 지식인을 대규모로 제거했습니다. 또한 개인적으로 연산군은 사치와 향략에 빠졌습니다. 예를 들어 흥청이라 불리는 여성들과 어울리고, 각 지방에 미녀를 찾게 하는 등 사적인 욕망을 공적인 권력으로 사용했습니다.
연산군의 폭정으로 반발이 커지자 결국 1506년 중종반정으로 폐위되었습니다.